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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의 연백장을 본떠 만들어진 대룡시장은 민통선내에 있어 민간인들의 접근이 불편했던 관계로 지금까지 1960~1970년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 교동도 대룡시장 황해도의 연백장을 본떠 만들어진 대룡시장은 민통선내에 있어 민간인들의 접근이 불편했던 관계로 지금까지 1960~1970년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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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본섬의 매력도 충분히 차고 넘치지만 최근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편히 왕래할 수 있는 부속섬 석모도, 교동도에 주목하는 여행객들이 날로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민통선에 자리해 접근이 다소 까다로웠던 교동도가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장, 연산군 유배지 등 명소들 덕분에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났다.

이곳을 가기 위해선 2014년 건립된 교동대교를 건너기만 하면 되지만 아무래도 민통선 관할 내에 있다 보니 해병대의 검문은 피할 수 없다. 사실 교동도는 황해도와 마주하고 있어 큰 홍수가 일어나면 종종 북한의 소와 주민들이 교동도까지 떠밀려 오는 경우도 다반사라 하니 남북 분단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검문을 감수하더라도 이 섬을 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교동도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살피러 지금부터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강화와 김포를 이어주는 강화대교를 지나 쭉 뻗은 48번 국도는 교산 교차로에서 한차례 검문을 거치게 된다. 이후 교동대교 앞에서 방문객과 주민으로 나누어진 선을 따라 발급받은 출입증을 차에 부착한 후에 드디어 교동도를 마주할 수 있다.

교동도의 대룡시장, 뉴트로의 중심

교동도는 지금은 한적한 섬이지만 찬란했던 역사를 품은 고장이다. 고려시대에는 수도 개경과 가까워, 국제교역의 중간 기척지 역할을 했다. 게다가 한강과 임진강 하구가 만나는 지점을 감제하는 요충지여서 정예병력이 상주하고, 교동읍성이 건설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쫓겨난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조선 인조 때는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에 들어가지 않는 경기, 황해, 평안 수영을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새우젓으로 유명한 한적한 항구인 남산포구는 고려시대에는 중국사신들이 머무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 교동도 남산포구 지금은 새우젓으로 유명한 한적한 항구인 남산포구는 고려시대에는 중국사신들이 머무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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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 남쪽 새우젓으로 유명한 남산포구는 작은 어선 몇 척만 한가롭게 정박해 있지만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들이 기착했던 국제항이기도 했으며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이 있던 항구였다. 현재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사신이 왕래할 때 뱃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당집, 사신당만 남아있다.

하지만 교동도는 시장으로 인해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중이다. 바로 교동의 중심에 자리 잡은 대룡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조용하고 특별한 명소도 없던 섬이었지만, 크지 않은 시장 하나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교동도가 새로운 뉴트로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교동도 대룡시장은 이발소, 정육점, 약국 등 당시의 외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도 대룡시장은 이발소, 정육점, 약국 등 당시의 외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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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은 땅이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는 시장인 '연백장'을 그대로 본떠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세월은 비록 수십 년이 흘렀지만, 옛 1960, 1970년대의 간판과 골목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단순히 영화 세트장과 테마파크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 담긴 생생한 장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고,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변화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장소다. 단순히 낡고 오래된 시장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발맞춰 쌀국수집 등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본연의 매력은 잃지 않았다.

대룡시장의 입구에는 교동 제비집이라 불리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 간단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시장은 좁은 골목에 형성되어 있고, 생각보다 크기도 작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간판들과 가게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가는 장소마다 볼거리가 대단하다.

특히 정육점에는 돼지와 소가 도축되어 있는 상태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소한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날 이발소와 방앗간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가는 곳마다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동도에서 나는 쌀 등을 이용하여 반죽한 호떡과 꽈배기의 맛이 쫀득하고 반죽이 그대로 살아있다. 참기름병을 이용한 밀크티는 이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실향민들이 매년 찾는 망향대
 
교동도 화계사는 고려의 대학자 목은이색이 머물기도 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 화계사 교동도 화계사는 고려의 대학자 목은이색이 머물기도 했던 유서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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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화계산 자락은 역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조선의 폭군 연산군이 유배를 보냈던 유배지가 복원되어 있고, 6월 초 개관하는 화개산 모노레일, 스카이워크와 연계한 관광지로 주목을 받을 예정이다. 섬에서 보기 드문 읍성도 남쪽 자락에 남아있다.

조선 인조 당시 교동에 경기 수영을 설치할 때 세운 것으로 1921년 폭풍우로 무너졌던 남문만 복원했다. 여기서 화개산 중턱을 오르다 보면 고려말 문신 목은 이색이 독서하던 터에 세워진 화계사가 있다. 규모도 작고 큰 볼거리가 없지만 법당의 단아한 느낌이 유서 깊은 장소라는 곳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교동도의 북단에 자리잡은 망향대는 한국전쟁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내려온 실향민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망향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바다 건너 연백땅을 살필 수 있다.
▲ 교동도 망향대에서 바라본 북한 연백땅의 풍경 교동도의 북단에 자리잡은 망향대는 한국전쟁당시 황해도 연백군에서 내려온 실향민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망향대에 설치된 망원경을 통해 바다 건너 연백땅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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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에서 마지막으로 가 볼 행선지는 섬의 서북쪽인 망향대다. 이곳은 네비게이션조차 제대로 잡히진 않지만 100미터 단위로 안내판이 촘촘하게 서 있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황해도 연백 땅이 내려다보이는 망향대 언덕은 한국전쟁 중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망배 제단과 비석을 세워 건립했다고 한다.

망향대에서 건너보면 연안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드넓은 연안 평야가 한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다. 직선거리가 3km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곳을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애환과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교동도에 정착한 주민들은 대룡시장 근처에 황해도식 냉면과 국밥을 먹으며 고향을 기억하고 매년 이곳 망향대에 오면서 가지 못하는 그곳을 말없이 바라본다고 한다. 하루빨리 왕래라도 자유로워지길 기원하며 교동도 편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1권(경기별곡 1편)이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권은 6월 중순 출판 예정입니다. 인문학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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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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