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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은 엄마의 여든두 번째 생신날이라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전날부터 끓였다. 다른 집에서는 생일날 꼭 먹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 생일날 아침은 미역국과 팥을 넣은 찰밥을 해 먹는다.

부산은 바다와 가까워 생미역을 사는 게 어렵지 않다. 갈색으로 둥글게 말아져 오독오독 씹히는 줄기까지 같이 따라오는 미역을, 엄마는 함지박에 넣고 바락바락 빨아 거품을 뺀다. 그렇게 해야 미역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사라진다고, 엄마 어릴 적 어른들은 다 그렇게 '미역 빠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면서.

집마다, 지역마다 다른 미역국 끓이는 방법

내가 미역국을 끓이려고 준비하면 엄마는 꼭 미역을 빨아서 끓이라고 하신다. 사실 나는 미역 특유의 냄새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미역귀를 입에 넣고 씹을 때 짠맛과 함께 훅 느껴지는 그 냄새를 말하는 건가?' 혼자 생각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옛날 어릴 때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옆에서 생미역을 하얀 거품이 나도록 씻고 또 씻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바락바락 빤 미역국에 소고기 대신 해산물을 넣어 담백하게 끓인 미역국을 엄마는 좋아한다.  
 
말린 미역도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미역 특유의 냄새가 없어진다고 한다.
▲ 미역손질 말린 미역도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미역 특유의 냄새가 없어진다고 한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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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은 들어가는 건더기(해산물, 소고기, 황태 등)만 조금씩 다를 뿐, 다들 비슷하게 끓이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우리 집과 다른 방법으로 끓인 미역국을 처음 본 것은 오래전 어느 찜질방에서였다. 

뜨끈한 찜질방에서 친구와 수다 떨며 놀다가 허기져 구내식당에 갔다가 시킨 미역국. 테이블 위에 놓인 국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는데 그릇 안에 하얀 알갱이들이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다진 마늘이었다. 

놀란 나는 친구에게 "서울은 미역국에 마늘을 넣어?"라고 물으니 친구는 뭘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응, 그럼 부산은 안 넣어?"라고 되물었다. 서울은 미역국에 마늘을 넣는단다. 전혀 몰랐다. 

미역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예전 하숙집 아주머니가 끓여주던 방법이다.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 하숙비를 드리러 갔는데 가스레인지 위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볼일을 보고 나오다가 혹시 불 위에 냄비 올려놓은 것을 잊어버리신 건 아닌가 싶어 되돌아가서 말씀드렸더니,

"아, 그거 미역국인데 미역국은 오래 끓여야 하거든. 그래서 아침에 미역국을 줄 때는 저녁부터 끓이잖아, 내가. 그러면 국물이 뽀얗게 나와서 더 맛있어."

미역국을 만들 때 마늘을 넣는다는 것도, 부들부들하고 뽀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몇 시간이고 끓인다는 것도, 그때까지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마치 세프들이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픽(pick)'이 있는 것처럼 엄마들도 오랜 시간 정성들여 식구들을 먹이다 보면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들이 하나둘 생기는 것 같다.

미역국을 끓일 때 우리 엄마의 '픽'은 미역을 힘주어 빠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귀찮고 힘드니까 그냥 끓이자고 해도 엄마는 그게 뭐가 힘드냐며 계속하신다. 어쩌면 그래서 엄마의 미역국이 내 입에는 더 깔끔한 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미역국
 
엄마는 소고기 미역국보다 해산물을 넣은 미역국을 좋아하신다
▲ 해산물을 넣어 끓이는 우리집 미역국 엄마는 소고기 미역국보다 해산물을 넣은 미역국을 좋아하신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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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를 낳고 6개월 동안 미역국만 드셨는데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단다. 요즘도 엄마는 미역국을 자주 끓여 먹자고 하시는데,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그다음에는 떡국떡을 넣어 '미역 떡국'으로도 드신다. 엄마가 좋아하는 두 가지, 미역과 떡이 들어가니 김치랑만 먹어도 "너무 맛있다"라고 하시며.

아마도 내가 찜질방에서 땀 흘린 뒤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 먹었던 미역국처럼(물론 마늘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엄마한테는 떡국 넣은 미역국이 그런 느낌인 것 같다. 

엄마의 생신을 맞아 이번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홍합을 깨끗이 씻어 미역국을 끓이고(물론 여전히 마늘은 없이), 팥을 넣은 찰밥도 만들고(이건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단 것과 버터를 싫어하는 엄마 입맛에 맞게 제누와즈(케이크 안의 빵)를 굽고, 설탕은 눈곱만큼 넣고 생크림을 올려 무화과 케이크도 만들었다. 
   
며칠 전 언니네와 생일 밥 먹고 케이크도 먹었지만, 엄마가 맛있다고 해서 또  만들었다.
▲ 무화과 생크림 케이크 며칠 전 언니네와 생일 밥 먹고 케이크도 먹었지만, 엄마가 맛있다고 해서 또 만들었다.
ⓒ 박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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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생일이면 엄마가 해 주셨던 것처럼 미역국에 팥밥 그리고 몇 가지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엄마, 오늘이 진짜 생일이네, 축하혀요! 밥 먹고 저번에 가보고 싶다고 했던 우영우 팽나무랑 주남저수지 보러 가자. 케이크랑 커피랑 갖고 가서 먹으면 맛있겠제"라고 하니 "뭐를, 거기까지 가노?" 하는 송 여사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해산물을 넣은 미역국 끓이기

재료 : 홍합 육수 500ml, 불린 미역 200그램, 조선간장 한 큰술, 참기름 2큰술.

1. 홍합 육수는 미리 내놓는다(홍합을 깨끗이 씻고 수염을 뗀 다음 홍합이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끓인다).

2. 냄비에 미역, 조선간장을 넣고 약한 불에서 볶는다.

3. 미역이 밝은 연둣빛이 나면 참기름을 넣고 마저 볶는다.

4.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조선간장이 어우러진 맛있는 냄새가 나면 홍합 육수를 붓는다.

5. 강한 불에서 끓이다가 약한 불로 낮춰 계속 끓인다.

6. 국물이 뽀얗게 되고 미역이 부들부들해지면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낸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미역국, #미역을 빨아요, #홍합미역국, #꽃게미역국, #오래 끓여야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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