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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씨 뿌린 후 항상 귀신에게 제사하고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를 낮밤 쉬지 않았다. 그 춤은 10여 명이 서로 따라가면서 땅을 밟고 구부리고 펴서 손발이 잘 맞았는데, 절주는 탁무와 같아서 10월 농사일이 끝나고서도 이 같은 행사를 다시 하였다."

서기297 중국 진나라 진수가 지은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당시 마한이었던 우리 용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처인성 전투도, 3·1운동도 공동의 문제에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 함께 실천하는 마을 공동체가 움직인 결과이다.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축제를 준비하고, 남녀노소 '군취가무 음주주야무휴'로 신명 속에 하나 되는 경험은, 공동체에 위기가 닥쳤을 때 함께 힘을 합쳐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삼가초등학교 단오 한마당 축제에서 학생들이 씨름을 하고 있다.
 삼가초등학교 단오 한마당 축제에서 학생들이 씨름을 하고 있다.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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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년 전만 하더라도 용인 곳곳에서 씨름대회와 그네뛰기를 중심으로 하는 백중절 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한가위에는 마을 아이들이 소나무로 거북이를 만들어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북놀이도 성행했고, 대보름에는 전봇대 굵기로 꼰 줄로 줄다리기를 하고 집채만한 달집을 태웠다고 한다.

1990년대에 인구 20만에 불과했던 용인시가 인구 100만이 넘는 특례시가 되었다. 용인에 30년 이상 살아온 사람이 5명에 1명 정도이고 그만큼 '용인사람'이라는 인식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마을 단위 축제는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함께 농사를 지으며 공동 노동을 해야 했던 과거 마을 공동체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힘을 모아야 할 필요성이 적어진 탓도 있겠다.

"대보름 때 자신밟기를 했더니 경찰이 와서 신고 들어왔다고 못하게 하더라고. 새로 들어온 ○○아파트 사람들이 그랬겠지. 그런데 어떻게 같이 잘 지낼 수가 있겠어?"

50대 용인 토박이의 말이다. 용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던 원주민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던 마을 공동체 축제를 이어가기를 원한다. 한편, 새로 용인 사람이 된 사람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내가 이 마을에 이사를 온 것이 올해 25년째에요. 그런데도 나보고 외지인이래. 자기들이 해오던 대로 무조건 따라 하라고만 하니까 도무지 말이 안 통해."

용인 곳곳에 이와 같은 양상의 갈등이 존재한다.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해 다시 농사 중심의 마을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19로 2년 넘게 단절되었던 사회관계가 다시 열리는 지금은 코로나 이전의 관계에서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관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삼가초등학교 단오 한마당은 그런 상황에 맞추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축제로 기획되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지금, 육아와 교육 외에 일상적으로 마을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공동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단오 행사에는 길놀이, 씨름대회, 그네뛰기, 쑥떡도장 찍기, 앵두화채 체험, 쑥주머니 만들기, 단오부채 만들기, 창포물에 머리 감기 코너가 마련되었고 유치원에서 6학년 학생들이 모두 참여해 잔치판을 열었다. 학생들이 준비한 길놀이로 시작된 축제는 오전 내내 이어졌고, 장터를 구경하는 것처럼 각자 원하는 코너를 다니며 축제를 즐겼다.

"우리 집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좀 털어왔어요. 우리 남편이 학교 축제에서 앵두화채 만든다는 말을 듣더니, 두말 않고 따주더라구요."

단오 때에는 앵두로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앵두는 유통이 어려워 돈이 있어도 구입하기 쉽지 않다. 학교장이 먼저 나서면서 이후 축제 준비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학교 금요놀이마당 아이들이 씨름 연습을 하고, 점심시간이면 길놀이 풍물패가 풍물 장단을 치고 학교 곳곳에 쑥을 널어 말리면서 오감을 통해 축제를 느낄 수 있었다.

쑥을 뜯으러 다니는 아이들, 쑥을 뜯어 보내신 학부모님들, 낫을 들고 쑥을 캐러 다니고 창포물을 달여내는 교사들과 부모님들의 마음이 모였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고 손수 빗으로 머리를 빗겨주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앵두화채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궁리했던 학부모회 어른들, 씨름 수업과 대회를 진행한 체육교사들, 다른 나라의 여름 축제와 우리 여름 축제를 비교하는 세계 문화 수업을 준비한 영어교사들, 길놀이에서 아이들 교통안전을 책임져준 경찰관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사를 지원하고 챙기는 어른들 등 온 마을 어른들이 함께 아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과정이었다.

"저도 3학년 되면 씨름대회 나갈거에요!" "5학년 되면 저도 장구칠 수 있어요?" "길놀이 할 때 경찰 오토바이 지나가는데 엄청 멋있었어요!"

미래의 역할에 대해 기대하고 준비하는 아이들. 온 마을이 나를 위해 준비하고 환대하는 축제를 경험한 아이들. 축제를 함께 준비하는 경험을 해본 아이들 속에서 공동체 역량이 움트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용인 삼가초, #단오, #마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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