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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겨울, 세종호텔 로비에 앉아있는 조합원들
▲ 호텔 로비에 앉아있는 김란희 조합원과 동료 조합원들 2021년 겨울, 세종호텔 로비에 앉아있는 조합원들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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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세종호텔은 별이 4개인 일명 '특급호텔'이다. 명동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30초면 도착 가능한 초역세권에 있고, 가성비가 좋은 호텔로도 유명하다. 이름에서 많이들 추측하듯 세종대학교, 세종사이버대학교와 같은 재단인 대양학원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세종호텔은 영어시험을 기준으로 셰프와 주방 보조 등을 해고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회사 측은 식음료파트 직원들 포함 3년간 쌓인 인사고과 성적과 영어시험, 재산 보유내역 등을 회사에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직원들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으로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관광레져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 지부 노동조합원들은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기준이라면서 해당 과정을 모두 거부했고, 이후 15명 조합원이 해고됐다(관련 기사: 직장폐쇄 앞둔 노동자들의 간담회... 진지한 현장 녹인 한 마디). 이들 중 조합원들 사이에서 '부당전보의 여왕'이라고 불린다는, 30년차 호텔리어 김란희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993년, 입사하다 
 
촬영을 위해 팬츄리 근무복을 입은 김란희 조합원의 모습이다.
▲ 팬츄리(설거지담당) 옷을 입은 김란희 조합원 촬영을 위해 팬츄리 근무복을 입은 김란희 조합원의 모습이다.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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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월 10일, 란희씨는 세종호텔에 입사했다. 그 당시 세종호텔은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나면 정직원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란희씨도 실습 기간을 거치던 중이었는데, 호텔 내 높으신 분들의 비서가 필요해졌다. 그러자 이전 직장 경력이 있던 란희씨를 2달이 채 안 되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며 발탁해갔다.

비서실은 총 2명이었는데, 한 명은 회장(주명건)과 사장(주장건)의 비서였고 다른 한 명은 중역 5명의 비서였다. 그중 란희씨는 중역들의 비서였다. 커피도 타고, 복사도 하고, 일정관리도 했다. 다행히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고 다들 란희씨에게 잘 대해줬다고 한다. 중역들은 친절했고 서로를 존중했다. 그렇게 3년 정도 일했는데 어느 날 주명건 회장이 호텔 자회사인 KTSC에 채용된 여직원이 영어를 잘한다고 해 비서로 점 찍어서 데려왔다. 

그래서 란희씨는 자연스레 비서실을 떠나게 됐고 총무과의 인사담당자로 부서가 이동됐다. 직원들의 월급, 복지, 사회보험 등의 업무를 맡았다. 총무과 사람들은 물론 안 맞는 직원도 있었지만 다행히 대부분 좋았다. 그 덕에 6년이나 총무과에서 일했다. 6년이나 일하니까 다른 부서로 이동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총무부장에게 전보를 요청했고 부장은 나이트 오디터(Night Auditor)를 제안했다.

나이트 오디터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프론트에서 고객 응대도 하고 전산 업무도 하는 직책이다. 프론트와 전산회계의 협업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호텔의 밤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나이트 오디터로 일하면서 란희씨는 새벽 근무 특성 상 24시간 맞교대로 일했다. 수면패턴이 조금 이상해졌다. 몸에 여러 이상이 생겼다. 운이 좋게도 1년 반 정도 일한 뒤 호텔 자회사의 비서 자리를 제안받게 됐다. 란희씨는 나이트 오디터가 안 맞았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짧은 시간 비서로 일하는데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그 비서실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란희씨는 담당자가 출산·육아휴직을 간 자리로 이동해 8개월간 잠시 '땜빵'으로 일했고 이후엔 또 다른 팀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객실정비 팀의 '오더 테이커'(order taker)이었다. 룸메이드에게 업무 분담, 지시도 하고 여러 불편사항들을 해결하는 일종의 '불편 신고 접수자'였다.

2004년, 뜻 모아 행동나선 노동자들 
 
매주 목요일에 세종호텔 정문에서 열리는 문화제에서 김란희 조합원이 발언 중이다.
▲ 목요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김란희 조합원 매주 목요일에 세종호텔 정문에서 열리는 문화제에서 김란희 조합원이 발언 중이다.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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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조는 집단직장이탈과 집단업무거부에 돌입했다. 란희씨처럼 노동자들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업무 변경을 너무 많이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측의 행동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노동자들 사이엔 뭔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모든 조합원이 동참하는 건 아니었지만 프론트, 교환실, 벨, 도어, 객실정비 사무실 팀이 힘을 합쳐서 단체 행동을 결의하게 됐고 인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란희씨도 함께였다. 란희씨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프론트를 멈췄고 자연스레 체크인, 체크아웃이 멈췄다. 그 결과 프론트 업무가 마비될 것을 염려해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만에 회장(주명건)은 백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주명건에게 김란희는 '완전히 노조 사람'이었다. 이후로 주명건과 주장건(사장, 주명건의 동생)이 번갈아 권력을 갖게 되는데, 란희씨는 주명건이 권력을 잡을 때마다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여기저기 부서를 뺑뺑이 돌게 된다. 란희씨는 이게 아직도 억울하다. 그는 '누구 라인'이나 '노조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호텔이 상식적으로 운영되길 바랐던 것뿐이다.

약 1년간의 객실정비 업무 후엔 1년간 전화 교환으로 일했다. 그때, 권력 다툼이 뒤집혀서 주장건(주명건의 동생)이 힘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란희씨는 주장건과 대화를 나눈 후 가고 싶었던 경리과로 또 다른 부서 이동을 하게 된다.

마주하는 현실... '콕 찍어' 정리해고한 사측
 
매주 진행되는 목요문화제에서 김란희 조합원이 발언 중이다.
▲ 목요문화제에서 발언 중인 김란희 조합원의 뒷모습 매주 진행되는 목요문화제에서 김란희 조합원이 발언 중이다.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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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했던 부서지만, 경리과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고 했다. 일보다도 사람들이 힘들었다. 당시엔 실내흡연이 가능한 시기였는데 사무실에서 남성 직원들이 담배를 피웠다. 심지어 란희씨는 임신 중이었다. 한번은 울컥해서, 울면서 사무실에서 피우지 말라고 호소했는데 무시당했다고 한다. 후배들도 란희씨의 부탁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넘기며 '뻑뻑' 많이도 피웠단다.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란희씨는 주임에서 곧 계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승진에서 누락됐다. 알고 보니 여성 직원을 싫어했던 팀장이 처음부터 승진 대상자 리스트를 담당 팀에 제출할 때 란희씨를 빼고 올린 거였다. 안 그래도 부서 내에서 고생이 심한데, 승진이 누락되면서 후배들이 란희씨보다 직급이 더 높아지니 억울했다.

2008년, 관선이사가 호텔을 잠시 경영하던 시기였다. 그때 란희씨는 다시 인사담당자로 발령이 났다. 약 3년간 인사업무를 봤고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다시 '높으신 분들'의 권력다툼이 뒤집혔다. 주명건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됐다. 그때, 현재 세종호텔 사장인 O씨가 총무부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란희씨에게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라며 객실정비로 란희씨를 이동시켰다. 하지만 그 또한 얼마 가지 못했다. 고작 몇개월 일했는데, 주명건의 사람이던 총지배인이 란희씨가 사무직으로 편히 일하는 걸 못 마땅해 해서 힘들기로 유명한 '룸메이드'로 발령냈다.

당시만 해도 룸메이드가 호텔 내에선 부끄러운 직업,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그 탓에 란희씨는 룸메이드 옷을 처음 입던 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루에 방을 15개나 청소해야 해서 하루종일 종종대며 일했다.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았다. 꿈에서도 란희씨는 청소 카트를 끌고 호텔 복도를 종종댔다. 그렇게 약 8년간 란희씨는 룸메이드로 일했다.

2020년, 호텔은 룸메이드 부서를 전부 용역화한다며 희망퇴직을 받았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사람은 딱 2명이었는데, 란희씨와 또 다른 조합원 지희씨였다. 둘은 조리부 연회주방의 팬츄리(설거지 담당)로 갔다. 팬츄리는 조리부의 가장 힘든 일이었다. 웨딩 한번 하면 갈비탕 그릇만 800~1000개는 나왔다. 그 외에도 도시락, 요리 기물 등 천장까지 쌓인 설거지를 해야 했다. 란희씨가 초벌 설거지를 한 뒤 기계에 그릇을 넣고, 끝나면 그릇을 다시 빼냈다. 아무리 기계가 마무리한다고 해도, 고되고 피곤했다.
 
2022년 여름, 호텔 정문 앞에서 선전전 중인 김란희 조합원
▲ 호텔 앞에서 아침선전전 중인 김란희 조합원 2022년 여름, 호텔 정문 앞에서 선전전 중인 김란희 조합원
ⓒ 세종호텔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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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회사는 코로나를 핑계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15명의 조합원만 골라서 해고했고 란희씨도 13번이나 부서 이동을 당한 30년의 호텔 생활을 잠시 접게 되었다. 란희씨가 해고 투쟁에 함께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동참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불타는 정의감도 아니었고 대단한 계급의식도 아니었고 끈끈한 동지애도 아니었다.

그저 란희씨는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나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투쟁을 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과거에 란희씨가 호텔에서 일하고 있을 때 한 동생이 그를 보고 말했단다. "언니는 캔디같아. 외로워도 슬퍼도 계속 달리잖아." 그 말처럼, 란희씨는 외로워도 슬퍼도 싸운다.

거짓말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자랑스럽기 위해서. 양심적인 사람이기 위해서. 다시 말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관련 기사]
세종호텔에서 26년 일한 혜진씨, 행복해지길 바란다 http://omn.kr/1ykf1

덧붙이는 글 | 오는 6월 30일과 7월 1일, 해고철회 촉구 도보행진이 진행됩니다.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인스타그램(@sejonghotel_union)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태그:#세종호텔, #명동, #복직투쟁, #해고, #명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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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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