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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니게 바람이 휘몰아쳤던 6월 하순의 어느 날 화도면 동막리의 바닷가로 갔습니다. 바람이 몰아치는 데도 바닷가에는 노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람과 맞대면하고 있는 그들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역시 청춘은 아름답습니다.

바람 부는 날 갔던 동막리 해변은 강화의 명소 중에서도 명소입니다. 모래사장이 있어 '동막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그곳은 예쁜 카페며 펜션들이 많아 휴일이면 활기가 넘칩니다. 더구나 푸른 소나무 숲이 바닷가에 있어 누구라도 저곳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동막해수욕장 근처 두 돈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막리에는 돈대도 두 군데나 있습니다. '분오리돈대'와 '송곶돈대'가 그곳입니다. 두 돈대 모두 '진무영'에서 관할했을 정도로 중요한 돈대였습니다. 진무영(鎭撫營)은 조선 시대, 바다 방위를 목적으로 조직된 군영으로 강화도에 본영이 있었습니다. 병력은 포군(砲軍)을 중심으로 하여 3000여 명에 달하였으며 강화도의 중요 돈대들을 관할하며 강화도의 해안 방위를 했습니다. 
 
동막해수욕장에서 갈매기들과 놀고 있는 아이. 바닷가 언덕 위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동막해수욕장에서 갈매기들과 놀고 있는 아이. 바닷가 언덕 위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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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가 126m나 되는 송곶돈대
 둘레가 126m나 되는 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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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오리돈대와 송곶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습니다. 두 돈대는 만든 시기도 같고 진무영 소속의 중요한 돈대라는 점도 같지만 지금의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다릅니다. 분오리돈대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관리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송곶돈대는 비지정 문화재라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허물어져 갑니다.

'분오리돈대'는 도로와 인접해 있는데다 널리 알려진 명소라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송곶돈대'는 그렇지 못합니다. 길 가에 안내판이 있기는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설혹 돈대에 관심이 있어 안내판을 따라간다 해도 송곶돈대까지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습니다. 돈대 바로 앞까지 민가가 들어서서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두 돈대, 받는 대접이 다르다

송곶돈대를 찾아갑니다. 큰 길에서 벗어나 안내판이 가리키는 대로 좁은 길로 들어섭니다. 돈대는 바닷가의 높은 언덕이나 산자락 끝에 우뚝하게 서있으니 멀리서도 보입니다. 설혹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해도 돈대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대가 보이지 않습니다. 송곶돈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길의 끝, 막다른 펜션의 마당에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돈대는 이 집 너머에 있다면서 펜션의 뜰을 가로질러 가라고 하지 뭡니까. 아니, 그 큰 돈대가 집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다니... 게다가 남의 집 마당을 거쳐서 가야 한다니요.
 
송곶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송곶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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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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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 주인의 말마따나 돈대는 집 뒤에 있었습니다. 그 큰 돈대가 다 무너지고 허물어져서 형태만 남아 있었습니다. 송곶돈대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잠잠히 있었습니다.
  
사실 송곶돈대로 가는 길은 안내판이 가리키는 이 길 말고도 또 있습니다. 그 길은 바닷가 둑길을 따라서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안내판도 없으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송곶돈대로 가는 길은 펜션 마당을 거쳐 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남의 집 마당을 통해 가야 하다니

다행히 집 주인이 마당을 내놨습니다. 마니산 주차장 인근에서 출발해 동막해수욕장까지 가는 '강화나들길' 20코스도 이 펜션을 거쳐 갑니다. 집 주인이 앞 마당을 내놓지 않았다면 '나들길'은 물론이고 송곶돈대도 섬 속의 섬이 될 뻔 했습니다.
 
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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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곶돈대를 둘러보는 사람들
 송곶돈대를 둘러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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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로 역사 유적지가 많습니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강화에는 우리 민족의 전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더구나 강화는 바닷길을 통해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나 마찬가지였던 터라 도성을 수호하기 위한 군사 방어 시설들도 많습니다.

돈대는 그중 대표적인 해양 관방시설입니다. 바닷가에 촘촘하게 54개의 돈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돈대들은 대부분 조선 숙종 5년(1679)에 만든 국방 요새입니다. 그중 세월이 지나면서 멸실된 곳도 몇 군데 있지만 현재까지 47개의 돈대가 남아 있습니다.

송곶돈대의 과거와 현재

송곶돈대는 '동막돈대'로도 불렸던 돈대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182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다와 맞닿아있는 언덕에 있는 송곶돈대는 방형(네모 모양)으로 한 면의 길이는 31m에 달합니다. 원래는 갈곶돈대 별장에 속해 있었지만 본영인 진무영이 직접 관할했을 정도로 중요 돈대였습니다.

송곶돈대는 현재 기단석과 석축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바다 쪽 성벽에는 대포를 배치해 두었던 포좌도 4군데나 있었지만 그 역시 기단부만 확인될 뿐입니다. 관리가 소홀해 현재도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송곶돈대의 포좌 흔적
 송곶돈대의 포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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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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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곶돈대는 비지정 문화재입니다. 문화재적 가치 부족으로 문화재보호법상 지정 혹은 등록되지 않은 문화재가 비지정문화재입니다. 이러한 문화재들은 당국의 관리 감독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풍화에 의해 유실되거나 사람들의 부주의로 인해 훼손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강화에 남아 있는 47개 돈대 중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 돈대는 12개소이고 인천시 지정 문화재는 13개입니다. 또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도 있습니다. 송곶돈대처럼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아 방치된 돈대도 있습니다.

문화재 지정 여부에 따라 대접이 달라

돈대 중에는 강화 외성 구간에 포함되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곳도 있습니다. 강화 외성은 고려 고종 20년(1233년)에 축조한 성입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이 성은 북쪽의 적북돈대로부터 동쪽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있습니다.

강화 외성은 사적 452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받고 있습니다. 강화도 돈대들 중 12개가 외성에 속해 있어 법적인 보호를 받습니다. '월곶, 옥창, 염주, 좌강, 용당, 화도, 오두, 광성, 손석항, 용두, 덕진, 초지돈대'가 그 돈대들입니다.

'후애, 분오리, 미루지, 북일곶, 장곶, 선수, 굴암, 건평, 망양, 삼암, 계룡, 망월, 무태' 등의 13개 돈대는 인천시 지정 문화재입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돈대도 있습니다. '광암, 구등곶, 작성, 초루, 불장, 의두, 철북' 등 7개의 돈대는 민통선 안에 있어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송곶돈대
 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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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맞닿아 있는 송곶돈대
 바다와 맞닿아 있는 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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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는 돈대도 있지만 법적 보호 장치가 없어 방치 또는 멸실된 돈대들도 있습니다. '가리산, 장자평, 섬암, 택지, 동검북, 양암, 갈곶, 송곶, 송강, 석각, 인화, 석우, 빙현, 소우, 숙룡, 낙성, 적북, 휴암, 망해' 등 19개소가 그러한 돈대들입니다.

비지정 문화재인 돈대들 중에는 아무 것도 없이 터만 남아 있는 곳도 있고 기단석과 석축 일부만 남아 있는 돈대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방치된 돈대들은 자꾸 훼손되어 흔적들이 사라집니다. 송곶돈대 역시 그렇습니다.

방치된 비지정 돈대들

아름다워 안타까운 송곶돈대입니다. 무너져 내린 석축들에서 세월의 무게를 봅니다. 바람에도 맞서던 동막해수욕장의 그 청년들처럼 송곶돈대도 젊은 날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이제 송곶돈대는 무거운 몸을 비우고 자꾸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송곶돈대
 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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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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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이 안타깝습니다. 정비를 하고 복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폐허의 재해석, 그러나

알베르 까뮈가 알제리 티파사의 고대 로마 유적을 보며 했던 말을 떠올려 봅니다.
 
"폐허는 다시금 돌들이 되니, 인간의 손길로 닦여진 저 반드러운 손때를 이제는 다 버리고 자연 속으로 되돌아왔다. (중략) 기나긴 세월의 풍상으로 이 폐허는 어머니의 집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오늘에야 마침내 과거가 폐허를 떠나버렸으니, 무너지게 마련인 사물의 중심으로 폐허를 다시 인도해주는 저 심원한 힘에 복종하는 것 이외에 다른 마음 쓸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 '티파사에서의 결혼' 중에서
 
정비하고 복원해서 되살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대지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란 생각도 듭니다. 송곶돈대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더래도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합니다. 길이 없어 남의 집 마당을 거쳐야만 돈대로 갈 수 있으니... 송곶돈대는 언제쯤 되어야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송곶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182번지
- 별칭 : 동막돈대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둘레 - 126m. 한 면의 길이 - 31m
- 형태 : 방형(네모 모양)
- 문화재 지정여부 : 비지정
- 현 상태 : 동쪽 석축과 문지 일부가 남아 있음. 포좌는 기단부만 확인될 뿐 완전한 형태를 찾아볼 수 없음.
- 그외 : 분오리돈대와 3055m 거리. 돈대가 펜션 등 민가와 붙어 있음. 펜션 단지를 통해 진입할 수 있음.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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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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