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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이라는 표현이 사람들의 입과 입 사이를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려해왔던 인구 절벽이 현실화된 지금, 사람들은 이 말을 당연한 듯이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수도권으로 젊은 세대가 몰리면서 나머지 지방의 인구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20~30년 뒤에는 일부 읍면동과 시군구가 소멸될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향후 10년, 매년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만들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인구 감소를 억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지방의 인구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소멸할 정도로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지방소멸론을 외치는 이면에는 그것을 반대 논리로 삼아 수도권에 대한 자원 집중을 역설하는 음모가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소위 소멸위험지수라는 것도 그 지표가 단순하며 부적절하고 실제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며칠 전에 게재된 박진도 기자의 '살생부'까지 등장... 지방소멸론에 숨은 음모' http://omn.kr/1znju 라는 기사를 참고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후자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다른 관점으로 이 현상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요약하자면 첫째 우리나라의 지방은 이제야 쾌적해지기 시작했다. 둘째 인구 규모보다 인구 집단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 단위의 복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방, 이제야 쾌적해지기 시작

잠깐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인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대한민국의 실효면적은 10만km² 정도(세계 108위)인데, 인구는 5200만 명(세계 28위), GDP는 1조 7천억 달러 정도(세계 9위)입니다.

1km² 당 인구로 계산하는 인구밀도는, 작은 섬나라와 도시국가들을 제외하고, 세계 3위(515명)이며, OECD 국가 중에서는 당당하게 1위입니다. 특히 서울은 도시 인구밀도 순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 1위입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죠.

그런데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 통계를 들이밀면서 정책을 결정하던 윗분들은 뭐라고 했던가요. 국토의 70%가 산이라 실제 생활 면적은 더 좁은데 사람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어 북적북적 대니까 더 살기 힘들다, 그러니 인구도 줄이고 농촌과 지방 도시도 살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도시화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산업화도 급속하게 진행됐고 생산성도 올라가면서 경제 규모도 커졌으니까요. 사람들과 기업·정부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고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창의성도 촉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 실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보다 인구밀도가 낮은 국가 중에서 우리보다 높은 경제발전 수준을 이룬 국가도 있고 경쟁으로 인한 신제품 개발이 늘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경쟁과 함께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는 갈등을 빚기 마련입니다. 대도시에서 더 경쟁 논리를 앞세우고 스트레스 수준이 높고, 우울과 자살이 잦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대 논리도 있고 부작용도 상당히 크다는 것이며 따라서 위의 논리가 정답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 논지로 돌아와 보면 국가 전체와 지방자치단체의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정말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서울과 경기를 제외하고 대도시(광역시)들의 인구밀도는 3000명 정도며 중소도시와 농촌을 포함하는 광역시의 그것은 250명 정도입니다. 감이 잘 안 오겠지만 여하간 다른 국가·도시들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서울과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 그리고 심지어 생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가격과 일상다반사인 교통체증·높은 물가·협소한 사적 공간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기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모두 몰려 있습니다.

그만큼 높은 소득과 자산을 얻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이익이 손실을 초과하고도 남는 것일까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냥 그곳에 모든 것이 있고 그래서 편리하다고 믿게 되고 익숙해져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절대적인 인구 감소 때문에 지방 인구 감소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겠지만 그것을 종말의 전조로 여기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생활의 '쾌적성'을 생각해 보면 인구밀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굳이 수도권 사람들을 억지로 지방으로 끌어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지방이 더 살기 좋고 편리하며 여유롭고 기회도 많으며 전반적으로 쾌적하다는 '담론'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수도권에서 아등바등 살아가야 할 필요를 덜 느낄 것입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창희는 경기도와 서울의 관계를 달걀노른자와 흰자 사이의 관계로 비유합니다. 매일 긴 시간을 출퇴근에 사용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희생합니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삼남매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주합니다. 그들은 결국 각자의 굴레에서 해방됐지만, 그 해방은 생활환경이 아닌 관계와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인구 규모보다 인구집단의 다양성 고려해야

앞서 소개한 지방소멸론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른바 '소멸위험지수'가 20~39세 여성의 인구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나눈 값이라며 이 지수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역의 인구는 출산만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출산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더 '나은'(무엇이 나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가임여성의 수가 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중소도시와 농촌으로 이동하도록 하면 됩니다.

마침 그런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을 실행하거나 준비하거나 원하는 사람들이죠. 80세 이상 어르신들의 건강 수준이 높지 않고 생존율이 급격하게 낮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어르신들의 귀농·귀촌을 권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을 하다가 65세 전후에 은퇴하고 퇴직금과 연금, 넉넉한 자산을 가지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충분히 권장할 수 있으며, 그것을 원하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도 박진도 기자의 기사에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데요. 도시민의 34.4%가 '여건이 되면' 귀농·귀촌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내년에 만 65세에 도달하는 58년 개띠를 포함한 베이비붐 세대는 여전히 높은 생존율과 큰 인구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103만 명으로 시작해서 94만여 명이 생존해 있는 1971년생을 전후로 평균 80만 명 정도가 앞으로 10년 이상 매년 은퇴할 것이고, 1980년대생도 70만 명 정도는 됩니다.

1990년대생도 매년 60만 명 이상 태어나서 대부분이 생존해 있고 이들 대부분은 최소한 70세까지는 큰 병 없이 생존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40년 동안 매년 최소 50만 명 이상 발생하는 은퇴자들이 노후의 생활 터전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중소도시, 도시와 농산어촌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은퇴한 어르신들만 한적한 시골동네, 또는 근교의 조용하고 넉넉한 주거환경을 원할까요. 우리나라에는 스스로 그리고 자녀들이 경쟁하기를 원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일자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자리를 잡고 더 좋은 집과 차를 사고, 자녀를 더 좋은 유치원과 학교·학원에 보내고 스마트폰과 게임기를 쥐여주고 있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된 상황에서 직장에 매일 출퇴근하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도시에서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전까지는 순위를 매기는 시험도 보지 않고, 초등학교 교과과정도 느슨해진 덕에 아이를 경쟁으로 내몰 생각이 아니라면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시골에서 자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기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에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제주·세종, 일부 시군구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주춤하기는 했지만 귀농·귀촌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대도시 근교로 주거를 옮기는 사람들이 느는 게 이러한 가능성을 엿보게 합니다.
 
종말의 전조보다 희망의 씨앗을 심어가야
 종말의 전조보다 희망의 씨앗을 심어가야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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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단위의 복지를 강화해야

먼저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집 ▲음식·옷·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소비공간 ▲병·의원 ▲학교 등 교육기관 ▲건강관리·스포츠·문화·여가 시설 ▲공공 재화와 서비스 ▲민간 사회서비스 ▲이동 수단 ▲앞의 모든 것을 구입하거나 지불할 수 있는 소득 또는 그 소득을 대체하는 자원과 서비스 ▲앞의 소득을 얻기 위한 또는 그와 상관없이 보람과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자리 등입니다.

모든 시민은 일상에서 대부분의 요소들가 필요하겠지만, 인구집단에 따라 특별히 더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지역사회에 만약 일부 요소가 없다면 상당히 불편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건강 이슈가 발현되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가까운 병·의원이 필수적입니다.

노년기 초기의 건강한 어르신들은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 생길 겁니다. 80세 이상이 되면 기본적인 성인병뿐만 아니라 노인성 질환에 대처하는 의료기관, 요양기관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산골 깊숙이 들어가 사시면 위험하겠죠.

미취학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정도의 부부에게는 학교와 교육기관이 중요할 것입니다. '중학교 전까지 애들은 놀아야지'라고 생각했더라도 학교는 좋은 곳에 보내고 싶겠죠. 그리고 '나만 아는 이기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면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조금 큰 학교 근처에 집을 얻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은 일자리를 갖고 재택근무가 가능하거나 프리랜서이거나 자산이 넉넉한데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에게는 그저 한적한 산책길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차로 이동해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문화여가시설이 있다면 더 좋겠죠.

어떤 이들은 '날 좀 내버려 둬'라는 심정으로 지방으로 떠나왔을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내버려 두는 게 낫겠지만, 기질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비율도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국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게 한인교회가 필수 아이템이듯이 시골에서는 교회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전국적으로 시행됐지만 이주 가족이 마을의 터줏대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을 환대하는 사회서비스도 필요할 것입니다. 사회복지사들이 잘하는 일이죠.

지난 20여 년간 지방에는 다문화가족과 외국인노동자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농촌지역에 많은 이유입니다. 이들을 포함하여 지방·지역·마을·동네에서 새로운 건강한 공동체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사회서비스 제공자들과 기존 마을주민·이주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어야 할 '우리들의 블루스'일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일단 수도권과 지방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국가와 사회·공동체를 만들어가려고 하는지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190여 개 국가 가운데 인구가 1천만 명을 넘는 국가는 92개국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100개가 넘는 국가는 서울보다 인구가 적습니다. 인구가 300만 명을 넘는 국가는 135개국입니다. 인천광역시보다 인구가 적은 국가가 60개 이상입니다.

150만명 규모인 대전광역시보다 인구가 적은 국가도 50여 개입니다. 대부분 섬이나 도시국가이지만, 마카오나 룩셈부르크, 아이슬란드처럼 잘 알려졌고, 부유한 국가들도 있습니다. 인구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 지역사회에 사는 주민들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하고,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지방소멸, #지역쾌적화, #지역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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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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