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달랑 세 명. 지난달 인쇄인들의 이야기를 듣자며 기획한 '인쇄인 포럼'이라는 행사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다. 기시감이 든다. 6년 전 영등포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상인 대학을 준비하면서 전단을 돌리고, 포스터와 현수막을 붙이고, 시장 상인회 임원들께 홍보를 부탁하는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모인 상인이 한 명이었다.

500개 점포 상인 중에서 고작 1명이라니! 뭐가 잘못되었을까? 답은 곧 알게 되었다. 홍보를 겸해 상인 100명에게 걷은 설문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주로 아침까지 장사하고 오후 2~3시에 출근한다는 점, 그리고 80%가 종사자 2명 이하의 점포라 쉽게 어느 한 사람도 가게를 비울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상인 대학이라고 마련한 시간이 도무지 상인들이 올 수 없는 시간이자 환경이었던 셈이다. 설문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다. 공급자 중심으로 한 기획의 전형인 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유익하다고 생각한 것이 주민들에게는 전혀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절감했다.
 
이날 모인 인쇄인은 모두 세 명.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센터의 역할’이라는, 자기 생업과 먼 주제의 포럼에 응해주신 분들이 세 분이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 인쇄인 포럼 첫 번째 이날 모인 인쇄인은 모두 세 명.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센터의 역할’이라는, 자기 생업과 먼 주제의 포럼에 응해주신 분들이 세 분이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 최대혁

관련사진보기


그 뒤로는 기획한 행사에 사람이 적게 오면 일단 기획이 적절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인쇄인 포럼도 마찬가지. 1회차 포럼에 내세운 '서울인쇄센터의 역할'이란 것이 인쇄인에게 중요한 화두일지를 돌아보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다, 인플레다, 가뜩이나 버거운 시간을 겪고 있는 인쇄인에게 센터의 할 일이 무슨 절실한 문제겠나. 그럼에도 참여한 세 명이 대단한 거지.

2회차 포럼의 방향은 인쇄인의 관점에서 그것도 모인 이들의 요구에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1회차에 모인 이들 중에 충무로 일대 인쇄인의 이름을 걸고 로컬 브랜드를 개척 중인 이가 있어 이를 소개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자투리'라고 이름 붙인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는 김대풍씨가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2회차는 그렇게 '로컬 브랜드, 필요한가'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렇게 7월 5일 화요일 두 번째 포럼이 열렸다.

이날 모인 인쇄인은 모두 여섯 명. 지난 달 첫 번째 포럼과 비교하면 200%의 성장이다. 사람이 오지 않으면 발표자랑 단둘이 영상을 찍어서 온라인에 올릴 생각까지 했던 터라 홀가분한 마음으로 포럼을 시작했다.
 
두 번째 모임은 인쇄인들의 이야기로 풀어갔다. ‘로컬 브랜드’를 개발 중인 김대풍씨의 이야기에 모인 이들은 큰 관심과 호응으로 함께 했다.
▲ 인쇄인 포럼 두 번째 두 번째 모임은 인쇄인들의 이야기로 풀어갔다. ‘로컬 브랜드’를 개발 중인 김대풍씨의 이야기에 모인 이들은 큰 관심과 호응으로 함께 했다.
ⓒ 최대혁

관련사진보기

 
'자투리'라는 브랜드는 이름처럼 인쇄소에서 재단하고 버려지는 종이들을 활용해 만든 상품들을 아우른다고 한다. 좋은 기획이다. 서울인쇄센터도 어마어마한 자투리가 나온다. 버리는 종이가 아깝기도 하고 센터에 오시는 이용자들에게 선물로 드리고자 자투리들을 모아서 메모지를 만들어 드리기는 하는데, 가져가는 양에 비해 나오는 자투리가 많아 상당수는 그냥 폐지로 내놓는다.
 
서울인쇄센터에서도 어마어마한 자투리가 나와 이렇게 메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 자투리로 만든 메모장 서울인쇄센터에서도 어마어마한 자투리가 나와 이렇게 메모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 최대혁

관련사진보기

 
서울인쇄센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물량을 소화하는 인쇄소는 얼마나 많을까? 정확한 통계는 찾을 수 없었지만, 포럼에서 김대풍 씨가 예시로 보여준 시제품들도 모두 자신의 인쇄소에서 나온 자투리 종이로 만든 것이었다.

종이가 비싼 고급지일수록 자투리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한다. 흔히 쓰이는 종이라면 여백에 명함이라도 넣어서 인쇄를 하겠지만, 고객의 요청으로 고급지나 특수지를 쓴 경우는 여백은 그냥 버리게 된다고 한다. 포럼에 참여한 다른 인쇄인도 '쓸 데가 없지만 버릴 수 없어 쌓아놓은 좋은 종이가 꽤 된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자투리를 이용한 참신한 상품을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자투리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경로를 개척하고, 또 로컬 브랜드를 홍보하는 일까지 인쇄를 생업으로 해온 이들에게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포럼에 참여한 김효영씨는 그렇기 때문에 '로컬 브랜드'라는 틀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효영씨는 자신이 방산시장에서 만든 '포동포동 방산'의 예를 들며, 어느 인쇄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로컬 브랜드'를 중심으로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인쇄인이 모여야 한다는 얘기로 흘렀다. 생산자인 인쇄인과 창작자를 만나기 위해서도 이렇게 느슨하게 스치듯이라도 자주 만날 기회가 필요하고, 인쇄인끼리도 자주 만나야 로컬 브랜드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데에 공감대를 이루었다.

포럼 2회차는 그렇게 끝났다. 포럼이나 로컬 브랜드나 이제 갓 첫발을 내딛으면서 서로를 초대하기 위해 말문을 튼 셈이다. 이들의 바람처럼 또 다른 멋진 로컬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인쇄인들의 중지를 모아 나갈 수 있을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지만 숫자에 연연하는 조바심보다는 지금 여기 모인 이들에 대한 기대로 다음을 준비해보자, 다독여 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태그:#서울인쇄센터, #인쇄인포럼, #로컬 브랜드, #자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