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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희대의 한 철학과 교수가 강의 도중 "일본군 '위안부'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매춘한 것", "성매매 여성들을 우리가 위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 이 교수는 식민지배를 '일제가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며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학생들이 반발하자 교수는 일제 침략 자체를 옹호한 게 아니라면서도 위안부에 대한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 언론이 공식적 입장을 묻자 자신은 역사 전문가가 아니라면서 발언을 철회했다.

대학에서의 역사왜곡 문제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져 왔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을지 모른다. 2019년에는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펴 사회적 논란이 됐다. 2021년에는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가 '태평양 전쟁에서 성을 위한 계약'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규정하려다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유독 교육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자들인 이들은 '다양한 시각', '학문의 자유'를 명분 삼아 왜곡된 역사를 무차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야 할 대학이 왜곡된 역사의식, 사회의식으로 범벅이 되어 가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선생(先生)들로부터 '공동체를 위한 올바름과 도리'를 배울 수 있는 걸까.

이런 역사왜곡, 왜 끊임없이 발생하나 
 
‘30주년 기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525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정의연 해체하라’, ‘위안부 성노예설 거짓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수요시위를 방해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30주년 기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525차 정기 수요시위’가 열린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정의연 해체하라’, ‘위안부 성노예설 거짓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이며 수요시위를 방해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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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하버드에 거액의 기부를 하면서 만들어진 직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일본 도요타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제강점기를 연구했다. 이들이 어떻게 일본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본 기업들은 이처럼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주장을 대변해 줄 대리인들을 육성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발벗고 나섰다. 2021년, '날조된 징용공 문제'라는 책을 번역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제8회 일본연구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일본 총리가 직접 수상하고 축전을 보냈다.

이러니 일본의 논리와 주장으로 무장한 학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들은 일본이 원할 때, 일본이 원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된다.

문제는 더 있다. 이렇게 교수들이 역사를 왜곡해도 대가는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는 것이다. 교육은 피교육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인 만큼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처벌은 단호하고 강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의 항의로 논란이 되어서야 대학 당국은 징계에 들어간다. 그것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이다. 류석춘 교수는 정직 1개월에 그쳤고, 이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정년퇴임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예정대로 배포되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이와 같이 일본의 적극적인 지원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환경 속에서 뿌리를 키워왔다.

같은 전범국가인 독일은 공공장소에서 역사를 부정하거나 나치를 선동하면 형법에 따라 처벌 받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2021년, '5·18역사왜곡처벌법'이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전례가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경우, 일본이 1993년 고노담화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이 공식 관여했음을 인정했고, 무엇보다 산증인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상황에서 처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처벌은커녕 아무런 제재없이, 그것도 대학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서울겨레하나 활동가들이 '일본군'위안부' 일제 강제동원 문제 졸속해결 반대한다' 피켓을 들고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서울겨레하나 활동가들이 "일본군"위안부" 일제 강제동원 문제 졸속해결 반대한다" 피켓을 들고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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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만들어진 역사부정과 역사왜곡은 우리 사회로, 그리고 공동체 깊숙한 곳까지 확장된다.

요즘 수요시위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본래 수요시위는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자 평화를 실천하는 곳이었다. 1992년 1월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수요시위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쉼없이 싸워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투쟁으로 어느새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왔다. 매주 수요일이면 선생님들이 청소년들을 이끌고 수요시위에 참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학생들의 공연과 발언도 끊이지 않았다.

2022년, 현재 수요시위는 역사부정세력들에 의해 난자당하고 있다. 역사부정세력들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소녀상과 피해자들을 모욕한다. 이들이 근거로 삼는 자료가 바로 일본의 지원을 받은 대학 교수들의 연구, 그리고 그들이 발표하는 논문과 책 등이다.

뜻밖의 지원군? 망신이 따로 없다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있는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수요시위를 방해하고 있는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 정의기억연대 유튜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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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옥순, 이우연 등 역사부정세력들은 독일까지 건너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 (관련기사 : 주옥순 일행이 베를린서 저지른 '만행', 그 기이한 풍경 http://omn.kr/1zn0j) 일본 기시다 총리가 독일 총리에게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공식 요청한 뒤였다. 일본 언론은 '뜻밖의 지원군'이라며 이들을 격려했다. 국제 망신이 따로 없다. 한국과 일본의 극우는 이렇게 결집하며 이제 전 세계로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를 향한 끊임없는 부정과 왜곡을 재생산하고 가르치는 대학에서 어떻게 공정과 '정의'를 배우겠는가.

여성이자 성노예였던 일본군'위안부'는 일제강점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약자이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또 다시 오랜 기간 혐오와 차별로 고통 받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들에게 쏟아지는 혐오의 말들이 이대로 용인된다면 우리는 그 어떤 역사도, 정의도 주장할 자격이 없다.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낯 뜨거운 욕설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회가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윤석열 새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지만 어떠한 입장도, 원칙도 밝힌 바 없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와 같이 졸속해결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교수들의 망언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학생들처럼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부터, 소녀상을, 수요시위를 지키는 것부터 함께 시작하자. 역사정의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일은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나와 우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18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일관계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22년 5월 18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일관계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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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사단법인 겨레하나 국제평화부장입니다.


태그:#수요시위, #역사왜곡, #공동체, #소녀상, #교수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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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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