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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윤의 월하탄금도(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이경윤의 월하탄금도(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달 아래 거문고를 탄다. 자연 그대로 바람의 숨결을 따라 강함(剛)과 부드러움(柔) 그리고 짙고(濃) 옅음(淡)이 흡사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경지처럼, 소리가 흐른다. 강유의 농담으로 줄을 누르며 놀고, 술대로 벼락치듯 누르다가 바람처럼 살랑하게 놀려가며 거문고 청징한 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풍류(風流). 바람의 흐름을 타는 절로절로의 자연(自然)의 경지. 산중 언덕 너머 교교한 달빛 아래 바람은 청아한 양금소리처럼 불어오고 줄을 고르고 천하제일 줄풍류를 탄다. 느짓한 세월따라 바람은 늘 촉급을 타며 흘러가고 달과 내가 하나의 경지에 이르는 찰나 이경윤은 누굴 상상했을까.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산수화에는 최고인 그가 누구를 그린 것일까! 인생에 대한 회한 가득하지만, 마음의 풍류를 얻은 도(道)의 경지에서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절경을 구가하고 있다. 도의 경지에 들어 '도가' '비가도'인 노자의 경지가 느껴온다. 도인데 도가 아닌, 그런 경지의 음악처럼 줄 없는 거문고를 타고 있다. 풍류의 경지에 든 도인의 숨결이 은은한 달처럼 다가온다.

거문고를 흔히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한다. 모든 음악의 으뜸이다. 선비의 악기로 대별되지만, 멀리 고구려의 악기이다. 고구려의 제2재상 왕산악이 창제하며 소리를 타니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하여 '현학금(玄鶴琴)'이라 했다. 현(玄)의 의미대로 하늘과 우주의 기운을 담은 신의 악기이다. 말 그대로 신물(神物)인 셈이다. 그럼 만큼 비곡(秘曲)의 경지로 이어진다. 통일신라시기 지리산 계곡에 집거한 옥보고의 거문고 소리를 어렵게 전승하여 고려와 조선을 이으며 백악의 으뜸으로 정좌해 있다.

조선조 거문고 명인이자 학자인 오희상(1763∼1833)은 거문고를 탈 때 오불탄(五不彈), 즉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할 때, 속된 사람을 대할 때, 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은 자세가 적당하지 못할 때, 의관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을 때는 연주를 안했다 한다. 그리고 오능탄(五能彈)이라 하여 앉은 자세를 안정감 있게 하고, 시선은 한곳을 향하며, 생각은 한가롭게 하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며, 지법(指法)을 견고히 한 후에야 연주에 임했다. 거문고를 통해 철저한 자기수양의 자세로 임했다.

양덕수라는 이가 임진왜란 이후 흐트러진 세상을 다듬듯 양금신보(梁琴新譜)를 만든다. 그 첫머리에 "琴者禁也 禁止於耶以正心也"라고 써있다. 거문고를 탄다는 것은 사악하고 헛된 것을 금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거문고를 통해 자연과의 부단한 물아일체를 이루며 성정(性情)을 바로 세우는 성리학의 성정미학을 구현하였다. 조선조는 성리학의 꽃은 거문고미학과도 상통할 만하다.

거문고는 여섯줄이다. 천부경의 중심 수가 바로 육(六)이다. 생육(生六) 즉 모든 것을 생성하는 여섯줄, 그 첫줄이 문현(文絃)이요 마지막 줄이 무현(武絃)이다. 그리고 문현 다음 줄이 주로 소리가 노는 유현(遊絃)에 이어 벼락치듯 대점(大點)으로 내리 꽂히는 대현(大絃), 그리고 개방 줄로 시원하게 소리가 청청하며 터져 나가는 괘상청,쾌하청이 있다. 그 줄밑에 열여섯개의 괘(卦)가 산처럼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오죽이란 단단한 대나무로 만든 술대를 잡고 줄을 탄다.

여섯 줄 열여섯 괘 위에 세상을 펼쳐놓고 거문고 풍류를 엮어 나간다. 나는 1994년인가 거문고에 대한 글을 쓰며 소위 정악이라 칭하는 음악의 경지는 '거문고 현 위에 주제와 변주로 노는 강유의 농담이다, 라고 정리한 적이다 있다. 하나의 텍스트가 도드리라는 반복을 통한 변주 흡사 돈오점수의 빙빙 돌아드는 것처럼 펼쳐지는 그야말로 변증법적 이중성으로 펼쳐지는 놀음이라 생각됐다.

다음 그림은 성종 때 집성된 음악문화백과사전 <악학궤범>에 설명된 거문고, 오늘날 연주하는 거문고 모습이다.
 
  <악학궤범 거문고도설>(왼쪽)/  <현행 거문고>(오른쪽)
  <악학궤범 거문고도설>(왼쪽)/ <현행 거문고>(오른쪽)
ⓒ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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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 늘어진 줄을 다시 고쳐 매는 것, 부단한 세상살이가 아닌가. 늘 그런 경장하는 초심을 줄을 다룬다. 그런 도드리가 수양의 경지이다. 늘 집을 나서며 구두끈을 풀고 조이는 우리는 해현경장을 하며 산다. 풍류의 저절로 돌아듬을 통해 망아(忘我)의 경지에서 도를 깨우쳐 "以復其性"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곧 풍류를 통하여 도달하고자 했다. 거문고의 줄을 풀고 묶지만 바로 그런 묶음 속에서 부단한 자기 연마를 이룬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이란 인간 본성의 성정(性情)을 바로 세워나가는 것, 이를 놓고 조선의 성리학은 주기(主氣),주리(主理)를 논하고 품격론(品格論)을 논하는 성정미학의 세계를 연다. 대단한 것은 바로 그런 강호가도의 경지가 성리학이고 바로 미학론이란 사실이다.
 
<거문고줄 고르는 여인>, 신윤복, 국립중앙박물관
 <거문고줄 고르는 여인>, 신윤복, 국립중앙박물관
 

보통 여인풍속도에 가야금을 타는 여인의 모습이 많은데, 신윤복이 그린 줄을 고르는 여인의 모습이다. 왼손으로는 괘위의 줄을 고르고 오른손으로 거문고 밑둥의 줄조임세를 만지고 있다. 옆의 여인은 거문고 장식줄인 부들을 만지고 안족을 만지는 듯하다. 혜원 신윤복이 그릴 정도의 여인이면 대단한 거문고의 명인인 듯하다.

이제 거문고를 타보자. 줄을 골랐으니 둥둥 문현소리에 술기둥 소리가 열린다. 고려가요 풍입송曲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조선에도 자장을 미친다. 송강 정철의 가사에서 ' 거문고 줄에 얹어 풍입송이로구나. 손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 버렸도다. 창공에 떠 있는 학이이 고울의 팜 신선이라. 요대(瑤臺)의 달빛아래 행여 아니 만나지 않았던가~' 노래할 정도였다.

아직도 수덕사에 가면 고려가 살아있다. 공민왕이 타던 거문고가 유전한다. 이 거문고에 새겨진 조선후기 화가이자 금석고증의 전문가였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默, 1792∼1840)이 정유년(1837년)에 새긴 찬문에 이 거문고가 공민왕(恭愍王, 1330∼1374)이 만들어 즐기다가 후에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에게 전해졌다 한다. 공민왕의 슬픈 애가가 담겨 있을 이 거문고는 현존하며, 고려의 역사를 생각하게 한다.

동국이상국집을 만든 고려의 천재 이규보는 시와 술을 좋하고, 거문고 연주에서 일가를 이루는 삼혹호(三酷好) 선생이었다. 이규보가 쓴 금명(琴銘)이 있다. 거문고에 직접 새기거나 혹은 새기기 위해 지은 운문 형식의 글이다.
 
"거문고를 켜면서 거문고와 혼연일체가 된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거문고는 악의 으뜸이라, 군자가 항상 사용하여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군자가 아니지만 오히려 거문고 하나를 간직하고 줄도 갖추지 않고서 어루만지며 즐겼더니, 어떤 손님이 이것을 보고 웃고는 이어서 다시 줄을 갖추어 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길게 혹은 짧게 타며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옛날 진나라 도연명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두어 그에 의해 뜻을 밝힐 뿐이었는데, 나는 이 구구한 거문고를 가지고 그 소리를 들으려 하니 어찌 반드시 옛 사람을 본받아야 하겠는가? "

줄 없는 거문고든 줄 있는 거문고든 이규보는 절대경지에서 거문고를 즐겼다. 앞서 월하탄금도의 그림에서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선인이 바로 이규보이다. 학문의 절대 경지처럼 거문고 또한 줄이 아닌 마음의 줄을 타는 경지 또한 조선의 학자들은 구가하고 있다. 화담 서경덕이나 율곡 이이도 무현금의 세계를 구가했다.
 
"거문고의 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줄의 줄을 나는 거라네. 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의 음을 즐기는 것이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네." (서경덕의 무현금명(無絃琴銘)
"쓸쓸하고 적막한 외로운 오동나무, 맑고 시원한 옛 소리여, 한번 연주함에 귀를 깨우고, 두 번 연주함에 마음이 맑아지네. 줄 없으면 너무 담백하고 번거로운 곡조도 너무 지나치네. 내 이 거문고 안고 있지만 누가 내 마음 줄까나?" (이이의 금명(琴銘)
 
성협, <탄금彈琴>, 국립중앙박물관
 성협, <탄금彈琴>, 국립중앙박물관
 

성협의 그림에선 아주 섬세한 손가락 사이를 넘나드는 거문고 연주가 생생히 들려온다. 요금(瑤琴), 아름다운 거문고를 한가로이 타고 있는데, 곡은 차츰 느짓이 돌아가고, 가는 구름 따라 물길 또한 차오른다. 흡사 시절을 논하듯 눈빛이 살아있다.

지음소명월, 소리를 알수록 세상은 작아진다 하는 말인듯 하다. 지음(知音). 종자기라는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가 죽자 절현(絶絃)을 백아의 지음지교(知音之交).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벗을 뜻하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의 대명사이자 극치라고 평가된다. 줄여서 지음(知音)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고산 윤선도 역시 알아주는 거문고연주자였다. 윤선도와 조선 당대 최고의 금객 반금 권해와의 지음은 여전히 기억된다.
 
윤선도의 <고산유금(孤山遺琴)>

탐욕이 마음에서 절제되면 천기가 손가락 아래서 울려
산수의 흥취로 하여금 늘 종자기와 함께하도록 할 것이네
부용의 병든 늙은이가 반금에게 지어주다
오세손 준이 새기다 고요히 중화의 기운 기르니
성나고 욕심스런 마음이 사라진다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가 자신이 직접 만들어 연주했던 거문고 하판에 이 새긴 시이다. 그리고 '제증반금(題贈伴琴)'은 '반금에게 지어주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반금은 권해(權海)의 호이다. 거문고를 잘 탔기 때문에 호를 반금이라고 했다. 권해는 고산과 지음을 이루었다. 증반금贈伴琴'이란 시에서 "소리는 혹이신들 마음이 이러하랴, 마음은 혹이신들 소리를 뉘하나니, 마음이 소리에 나니, 그를 좋아 하노라" 노래하고 있다.

반금은 당시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다. 그리고 또한 이금사라는 이가 연주를 하면 슬퍼서 끝까지 듣지 못할 정도로 절창이었다 한다.
     
김홍도-후원유연後苑遊宴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 모조 복원그림
 김홍도-후원유연後苑遊宴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행려풍속도 모조 복원그림
 
어느 양반집 후원인 듯. 생나무로 둘러친 취병(翠屛)으로 된 후원에서 흡사 최고의 금객을 초청하여 연주를 듣는 모습이다. 대금이 무릎을 괴고 맞추고 있고 주인인 듯 한 인물은 소리삼매경에 그리고 숨죽이며 소리를 듣고 있다. 밖에는 두 선비와 여인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을 나누고 있는 폼이다. 금객은 가객이었다.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하고 그리고 대금과 병주(倂奏)를 하기도 한다. 철학으로서의 거문고가 이제 연주로서 말문이 튼다. 18세기 세상이 열리며 거문고는 시회(詩會),악회(樂會)를 열며 풍류판을 새로 연다.

(계속...)
 

태그:#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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