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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책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책 <아주 편안한 죽음>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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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가, 사회운동가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1963년에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고 쓴 자전적 에세이 형식의 글이다. 을유문화사 발행 양장본은 총 8장의 챕터로 구성돼 있으며, 150여 페이지로 읽기 편안한 두께이다.

보부아르와 겹친 나의 기억

글은 보부아르의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져 병원에 입원한 일로 시작된다. 입원실로 찾아간 보부아르는 5주 만에 본 77세의 엄마가 대퇴골 경부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데다가 쇠약해지고 홀쭉해져 있어 놀란다.

더구나 물리치료사의 동작으로 잠옷이 벌어지면서 엄마의 주름진 복부와 음부를 보게 된다. 엄마가 자신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보부아르는 충격적이었다고 쓴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면서 갓난아기를 목욕시키고 대소변 치우는 일을 자연스럽게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엄마가 만들어주신 천기저귀를 딸에게 채웠고 아무렇지 않게 오줌똥이 묻은 기저귀 빨래를 하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치매로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어 엄마가 아버지의 대소변 치우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대신 하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대소변 치우는 일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는 일은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결혼한 세 딸들 누구에게도 그 일을 시키지 않고 엄마 혼자서 화장실로 아버지를 데려가 기저귀를 벗기고 목욕을 시키고 대변이 묻은 속옷을 빨곤 하셨다.

엄마가 췌장암에 걸려 집에서는 더 이상 통증을 견딜 수 없어 가까운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다.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엄마는 밤마다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엄마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얼른 몸을 일으켜 혼자 걷지 못하게 된 엄마를 부축하고 링거 걸이를 옮기고 엄마의 바지를 내려주고 화장실 변기에 앉히곤 했다. 잘 먹지 못 할 때니 나오는 것도 별로 없는데 엄마의 화장실은 강박이었다.

병간호하는 자식들에게 당신의 대소변을 치우게 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자꾸 화장실을 가려 했던 거 같다. 또 엄마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워 본 경험이 있어서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에 딸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에서도 당신 스스로 몸을 움직여 화장실을 가려 했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하지만 암은 온몸에 전이되고 통증은 점점 심해져 엄마는 모르핀 주사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끔찍한 고통만큼 강해진 약 기운 때문에 환각과 섬망 증상이 엄마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말은 어눌해지고 잘 때 입은 벌어져 있고 얼굴빛은 세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가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피가 마르는 일이었다. 모르핀 주사를 요구하고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주사가 들어가서 통증이 완화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병실에 있는 우리는 지옥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기저귀를 하게 되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나와 여동생은 그리 오래 고생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조금만 음식이 들어가도 전부 설사로 나와서 엄마의 뱃속이 점점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가 세상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설사가 묻은 엄마의 엉덩이와 샅을 닦아 주면서 알게 되었다.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는 엄마의 엉덩이 주변을 보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엄마가 죽어가고 있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도록 서럽고 가슴 아프게 힘든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있었다는 위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석양 무렵 엄마 생각이 나서
▲ 석양 무렵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석양 무렵 엄마 생각이 나서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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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 역시 수술 후 엄마의 병이 암이고 자신의 엄마가 임종 직전의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약하고 쇠약해진 채 입을 벌리고 잠자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보부아르는 집에 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엄마의 벌어진 입을 보면서 보부아르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강한 엄마의 받아들여지지 못한 탐욕과 희망, 비참과 고독함 그리고 비굴에 가까운 고분고분함을 읽어 낸다. 임종 직전까지도 살아야만 한다고 말했던, 삶을 너무나 사랑한 보부아르의 엄마는 가족들 곁에서 세상을 뜬다.

6주 동안 엄마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장례식을 끝낸 보부아르는 "엄마의 죽음이 나를 그토록 강렬하게 뒤흔들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11개월 동안 엄마가 췌장암과 분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엄마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눈물나도록 많이 느꼈다. 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죽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엄마는 당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극구 부인했다. 우리 나이로 76세에 세상을 뜬 엄마는 살고자 하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돌아가셨다.

보부아르의 표현대로 삶에 대한 욕구는 나이가 들었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오래 살았다고 사그라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부아르가 말한 '인간에게 죽음은 부당한 폭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심지어 무자비하게 잔인하고 두렵고도 슬픈 폭력이다. 그것은 떠난 자에게는 원치 않는 떠남이고 남은 자에게는 상처와 슬픔과 그리움을 남긴다.

하지만 보부아르 엄마의 간병인이 말했듯이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운명했음은 '아주 편안한 죽음'에 속한다. 보부아르는 6주 동안 병든 엄마를 돌보면서 그동안 불화했던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한다. 그래서 후회 대신 엄마의 죽음을 어쩌면 편안하게 받아 들인다.

나에게 엄마의 죽음은 편안한 죽음이었다,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11개월 동안 엄마가 췌장암과 분투하는 걸 지켜보면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라서다.

보부아르가 쓴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으며 나는 32개월 전에 떠난 엄마의 죽음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엄마의 죽음은 아주 슬픈 일이지만 죽음으로 가는 엄마의 길 속에 함께 있었던 기억이, 살아있는 나에게는 작은 위로가 된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은 아주 슬프지만 이제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은이), 강초롱 (옮긴이), 을유문화사(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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