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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는 할 이야기가 참 많다. 나의 엄마는 팔순이며 보청기 6년 차다. 처음 엄마가 못 들었을 때는 그냥 엄마가 늙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못 듣는 사람 혼자만 바보 되는 거거든. 너 엄마 금방 그렇게 될 수 있어."

친구의 이 말 한마디를 들은 날 나는 보청기를 해드리기로 결심했다. 대화에서 소외되고 인지력도 떨어지는 것이 청력 저하의 문제란 것을 알았다. 더 위험한 것은 소리 감지에 둔해져서 사고에 노출되는 것이었다. 뒤에 오는 차 소리를 못 들어서 안 피하고 계속 걷기만 하실 때는 정말 아차 싶었다.

안경점 가듯이 그렇게 엄마랑 손잡고 갔다. 보청기는 안경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착용과 동시에 원하는 시력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경처럼 보청기도 귀에 끼는 즉시 귀가 트이고 결제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ㅊ,ㅌ,ㅍ,ㅋ 들어간 단어 유독 못 들어

시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정교한 청력 테스트의 긴 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잃어버린 자음과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청력이 약해지면서 언어도 같이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하기야 우리도 타인의 많은 말들에 노출되면서 말들을 배우지 않나.

내 경우만 해도 며칠을 집에서 고양이와만 지냈을 때, 마치 내가 '고양이어'는 느는데 모국어는 어색해지는 그 느낌이랄까. 개인의 자산은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외모. 또 하나는 그 사람이 가용 가능한 단어. 나는 고양이어 학습, 엄마는 청력 저하로 우리는 둘 다 개인 자산이 없어질 판이다.

육성과 전자음 등 다양한 방식의 듣기 테스트를 지루할 정도로 거쳤다. 그 결과, 엄마는 ㅊ,ㅌ,ㅍ,ㅋ 발음이 들어간 단어를 유독 못 들었다. '트럭'이나 '초코' 단어를 듣고는 따라 하지는 않고 엄마는 눈만 똥그랗다.

'그 자음을 찾아 적절히 각각 출력값을 설정한 프로그램을 탑재한 개인 맞춤 전자제품'이 보청기인 것이었다. 볼륨만 올리는 그냥 증폭기와는 다르다. 그래서 안경과 아주 다른 점은 보청기는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력 상실 기간이 길수록 회복 시간이 더디다. 보청기 착용 후 듣기 연습이 필요한 게 바로 그 이유다. 연습할 단어장을 받았고,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생각하는 방법도 좋다고 했다.

보청기가 아무리 작고 형상 맞춤이라 하더라도 굉장히 귀가 답답하다고 한다. 처음부터 종일 착용했다가는 그 이물감에 대한 불편함, 안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그리고 기대 이하의 성능에 실망할 것이다. 제대로 효과를 보기도 전에 보청기는 아마 서랍 속 잡동사니 신세가 될 것이다.

대략 4개월 정도에 걸쳐서 차차 착용 시간과 출력을 높여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두 시간만 며칠을, 그다음 이삼일은 반나절, 이런 식이다. 초기의 보청기 출력은 목표 청력의 60퍼센트 정도만 들리도록 설정한다. 엄마가 보청기에 적응하는 정도에 맞추어 프로그램 단계를 올리면서 테스트와 조정을 받으러 여러 번 방문해야만 했다.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모델들이 한 회사의 보청기를 선보이고 있다. 2019.6.12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모델들이 한 회사의 보청기를 선보이고 있다. 2019.6.1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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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말씀으로는 어르신들이 보통은 한두 번 정도에서 방문을 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보청기는 영 나랑 안 맞는게 벼~' 한단다. 더구나 자식들은 항상 바쁘다. "어머니. 이제 잘 들려요?" "그럼, 그럼 잘 들리고말고. 고맙다 얘야~" 시골 어르신들은 서랍에 잘 넣어두다가 자식들 내려오는 날만 도착 전에 끼고 기다린단다.

하지만 나는 성실하니까, 보청기 사장님의 권고대로 최대한 모범생처럼 숙지했다. 그래도 엄마가 예전 청력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아이고, 효녀네. 잘했다"라는 말 다음으로 친척들에게 많이 들은 말은 "그런데 느 엄마는 보청기하고도 저렇게 못 듣는다니?"였다. "내다뿌리든지 해라. 돈만 삐렸다잉" 한집 사는 아버지 말씀이다.

"아. 잘 들려~"

CF 광고는 아무래도 거짓인 것 같다. 청력이 정상인 나는 모든 소리가 그냥 들리지만 엄마처럼 보청기를 착용하는 사람은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잘 들리기도 하고 안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내 말의 처음 몇 마디를 엄마는 놓쳐버리기 일쑤다.

"응? 뭐라고?"

대화 전에 먼저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좋다. "엄마 엄마"하고 부르거나 살짝 터치하는 것이다. 보청기 사장님한테 잘 배운 나도 이게 어지간히 어려운데 아무 설명 안 들은 아버지는 오죽할까.

가족의 이해가 중요

그리하여 같이 지내는 가족 모두 방문하도록 하여 다 같이 설명을 듣도록 한단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건 다이어트만이 아니다. 보청기란 청력을 원래대로 회복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을 나와 아버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은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3번 반복하면 누구라도 지친다. 목소리도 커지기 때문이다. 왜 소리를 지르냐며 엄마도 소리가 커진다. 내 50년 습관대로 빠른 말과 신호 없이 본론부터 나와버리는 대화법이 문제인데도 역시 딸은 아무 잘못 없는 엄마한테 슬슬 짜증이 난다.

더 잘해봐야지보다는 대화하기가 싫어진다. 나의 이 고약한 생각에 나 자신한테 실망이다. 그럼에도 당연히 다시 잘해봐야지 한다. 내가 처음부터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거나 엄마의 얼굴과 입을 보고 말했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을. 그래도 감사하자 생각한다. 팔다리나 눈이 아니라 보청기라서 그게 어디야.

"엄마, 내가 더 잘할게. 엄마를 답답해해서 오늘도 미안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보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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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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