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현병이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지만, 실제로는 온전한 하나의 전체로서 인간 존재를 괴롭히는 병이죠. 이전에는 '정신분열병'이라고 불렀지만, 그 명칭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낙인을 부여하기 때문에 2011년 이후로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이렇게 정했다는데, 조현(調絃)이 '악기의 줄을 고르다, 조절하다, 조율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해당 환자들이 인지와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유한 표현이라고 하니, 의사집단에게도 풍부한 감성이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여하간 이 비유를 적용하면, 조현병을 겪는 정신장애인의 문제는 마음에 있는 인지, 사고, 감정, 정서, 언어, 의지 등의 줄을 자신이 처한 시공간에 맞게 조율하지 못한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어떤 마음이 선을 넘을 때 그것을 조율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떤 마음이 선을 넘을 때 그것을 조율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 권지성

관련사진보기

 
이 병은 아직도 그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이 병을 앓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들의 뇌 구조와 기능을 분석한 결과,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과다분비와 거울 신경세포 손상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병은 전체 인구의 최소한 0.5%가 일생 중에 겪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200명 중에 1명은 조현병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매우 흔한 질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이 병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많고, 치료와 개입도 많이 발전되어 왔습니다.

조현병은 사회로부터 위험하다는 편견을 받고 있지만, 조기발견과 적절한 진단, 치료, 투약관리, 사회복귀훈련과 사회적응훈련, 일상생활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전혀 위험하지 않으며, 큰 어려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측면들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종종 마주하게 되는 심각한 사건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의 도입 장면을 놓고 장애인 인권단체들이 상영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습니다. 해당 장면에서는 환자복을 입은 범인이 흉기를 들고 인질극을 벌이는데, 그 사람을 두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설정 자체는 현실에서 거의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편견을 강화하는 것도 맞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받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런데, 조현병 병력을 가진 사람이 살인 등 중대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그 중에서는 일반적인 범죄보다 더 흉악하거나 반인륜적인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존재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안인득'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진주 아파트 방화와 흉기난동 살인사건의 범인으로서 5명을 살해하고, 17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는 해당 사건 이전에도 범죄 경력이 있었고,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치료감호소에서 생활한 적이 있으며,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입원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사건이 발생하기 수년전부터 약물복용과 치료를 중단하였다는 점과 그 누구도 그것을 관리하거나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치료감호소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할 듯합니다.

이 시점에서 독자들은 '치료감호소', 즉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중형을 선고받은 뒤 범법정신질환자들이 수감되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동연구자로 참여했던 '범법정신질환자들이 경험하는 치료감호소 생활의 맥락과 패턴' 연구의 내용을 일부 소개하려고 합니다.

범법정신질환자들의 치료감호소 생활

이 연구에서는 치료감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범법정신질환자 10명을 만나 면접을 실시하고 치료감호소 생활의 패턴과 맥락을 분석하였습니다. 치료감호소 생활의 패턴, 그러니까 치료감호소에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은 일상생활 패턴과 치료의 패턴, 감호의 패턴으로 구성되었으며, 맥락은 치료감호소 체계와 사회적 관계망, 외부의 정신보건체계, 법무체계로 구분되고 연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죠? 전체 내용과 구체적인 사항은 논문을 읽어보시길 바라며, 여기에서는 독자들께서 알아두었으면 하는 내용들만 쉽게 풀어서 쓰겠습니다.

첫째, 우리나라에는 치료감호시설이 딱 두 군데밖에 없는데, 시설 규모와 정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점점 늘어가는 범법정신질환자들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구를 수행할 당시에도 1인당 수용면적이 법적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는데, 수감자가 늘어나면서 더 열악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들을 치료하고 감호하는 실무인력도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둘째, 치료감호소 내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들의 양과 질도 부족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담당하는 정신치료, 약물치료, 환경치료 등은 양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개별화된 관리와 처치가 충분히 이루어지기는 어려웠습니다. 출소 후 생활을 돕기 위한 특수치료와 재활치료 등은 주기적으로 시행되고 있었지만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은 인력이 그것을 수행하고 있었고 제한된 레퍼토리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범법정신질환자들의 사회적 관계망, 그러니까 대인관계의 범위와 질은 매우 빈약하였습니다. 치료감호소에 있는 동안 찾아오는 가족이나 지인도 거의 없지만, 출소 이후 찾아가서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이들 범법정신질환자들의 범죄 피해자가 가족이나 지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넷째,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사항은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정신장애인의 범죄가 되풀이되는 이유를 일부 보여주고 있습니다. 치료감호소 내에서는 조현병 등의 증상을 통제하는 약물치료가 그래도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소 이후 지역사회로 나가서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혼자서도 약물을 복용하거나 그것을 관리해 줄 사람을 찾아주거나 자립을 위한 일자리를 연결해주거나 이웃들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며 살아갈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용인원은 부족하고 새로운 범법정신질환자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의 인원은 내보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지역사회로 내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일정 기간의 '보호관찰'을 하면서 약물관리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보호관찰 기간도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치료 개입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재범으로 재입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점차 증가하는 범법정신질환자들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규모의 치료감호시설을 충분히 증설하고, 이들을 치료하고 감호할 수 있는 훈련된 전문인력을 충분히 배치하면 됩니다. 더 고되고 힘든 일이니만큼 더 많은 재정 지원과 보상도 필요하겠죠.

그리고 증상을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서 치료감호소 내에서도 일반적인 대인관계와 일상생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설하여 선택권을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출소 이후에도 혼자서 증상을 관리할 수 있도록 약물을 복용하고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응준비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기존 직장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보호관찰과 함께 사회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취업알선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같이 살던 가족이 해체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정을 복구하는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과 관계를 복원하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필요하겠고, 그 사이에 또는 그 이후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집과 소득이 제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독자들은 답답함과 막막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수습하려고 하면 그 일 자체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재정 부담도 매우 커집니다. 그래서 늘 사후대책보다는 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후대책보다는 예방!

조현병 환자의 범죄는 대부분 양성 증상이 공격적 행동과 연결되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를 계속 감시하고 괴롭히려 든다는 피해망상과 함께 '그 누군가가 바로 지금 눈에 보이는 저 사람이며, 그 사람을 죽여야 네가 살 수 있다'고 속삭이는 환청이 그 사람을 공격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범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들은 그동안 개발되어 온 약물들을 가지고 사전에 충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적절하게 증상관리를 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조현병을 겪는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 또는 관련 서비스제공자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증상을 관리하고,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가족들의 이해와 인식, 도움 행동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더 중요한 예방책은 '조기 발견과 개입'입니다. 조현병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년과 청년에게 이전에 없던 환청, 환각, 망상, 언어와 행동 이상 등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 때, 그냥 이상하다고만 느끼거나 '설마'라고 생각하면서 지켜보아서는 안 되며, 바로 전문가인 정신건강증진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세 군데 정도는 찾아가 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그 청소년이나 청년을 늘 지켜보는 더 큰 어른이 필요하겠죠? 혼자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치료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생활하다시피 하는 청소년이나 청년 1인 가구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더 필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조현병은 매우 흔한 질병이며,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적절한 치료와 개입이 이루어지면 평생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편견과 낙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섭다고 진단을 미뤄서는 안 되며, 편견과 낙인을 경험할 틈도 없이 치료를 빨리 받아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인용한 논문>
주소희, 권지성, 오인근 (2019). "범법정신질환자들이 경험하는 치료감호소 생활의 맥락과 패턴". 사회과학연구, 30(1), 3-25.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조현병, #치료감호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