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30 11:34최종 업데이트 22.07.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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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스타벅스 지점 ⓒ 연합뉴스

 
커피 세계에서 자주 듣는 표현이 있다. 하나는 "커피 다 똑같지 뭐 특별한 거 있어?"라는 냉소적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 맛은 이래야지?"라는 독선적 표현이다.

첫 번째 표현을 즐겨 쓰는 사람은 다양한 커피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그런 얘기를 들었지만 게을러서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 십중 팔구고, 두 번째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은 커피 맛에도 뭔가 표준적인 것이 있다고 믿고, 자신이 생각하는 표준적인 맛을 세상에 강요하려는 사람이다.


첫 번째 류의 사람들이 많던 시대가 제1의 물결 시대였다. 대형 로스팅 업체에서 공급하는 표준화된 인스턴트커피가 지배하던 시대다.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 알프레드 피츠가 1960년대 초 미국에 정착하여 목격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 사람들"이 마시는 "세계에서 가장 형편없는 커피"였다.

두 번째 류의 사람들이 많던 시대가 제2의 물결 시대였다. 스타벅스에 의한 커피의 표준화가 몰고 온 시대다. 스타벅스 커피가 모든 커피 맛의 비교 대상이고, 모든 커피 매장은 스타벅스 매장과 비교되는 그런 시대였다. 스타벅스가 등장한 지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지금도 그 시대가 저물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제2의 물결 중간 어느 지점에 수 많은 도전자들이 등장하였다. 제3의 물결이다. 스타벅스 주도의 표준화된 커피 문화를 넘어서겠다는 새로운 도전으로 시작된 제3의 물결을 상징하는 첫 번째 특징이자 유일한 특징은 커피에는 "표준화된 규칙이 없다"는 정신이다.

규칙이 없다는 것은 다양성이 인정된다는 의미이며, 다양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지배자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커피 생산자의 다양성, 커피 소비자의 다양성,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의 다양성, 커피 만드는 방식의 다양성, 커피를 즐기는 장소의 다양성 등이 인정되는 문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최고급 수준의 커피가 바로 제3의 물결 커피인 것이다.

커피에서 제3의 물결은 표준화나 규칙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흐름이지만, 다양성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그것은 최고급 커피를 제대로 만들고, 소비하고, 즐기고, 감상하고자 하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이끄는 새로운 커피 문화라는 점이다.

생산지와 생산 농장에 따라 다른 커피 고유의 맛을 얻기 위해 로스팅 강도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드립 도구들을 이용하여 여유롭고 정교하게 드립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더라도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맛을 창조하기 위해 제3의 물결 바리스타들은 고민을 하고, 고민의 결과를 세계 각지에 있는 바리스타들과 나누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런던 커피페스티벌, 월드바리스타 챔피온십과 같은 국제적 행사는 이들의 고민이 접속해 새로운 문화를 씩 틔우는 장이다. 이들은 표준의 가치를 믿지 않고, 표준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커피의 세계에 나타난 스타들
 

인텔리젠시아 커피 ⓒ 인텔리젠시아

 
제3의 물결은 표준 관리자 스타벅스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 스타벅스가 만든 스페셜티 커피의 산업화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하였다. 시장의 확대에 따른 스타벅스의 대형화는 스타벅스가 만든 초기의 특별함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커피 이외의 음료 비중이 늘고, 음료 이외의 상품 판매 비중이 확대되는 등 커피가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스타벅스 커피가 주는 특별함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커피의 세계에서 스타벅스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스타벅스를 넘고자 하는 새로운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스타벅스가 미국을 배경으로 제2의 물결을 촉발했듯이 제3의 물결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21세기 세계 커피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몇 개의 영향력 있는 로스팅 업체들이 제3의 물결 문화를 선도하였다. 저널리스트 와이스만은 이들을 음악계의 록스타에 비유해 커피의 세계에 나타난 스타들이라고 표현하였다.

1995년에 더그 젤과 에밀리 맨지가 시카고에 설립한 로스팅 회사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는 지오프 와츠를 바리스타로 받아들임으로써 커피계의 혁명을 시작하였다. 와츠가 2000년부터 커피 생산지를 찾아다닌 것이 인텔리젠시아의 성공을 열어주는 출발점이었다.

이들이 주도하여 만든 로스터스길드(Roasters Guild)는 미국에서 제3의 물결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커피 기업 테라로사의 창업에 영감을 준 것도 인텔리젠시아였다. 2015년에 스텀프타운(Stumptown)과 함께 피츠커피앤티에 인수되었다.

인텔리젠시아와 같은 해인 1995년에 노스캐롤라이나 더램에서 출발한 지역 로스팅업체인 카운터컬처는 2000년에 피터 길리아노를 로스터 겸 바이어로 채용하며 전국적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길리아노 역시 커피 생산지를 직접 방문했는데 그에게 영감을 안겨준 첫 여행지는 니카라과였다.

당시 미국 커피계에서는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 소속 로스터들 중심으로 로스터스길드의 창립이 논의되고(2001년 출범), 보스턴 커피커넥션의 조지 하웰을 중심으로 케냐의 전통적 커피 경매와 유사한 일종의 스페셜티 커피 컨테스트를 라틴아메리카에서 개최하는 문제를 기획하고 있었다.

이것이 훗날 중남미 지역, 그리고 최근 아프리카 지역으로까지 확대된 스페셜티 커피 올림픽 COE(Cup Of Excellence)의 시작이었다. 카운터컬처의 길리아노는 이런 움직임의 주도자 중 한 명이었다.

제3의 물결 커피의 본질
 

미국 포틀랜드국제공항 내에 있는 스텀프타운 커피 ⓒ 스텀프타운


1999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출발한 스텀프타운은 두에인 소렌슨의 특별한 경영철학이 바탕이 되어 성장한 제3의 물결 리더 중 하나다. "세상에 좋은 커피를 구하는 데 비싼 금액은 없다"는 것이 그의 커피를 대하는 태도다.

2004년 파나마의 커피 경매에서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출품한 게이샤가 파운드당 21달러라는 경이적인 낙찰가를 기록하여 세계 커피업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4년 후 스텀프타운의 소렌슨은 경매에서 이 커피에 무려 200달러를 베팅함으로써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철학이 세상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2015년에 인텔리젠시아와 함께 피츠커피엔티에 인수되었다.

제3의 물결을 상징하는 이들 3대 로스팅 회사 이외에도 최근에 급성장한 샌프란시스코의 필즈(Philz), 샌타그루즈의 버브(Verve), 오클랜드의 블루보틀(Blue Bottle) 등이 유명하다. 제2의 물결을 상징하는 스타벅스도 과감한 투자로 제3의 물결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리저브 바가 그런 노력의 한 표현이다.

스타벅스의 초기 정신을 이어받되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미국의 제3의 물결은 공정무역, 스페셜티 커피, 신선한 로스팅을 통한 표준적인 맛의 극복, 그리고 소비자와 공급자의 동행 등을 중심 가치로 하여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인텔리젠시아나 스텀프타운이 대형화하고, 거대 자본과 결합함으로써, 그들이 비판하던 스타벅스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들이 개척한 정신을 지지하는 세계 곳곳의 많은 로스터와 바리스타들이 뒤를 잇고 있다.

제3의 물결 커피는 지배적인 국가, 지배적인 기업, 지배적인 맛의 표준, 지배적인 메뉴나 제조방식 없이 지역별로, 카페별로, 바리스타별로 고유한 특징을 인정하는 것이 본질이다.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최고 수준의 커피 맛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커피 생산자들의 땀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기 위한 합리적 거래 이 두 가지뿐이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인간 세상에는 표준을 만들어 세상을 심판하려는 독선적인 인간, 표준이 아니라 다양성이 인정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하는 협력적 인간이 존재한다. 다양한 커피 맛과 커피 취향이 존중받는 커피 제3의 물결, 인간 세상에도 제3의 물결이 다가왔으면.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Morris, Jonathan, Coffee: A Global History. London: Reaktion Books, 2019.
Weissman, Michaele, God in a Cup: The Obsessive Quest for the Perfect Coffee. New Jersey: John Wiley & Sons, 2008.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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