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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2022년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경례하는 모습. 2022.3.17
 지난 3월 17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2022년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경례하는 모습. 2022.3.1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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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직업이 사회구성원들한테 존경받기를 원한다. 자기 직업이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소수의 정치 경찰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 경찰은 그런 점 때문에도 불만 혹은 애환을 품고 살아왔다. 국민과 경찰을 떼어놓고 상호 적대시키는 구조가 오랫동안 이 땅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경찰 앞에서는 침묵하지만, 돌아서면 경찰을 흉보거나 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91년에 일선 경찰들이 내무부 경찰국 설치를 극력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찰을 정권에 종속시키는 구조 하에서는 국민과 경찰이 더욱 괴리되고 상호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경찰 행동에 사과" 

1988년 1월 29일 경찰대 졸업생 333명과 졸업예정자 108명이 연서한 '경찰 중립화에 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는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경찰 조직의 많은 부끄러운 일들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라면서, 경찰이 시국 사건에 동원되고 국민과 멀어지는 현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하고 용서를 구했다. 한국 사회 일원이면서도 국민들과 괴리되는 경찰의 모습을 일선 경찰들이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독재정권과 군부정권 하에서 경찰은 민주화를 억압하는 일에 내몰렸다. 민주화가 사회발전의 척도라는 사고는 19세기 중후반부터 동아시아에 확산됐다. 독재·군부 정권 하의 경찰이 수행한 역할은 사회발전을 최일선에서 저지하는 일이었다.

옳은 일이나 좋은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가족의 생계 등 이유로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마음속에 쌓이는 게 누적될 수밖에 없다. 위 성명을 포함해 1988년에 경찰들이 쏟아낸 불만과 애환은 그런 것이 누적된 결과라고 보인다.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은 경찰·검찰·정보기관·법원을 핵심 축으로 삼아 국민을 억압했다. 군대까지 동원되는 예도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이런 기구들을 앞세웠다.

그런데 경찰·검찰·정보기관·법원 중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쪽은 주로 경찰이었다. 방망이를 들고 최루탄을 터트리며 국민들과 일상적으로 부딪힌 쪽은 경찰이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군대처럼 격리된 공간이 아닌, 일반 국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이 심리적 긴장감을 가중시키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부터 1991년 경찰청 발족까지의 시기에 경찰들이 중립화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던 배경을 절감할 수 있다.

한국 경찰 '수난사' 

그런데 한국 경찰은 정권 편에 서서 국민을 억압하는 일에만 내몰린 게 아니다. 심지어는 일본 편에 서서 국민들을 탄압하는 일에도 동원됐다. 일제강점기 때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시대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

한일협정 반대운동인 1964년 6·3사태는 사과·배상 없는 한일관계 복원, 대일 경제 예속을 전제로 하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하는 궐기였다. 일본 편에 서서 한일관계를 풀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은 1980년 5월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경찰력을 동원해 이 운동을 탄압했다.

6·3 시기의 국민들은 '대일 예속의 쇠사슬에 우리를 묶지 말라'고 외쳤다. 1964년 5월 20일 오후 1시 45분부터 7시 40분까지 지금의 서울 대학로에서 서울시청까지 행진한 국민들은 "한국을 일본 의존적 예속의 쇠사슬에 묶는 것이 근대화요 자립이라고 거짓말하는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사지내자"고 외쳤다(1964.5.21. 조선일보 1면).

이 시위를 진압하라고 동원된 것은 경찰이었다. 위 보도에 따르면, 학생 2000여명과 시민 1000여명이 모인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에 경찰 1000여 명이 투입됐고, 결국 경찰관 16명을 포함한 6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시기의 경찰은 평소 때와는 달랐다. 어떤 점이 달랐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해 4월 23일자 <조선일보> 기사 '갑자기 사나와진 경찰'이다. 이 기사는 당시 4.19 혁명 관련 시위 내용을 다루며 당시 부상당한 민간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1964년 4월 23일 조선일보 기사 (출처: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64년 4월 23일 조선일보 기사 (출처: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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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경찰의 진압 무기부터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4·19 때의 최루탄은 굴러와서 터졌는데, 이번 것은 공중에서 터졌으며 색깔도 노랑·파랑·회색"으로 각양각색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경찰들의 곤봉이 길어지고 데모 저지 특수용으로 더욱 단단한 나무로 제작된 것 같았다"는 성균관대생 최운섭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그는 최루탄 3발을 무릎에 맞고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로 수도의대부속병원(고려대학교 의료원)에 입원 중이었다.

무엇보다 경찰의 진압 방식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국민들을 적군 대하듯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위 기사는 4월 20일 대학로 인근에서 벌어진 상황을 묘사하면서 "원남동 쪽과 서울미대 골목길을 물샐틈 없이 틀어막아 데모대를 완전 포위한 후 '공격 개시'의 호령과 함께 최투탄을 마구 발사하면서 달려들었다"고 설명한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막기만 하고 타일러 돌려 보내는 온건한 진압 방법을 취해오던 경찰의 태도가 4·19 네 돌을 맞는 날부터는 추격해서 데모 학생을 방망이로 쳐대고, 최루탄을 겨누여 터뜨리는가 하면 집에 숨은 것을 끌어내어 마구 치는 등 사나운 데모 저지 방법으로 그 행동이 옮겨졌다. 이로 인해 수많은 데모 학생들이 중상을 입고 거리에 쓰러졌으며 또한 병원으로 운반되기까지 했는데, 개중에는 길 가던 일반 시민들까지 무고히 잡혀가 머리가 터지도록 얻어맞는 사태를 빚어내었었다."

4월 20일 전후로 발생한 시위 현장에서 쓰러진 성균관대생 박영호는 자신이 언제 시위에 참가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경찰에 의한 집단 구타의 결과였다.

경찰에 쫓겨 달아나다가 식당으로 들어가 탁자 밑에 숨은 그는 뒤따라온 경찰 7~8명에게 두들겨맞았다. 손을 비비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 없었고, 계속 얻어맞다가 결국 실신했다. 쓰러진 학생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지 경찰은 그의 몸을 옷으로 덮어두고 식당 안방에 숨겨둔 채 달아났다.

21일 대학로 인근 이화동에서 시위를 취재하다가 경찰 곤봉에 구타당한 <조선일보> 김용기 기자는 자신이 의식을 거의 잃은 상태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데도 경찰이 자신을 향해 최루탄을 굴려보냈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박 정권과 일본의 이익을 대변해 국민들에게 몹쓸 일을 많이 했던 것이다.

시위 폭력 진압한 경찰, 박정희 정권 의중 개입 가능성 크다 

한두 경찰도 아니고 상당수 경찰이 그런 방식으로 시위를 진압했다면,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곤봉도 달라지고 최루탄도 달라진 데다가 진압 방식마저 '갑자기 사나워'진 것은 박 정권의 의중이 개입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권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해서 경찰의 책임이 옅어지지는 않는다. 경찰이 한국 현대사에 끼친 죄악 역시 적지 않다. 이와 더불어, 독재정권과 군부정권이 경찰을 그런 쪽으로 밀어넣으며 악역을 맡겼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6월항쟁 이후로 일선 경찰들이 너도 나도 나서서 경찰 중립화를 외칠 만한 이유가 오래 전부터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이 행정안전부의 통제를 거부하는 것을, 단순히 조직 이기주의나 경찰대 출신들의 음모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행정안전부의 전신인 내무부의 통제를 받던 시절에 자신들이 범죄자와의 싸움보다는 국민과의 싸움에 내몰렸던 악몽 같은 기억이 현실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더는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할 일에 내몰리지 않으려는 일선 경찰들의 의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경찰청 직장협의회 이소진 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경찰의 민주성, 중립성, 독립성, 책임성 훼손하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1인 시위를 제복을 입고 진행하는 모습
 경찰청 직장협의회 이소진 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경찰의 민주성, 중립성, 독립성, 책임성 훼손하는 행안부 경찰국 신설 반대’ 1인 시위를 제복을 입고 진행하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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