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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마이마이'를 쓰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합니다. 아... 마이마이가 뭐냐고요? 저도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긁적긁적), 제가 속한 세대가 마이마이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 같네요.

마이마이는 MP3의 원조격입니다. 지금 음악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듣지만, 스마트폰 전에는 MP3를 통해서, MP3 전에는 바로 마이마이를 통해 들었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구해서 '딸깍' 하고 버튼을 누르면 '짠' 하고 열리는 마이마이에 '쏙' 넣어주는 것이죠. 1980년대~2000년대 초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대부분의 청춘들이 저 크고 무거운 벽돌만한 마이마이를 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더랬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이마이가 아닙니다. 마이마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쯤, 오늘 제가 말하려던 문화도 비슷한 시기에 사라졌습니다. 마이마이가 유행하던 시절, 우리나라에는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하나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은 승객이 자신 앞에 서 있는 승객의 '가방이나 짐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시골에 살았는데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갈 때면 멀리까지 버스를 타고 그나마 큰 도시로 나가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나가는 것을 때론 지겨워하기도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음에도 바깥 풍경은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풍경을 보기도 하고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우기도 했었죠. 엄마는 매번 얌전히 있으라고 저를 붙잡기 급급했었죠. 제가 땡깡(?)을 피우는 이유는 딱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무거운 짐들을 가득 들고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 도착을 해서 엄마는 제 입을 막기 위해 번데기와 같은 간식거리를 사주면서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매번 장을 보러 오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며칠 간 먹을 식재료를 한꺼번에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항상 만석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나 또 우리처럼 시골에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제가 먼저 자리에 앉았더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곤 했습니다.

저는 근데 항상 걱정을 했었습니다. 버스에 서서 가는 게 어린 저에게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덜컹거리거나 급출발, 급정거하는 버스 때문에 중심을 잡기가 힘들기도 하거니와 그와중에 많은 짐을 간수해야 하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면 매번 걱정이 앞서곤 했는데, 버스를 타면 매번 그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그 짐 하고 가방 나한테 줄래?"

맨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 어린 저는 사실 의심하고 흠칫했습니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도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을 때였죠. 그러나 엄마는 너무도 당연하게 감사하는 말과 함께 짐과 가방을 건네곤 했습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승객 누구든 당시에는 저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사실 상대방의 무거운 짐을 들어주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선의를 베푸는 것이 어린 저로써는 좀 멋있었습니다. 아마 저는 그 당시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낯선 사람에게 '배려'를 배운 것 같습니다. 배운 것은 무조건 써먹어야 된다는 가르침과 신념 하에 저도 버스를 타 자리에 앉아 갈 때면 따라하곤 했죠. 하지만 어른들은 "됐다, 꼬맹이가 무슨" 하면서 편히 가라고 저를 배려해줬던 것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배려'를 행하려 하니 '배려'를 되돌려받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이런 문화가 어느 순간 없어진 것 같습니다. 마이마이가 사라지고 혁신적인 MP3가 나오고, 휴대폰이라는 것이 보급되면서 점차 기계와 더 친숙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모두가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버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조그마한 기계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거의 의무처럼 잘 지키고 있지만,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문화는 사라져서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며칠 전 지하철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임산부석에 앉은 임신부 앞에 50대 중년 여성이 꽤 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는데, 하필 퇴근 시간일 때라 그 가방이 1명의 자리를 차지하다시피 했죠. 또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모르고 한 번씩 툭툭 치기도 하고 걸려서 휘청거리는 일까지 일어났죠.

그걸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임신부가 똑똑히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머님, 그 가방... 저한테 주실래요?"라고요. 먼저 선의를 베푸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이상하게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각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몇몇 승객들도 그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서 쳐다보기도 했었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중년 여성은 웃으며 고마움 표시를 했지만, 임산부라는 사실에 편히 가라며 '거절'이 아닌 '배려'를 했습니다.

아직도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받아주는 문화가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어 살만 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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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을 '괴물'로 착각하곤 합니다. 깊게 알지 못하면 편견과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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