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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인구 절반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만큼 지역 불균형이 심각하단 얘기다. 중앙집권식 행정 체제 때문에 각 지역은 고유의 향토성을 잃고 어떻게든 서울을 따라가려고 애쓴다. 전주 한옥 마을 정도가 아니고서는 어느 도시든 길거리 풍경을 구분할 수 없고 전국 지역 축제를 가보면 거기서 거기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뭘 해도 일단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밀려나더라도 경기권에는 머물러야 한다. 수험생이라면 의당 목표는 '인서울'이고 취준생의 일순위 목표는 수도권에 적을 둔 대기업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울에서 버티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들은 패배 의식에 휩싸인다. 금의환향은 옛말이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말은 버티지 못했다는 말이고 귀향은 성공의 반대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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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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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소설 <무코다 이발소>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독자에게 흡인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촌구석'에 되돌아온 도시 사람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는 왜 회사를 관두고 도마자와로 돌아왔는가. 그리운 고향을 잊지 못해서? 아버지에게는 고향이 쇠락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했지만 그는 분명 도쿄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야스히코가 가업을 잇고 마을을 발전시키겠다는 아들의 포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본인도 도시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쓸모없는 부하'라는 낙인이 찍혀 회사에서 변변찮은 일을 도맡아 하던 중, 마침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이발사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는 고민 끝에 가업을 잇겠다는 핑계로 사표를 냈다.

야스히코는 삼십 년 전부터 인구가 줄고 있는 도마자와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 입장에서는 젊은 가즈마사가 되돌아 온 것이 기쁜 소식이었지만 아버지인 야스히코는 착잡함이 앞섰다. 고장을 살리려는 강연회에 참석한 그는 도마자와를 '침몰하는 배'에 비유했다. 이미 몇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소생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나라 전체로 보아도 인구 절벽인데 농촌은 도시보다 몇 배 심각하다. 이런 현실이 한 마을이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수준인가. 그런데 소설 속 도마자와는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다. 새 사람이 올 때마다 도마자와에는 활력이 돌았고 그것은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람의 맥박이 세차게 뛰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인 신부가 왔을 때는 청년단이 환영회를 열어 온 마을이 들떴고, 도쿄에서 온 사나에가 술집을 열었을 땐 뭇 사내들의 마음이 설렜으며, 도마자와가 영화 촬영지로 선정되었을 때는 모두 내 일처럼 촬영에 협조했다. 도마자와는 새 사람이 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도시에서는 자주 무시되는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진실이 도마자와에서는 뚜렷하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도시를 떠난 이들을 모두 패배자로 규정하는 것은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새삼 도시의 몰인정을 한탄하자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생태는 감성이 아닌 이성에 비추어 보아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필연적으로 도시에서는 생존을 건 경쟁이 매일 일어난다. 합격하는 이보다 실격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기만이나 마찬가지이다.

소설 초반 야스히코는 고향 생활을 느긋하게 여기는 친구에게 고향은 피난처가 아니라고 몰아친다. 이 말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마지막 장인 '도망자' 내용은 꽤 의미심장하다. 용의자 신세가 되어 고향에 몸을 피하러 온 슈헤이를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를 비롯한 청년단원들이 설득해서 자수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슈헤이는 범죄자처럼 몸을 숨기듯 낙향하는 이들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슈헤이를 자수 시키는 모습은 그를 궁지로 모는 것이 아니라 떳떳함 태도를 되찾으라는 응원에 가깝다. 가즈마사의 대사를 보면 이런 주제가 더욱 뚜렷이 보인다.

"아버지, 그리고 세가와 아저씨. 슈헤이 선배 형기를 마치면 도마자와로 돌아오겠다고 하니까, 모두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아들의 의젓한 모습에 야스히코는 속으로 감동하며 도마자와가 앞으로 좋은 동네가 될 것 같다는 예감에 휩싸인다.

이 소설에는 분명 시골의 단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사생활이 없다는 점, 동네가 좁아 어떤 일이든 금방 소문이 난다는 점,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가 앞선다는 점, 법보다 관습이 우선이라는 점 등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덮을 만큼 장점도 많다. 소외되는 이웃이 한 명도 없다는 점, 사람을 능력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한다는 점, 서로의 허물을 감싸준다는 점 등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작가는 도시보다 시골 생활이 더 인간적이니 모두 시골에 가서 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골은 희망을 잃고 가는 곳도 아니고 희망을 찾으러 가는 곳도 아니다. 희망은 당신 안에 있다. 그러니 어디서 살든 고개 숙이지 말자.

태그:#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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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해지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에 겁을 먹는 이중 심리 때문에 매일 시름 겨운 거사(居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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