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여름 내내 바느질을 거의 하지 못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열이 훅 끼치는 다리미 앞에서 한 줄 박고 다림질을 반복하는 일이 힘들어서 여름엔 바느질에 손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이유는 아니다.

린넨 반바지를 4개 만들어 놓고 바느질을 쉬고 있는 이유는 목과 어깨 통증 때문이다. 봄에 재택 근무를 하던 중 팔이 저려셔 정형외과에 갔다. 거북목 자세로 오래 일을 하다보니 경추 5번 6번이 정사각형모양의 직육면체가 아니라 마름모 모양의 육면체로 변형되었단다. 그것이 근처를 지나는 신경을 눌러 팔이 저리게 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새 거북목이 되어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직전이다.
 어느새 거북목이 되어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직전이다.
ⓒ elements.envato

관련사진보기

 
회사에서 모니터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문서를 리뷰하는 일을 하다보면 안 그러려고 조심을 해도 어느새 거북목이 되어 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직전이다. 그런 모양새로 몇 시간씩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자세로 일을 계속 하는 데다 30대 때 아이를 낳아 젖을 먹이고 안아 들고 목욕시키고 재우고 하면서 키우다보니 어깨와 목이 계속 뻣뻣해졌다. 이 통증이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 키우며 일하다 생긴 고질병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목과 어깨, 허리와 관절을 갈아넣는 일이다. 육아를 하면서 최소 3킬로가 넘는 아이를 한 팔에 안고 몇 십 분간 같은 자세로 젖을 먹이는 것, 한 팔에 아이를 받치고 목욕을 시키고, 아이를 안아 올리고 눕히는 모든 일들이 어깨와 등근육을 과하게 쓰게 한다.

7년쯤 전에 견갑골 뒤에 골프공만한 통증원이 생겨 숨을 쉴 때도 등근육이 조이고 아팠다. 한동안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병행하면서 호전되었고 그 후로 요가를 해서 꽤나 괜찮은 상태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좀 관리가 되나보다 했는데 갑자기 심해진 것이다.

딱히 무리한 것도 아니고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봤다. 출퇴근을 하면, 일을 하며 긴장된 목, 어깨와 등이 지하철을 타고 걸어 회사까지 오가면서 자연스레 이완이 된다. 출퇴근이 힘들긴 하지만 매일 쌓인 만큼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재택 근무는 어떤가. 침대에서 일어나 몇 걸음 걸어가면 모니터가 있는 책상이다. 거기에 앉아 회사 일을 하고 업무시간이 끝나면 음식하고 설거지를 하는 게 대부분. 즉, 코로나를 피해 집에만 있었던 생활 패턴의 변화가 어깨와 목 통증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내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다.

목과 어깨가 아프다보니 회사에 가도, 길을 걸어도,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도 사람들의 목과 어깨를 보게 된다. '아 저 분도 거북목 자세로 일을 하네', '저 학생 휴대폰 저 자세로 보는 거 목에 진짜 안 좋은데'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에버랜드의 팬더
 에버랜드의 팬더
ⓒ 최혜선

관련사진보기

 
동물원에 가서 팬더를 봐도 그랬다. 남들은 귀엽다고 야단인데 나는 비스듬히 눕다시피 앉아 야무지게 대나무 순을 먹고 있는 팬더에게 '허리 세우고 똑바로 앉아서 먹으면 어떨까? 그러다가 나중에 허리 아파진다?'라는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팬더의 척추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일 하는 내내 서서 두 팔을 앞으로 내밀고 한 손으로는 빗질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가위질을 하는 미용실 원장님도 내 걱정 레이더에 들어왔다.

"원장님 그렇게 일하시려면 목이랑 팔이랑 아프지 않으세요?"

의외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고수는 다른 걸까… 자기가 하는 작업이 몸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최적의 자세를 찾아서 지속가능한 상태를 만들어냈구나 감탄했다.

바느질도 무릎과 허리, 어깨와 목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패턴을 베끼거나 재단을 하기 위한 커다란 작업대가 있다고 해도 작업대 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이고 있다보면 허리와 목이 뻐근해진다. 나처럼 작업대 없이 바닥에서 재단을 한다면 무릎에 조금 더 부하가 걸린다.

부피가 큰 겨울 옷이나 침구 같은 대형 작업을 할 때 재봉틀에 천을 밀어넣다 보면 왼쪽 어깨가 잔뜩 긴장해서 목에 올라붙어 힘을 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한땀한땀 정교한 박음질을 해야할 때면 천을 박고 있는 재봉틀의 움직임을 보면서 손으로 천을 정확하게 밀어주느라 재봉틀 앞에 앉은 한 마리 자라가 되어 있는 걸 깨닫게 된다.

진단을 받고난 후 도수치료도 받고, 필라테스도 하고, 일을 할 때도 거북목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팔저림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살아온 과정들은 내 몸에 흔적을 남긴다. 내가 좋아해서 혹은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어서 오래 한 일들이 내 몸을 변형시켰다. 책을 읽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음식을 하느라 칼질을 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 내가 시간을 들여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랬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며 살 수는 없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도 몸에 무리가 덜 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바느질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바느질
 바느질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일을 하는 방식도 바꾸고 일을 할 때의 자세도 바꾸고 스트레칭을 해줘서 일을 하면서 쌓인 몸의 긴장을 제때 풀어주려고 한다. 맛있는 거 먹으려고 운동하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바느질 즐겁고 거뜬하게 하려고 걷고, 운동한다.

한 번에 오래 작업하지 않고 공정을 나눠서 한다. 패턴을 펼쳐놓고 패턴의 선이 비치는 얇은 부직포를 올려 베껴그리는 일을 아이들에게 부탁했다. 자기 옷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지 순순히 도와준다.

어떤 날은 패턴을 자르는 일만 하고, 어떤 날은 천을 재단하는 일만 했다(그렇게 재단해놓은 옷만 벌써 몇 벌인지는 비밀이다). 짧게라도 작업을 하고 나면 스트레칭을 해주려고 신경 썼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몸을 풀어주는 일이 뭐라고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지 모르겠다. 수첩에 적어놓고 의식해서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하고 안 하고는 천지 차이다.

바느질을 할 때는 배에 힘을 주고 목이 거북이처럼 되지 않도록 어깨선 위에 귀가 오도록 의식하려 한다.

'배에 힘주고, 어깨 내려 놓고!'

요가 수업에서, 필라테스 수업에서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을 이제 내가 나에게 들려준다. 어깨 저림이 생겨서 지금 당장 바느질을 하기 힘든 건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이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군더더기 없는 달리기 자세로 오래 달리는 마라톤 선수처럼 오래 작업해도 덜 피로한 좋은 자세와 작업방식을 찾아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꼿꼿한 자세로 매일매일 바느질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바느질, #워킹맘, #부캐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