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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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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 이후 하나의 해프닝이 일었다. 해프닝은 '윤석열 대통령 옆에 앉은 이가 누구냐'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해프닝은 '가짜 독립유공자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광복절 경축식 이후 소셜미디어에선 윤 대통령 옆에 앉은 여성을 두고 '김건희 여사와 함께 봉하마을을 방문했던 측근 인사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부 언론에선 그녀가 독립유공자 '장성순'(1990년 애국장)의 증손녀임을 확인해 보도했다.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언론이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보훈처 공훈록에 등재돼 있는 독립유공자 장성순의 세부 행적이다. 

"일본군 19사단 사령부에 귀순하여 귀순증을 받고..."

보훈처 공훈록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장성순은 "1919년 4월 북간도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에 가입하고 제1남 지방부 경호부장에 선임되어 경호원인 강기운, 고진홍, 이용학 등 20여 명을 지휘하며 지방지회의 설치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그중에는 "일제 관헌의 밀정으로서 독립운동을 방해하던 이덕선을 권총으로 사살"하는 등 밀정 처단 임무도 수행했다.

그런데 보훈처 공훈록은 장성순의 체포 과정을 설명하면서 "1920년 12월 천도교도인 양모씨의 권유로 일본군 19사단 사령부에 귀순하여 귀순증을 받고 자기 집에 있다가 회령경찰서원에게 붙잡혔다"(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장성순에 '귀순'을 권유했다는 양모씨는 친일 종교단체인 제우교도인데, 보훈처가 잘못 기록했다)는 내용도 함께 게재해놨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장성순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에 투항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1922년 4월 25일 보도에서 간도국민회의 장성순이 '귀순'했음에도 사형을 선고한 것은 '무신'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 "간도국민회(대한국민회)" 사건 관련자 장성순의 재판 소식을 알리는 언론보도 <동아일보>는 1922년 4월 25일 보도에서 간도국민회의 장성순이 "귀순"했음에도 사형을 선고한 것은 "무신"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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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9사단에 투항해 '귀순증'까지 받은 이를 보훈처가 어떻게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 언론보도엔 '귀순증' 사진까지 등장해 이는 사실로 확인된다.

1922년 <동아일보>는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장성순이 사형을 선고받자 장성순의 귀순증까지 공개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모다(모두) 일본군대와 당국(조선총독부)의 무신(신의 없음)에 대하야 비난공격이 심하다더라"(괄호 안은 기자 주)라면서 조선총독부와 재판부에 압박을 넣는 보도를 했다. 이런 보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장성순은 이후 감형을 거듭해 12년 6개월의 형을 살았다고 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보훈처와 달리 장성순의 '귀순'을 <일제침략하 한국 36년사-6권>에서 '재만한인의 친일활동' 사례로 분류해 소개했다. 보훈처의 해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독립운동단체 간도국민회의 제1남지방회 경호부장으로 있던 장성순이 일본군 제19사단에 '귀순'(투항)하면서 받은 '귀순지증'(1920. 11. 31).
▲ 일본군 제19사단이 장성순에게 발행한 "귀순지증" 독립운동단체 간도국민회의 제1남지방회 경호부장으로 있던 장성순이 일본군 제19사단에 "귀순"(투항)하면서 받은 "귀순지증"(1920. 11. 31).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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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순의 행적에 대한 의구심은 일제에 투항했다는 사실로 그치지 않는다. 일제의 재중임시대리공사 요시다 이사부로(吉田伊三郞)가 일본 외무대신 우치다 야스야(內田康哉)에게 보낸 비밀보고서 <조선측 경찰이 조선인 김순 등을 구인시킨 것에 관한 건>(1921. 6. 27)에 등장하는 '대한국민회(간도국민회)에 대한 보고'에 따르면 대부분 주요 간부에 대한 기록만 보인다.

그런데 장성순이 속해 있던 제1남지방회(회장 마용하)에서는 유독 경호부장 장성순은 물론 경호원의 이름이 31명이나 등장한다. 이들 중 최정수, 최인선 등 상당수가 1921년 일제에 연이어 체포돼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점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련의 사건이 장성순의 입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최근 초대 행안부 경찰국장에 임명된 김순호의 1980년대 '밀정 의혹'은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다. 경찰국 신설 자체도 문제지만, 초대 경찰국장에 하필 '밀정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를 앉힌 것은 '민주화운동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경찰을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시절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제77주년 8.15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독립운동을 뒤로 하고 일제에 귀순한 장성순의 후손을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히는 일이 발생했다. 기묘한 일이다. 

대통령실 "좌석 배정 등은 행안부·보훈처 등과 협의"

장성순의 후손은 어떻게 대통령 바로 옆 자리에 앉게 됐을까. 

대통령실 측은 '8.15 경축식 때 자리 배치를 주관한 곳이 어디인지'와 '당시 자리를 배치한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는 <오마이뉴스> 질의에 "광복절 경축식의 좌석배정 등 진행사항은 독립유공자 후손분들을 최대한 예우한다는 기본 방향에 따라 이뤄졌다"면서 "대통령실을 비롯해 행정안전부, 보훈처 등 관계 기관 간의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장성순의 과거 행적 등에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추가적인 질의가 필요하다면 보훈처에 문의해달라"고 밝혔다. 

대통령 바로 옆에 앉는 독립유공자 후손은 상징성이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해당 독립유공자의 이력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수조사의 필요성, 드러나다
 
세종시 국가보훈처 청사
 세종시 국가보훈처 청사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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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8.15 광복절 경축식을 계기로 확인된 장성순의 과거 행적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가짜 독립유공자 전수조사'의 필요성이다. 

시계를 2018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김정수 일가 가짜 독립유공자 4명의 서훈을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그 대상은 1968년에 서훈한 김정수(독립장), 김낙용(독립장), 김관보(독립장), 김병식(애족장)이었다. 관보에 따르면 취소 사유는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짐'이었다. 뒤이어 가짜 독립유공자를 걸러내기 위한 전수조사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미 언론을 통해서 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로 안치돼 있는 이정(김좌진 장군의 비서, 밀정 혐의),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돼 있는 송세호(일본군 위안소 운영 및 밀정 혐의) 등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보훈처는 전수조사를 실시해 2019년 7월까지 1차 조사결과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약속 시한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올해 8.15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벌어진 일은 독립유공자에 대한 확실한 정보 파악을 못하는 정부의 난맥상 문제뿐만 아니라 다시 한 번 가짜 독립운동가를 걸러내기 위한 전수조사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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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현충원 역사산책>(2022),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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