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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 박병춘
 
산과 운무를 내 정서로 재단하며 생각에 잠긴다. 운무가 능선 아래에 띠를 두른다. 운무는 오랫동안 산을 어루만지고, 산은 운무와 살갑다. 운무가 산을 넘어 바다로 간 뒤 뭉게구름이 넘실댄다. 그 뭉게구름 속에 이름을 새겨 본다. 인연의 깊이로 함께하는 고운 사람들이 하나둘 능선을 넘는다. 그리움은 구름으로 오고, 기다림은 산으로 있다.
  
꽃 아닌 충영(벌레집) ⓒ 박병춘
 
살면서 다양한 꽃을 접한다. 야생화 탐색 초보로서 카메라를 메면 수많은 꽃들이 셔터를 유인한다. 헤아리기 힘든 꽃의 향연, 모두에게 제각각 이름이 있는데, 외우고 까먹고 외우고 까먹고 기필코 익혀 가는 중이다.
 
처음 보는 꽃을 만난다. 참나무(신갈나무)에 피어난 꽃인데, 꽃쟁이 전문가들과 소통하니 '참나무 충영(벌레집)'이란다. 내 눈에는 꽃이지만 전문가들에겐 벌레집, 이 다름 앞에서 겸손해진다. 내가 본 것이 옳고 네가 본 건 그르고, 그런 싸움박질 속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산골의 걸음걸이는 온통 참회고 되돌아보기다.
  
물봉선과 남생이 무당벌레 ⓒ 박병춘
 
이곳 강원도 평창군 해발 700미터 산골에도 엄청난 비가 왔었다. 계곡은 불어난 수량으로 굉음을 내며 진부면 오대천과 만난다. 부석사 계곡 주변 임도를 따라 폭포의 웅장함에 놀라고,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에 빠진다.
 
물봉선이 반긴다. 줄기 위에 피어나는 일반 꽃들과 달리 물봉선은 바늘만한 줄기를 따라 대롱대롱 매달려 신비롭게 꽃을 피운다. 물봉선은 입을 크게 벌리고 물안개를 마시고 있는 듯하다. 흰물봉선 잎에 앉아 젖은 날개를 펴는 '남생이 무당벌레'를 본다. 무당벌레 중 가장 큰 종으로 등판에 "갑(甲)"자를 새겼다.
 
물봉선 이파리에서 한숨 돌리며 찬란하게 행하는 갑질에 렌즈를 고정한다. 날개 속 빠알간 몸이 데칼코마니 수평선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겉과 속이 같은 빨간색으로 수박과는 다르다. 저 여리고 섬세한 날개로 어디를 그리 다녀왔을까. 이름이 남생이 무당벌레니, 남생이네 집이거나, 흠...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리아트리스와 고추 잠자리 ⓒ 박병춘
   
리아트리스 위로 잠자리 한 마리 팽팽하게 앉았다. 사진 촬영 중 눈을 흘기더니 내 눈과 마주쳤다. 잠자리 눈이 거울 되어 유년 시절을 비춘다. 잡고 날리고 잡고 날리며 우쭐했던 시절은 갔다. 나이란 걸 조금 먹고 산골을 거닌다. 그때 그 시절은 갔지만 다시 청춘 시작이다.
  
당잔대꽃과 잠자리의 동행 ⓒ 박병춘
 
당잔대 위 잠자리는 한쪽 구석에서 찬란하다. 구도를 잡고 촬영하고 나니 그 여백에 내 마음도 푸짐하다. 잠자리는 하늘과 구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도시에 두고 온 수많은 사람들을 연결한다. 하늘과 구름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더구나 구름은 제각각 동물과 사람과 아가와 기괴한 형상으로 내 가슴을 흥분케 한다. 언젠가 내 시리즈에서 구름 이야기를 덧보탠다면 참 좋겠다.
 
뻐꾹나리, 일명 꼴뚜기꽃 ⓒ 박병춘
   
뻐꾹나리는 모양새가 꼴뚜기 같다. 일명 꼴뚜기꽃이라고도 한다. 피기 전 몸통은 꼴뚜기, 피고 나서 다리도 꼴뚜기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 꽃이름을 붙였다. 산골에서 꼴뚜기를 보니 살짝 가슴이 아팠다. 꽃을 꺾어 바다로 보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산에 피는 꽃을 바다로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때 아름답다는 것, 다시 깊이 깨닫는다.
  
붉은인동(홍인동) ⓒ 박병춘
 
인근 야생화 농장에서 붉은인동을 구매해 심었다. 덩굴 식물인데, 아치를 해놓으니 무럭무럭 자라 벌써 둥그렇게 덩굴을 솟아 올렸다. 이 꽃은 참 희한하다. 한꺼번에 피우지 않고 봉오리 하나하나 피워 오래도록 머문다. 벌은 입 벌린 홍인동에 충실하다. 사진을 찍다 보면 몰입하는 곤충들을 수없이 본다. 내 사는 동안 저만큼 몰입한 적 있을까 반성하며 닮기로 한다. 자연은 내 삶의 위대한 스승이다.
  
촉수 넝쿨이 그린 리본 ⓒ 박병춘
 
여리디여린 덩굴이 제 그릇보다 멀리 세상 구경을 나왔다. 더 멀리 가지 못하고 결국 자기 자신을 옥죄어 되돌아간다. 세상 구경 후 기념하듯 리본을 달았다. 되돌아가는 덩굴을 돌리고 돌려 세상 구경 더하라고 말했지만 덩굴은 말없이 되돌아갔다. 가거든 또 오렴.
    
늦깎이 물레나물, 느릿느릿 천천히 피어도 결국은 꽃 ⓒ 박병춘
   
씨방 가득한 물레나물이 생존을 위해 늠름하다. 저 씨방이 퍼지면 이곳저곳에 종족이 보존되리라. 세상에! 늦둥이 물레나물, 꽃을 피웠다. 느려도 한참 느린 막내둥이다. 또 배운다. 느리면 좀 어떤가. 느리다고 원망하고 나무란들 저 꽃 피우지 않을런가.
 
교직 평생 늦둥이들을 우선했다. 아프고 여리고 더디고 문제아라 하고 꼴통이라 하는 제자들과 소통했다. 단언컨대 그 제자들이 우리 세상의 바탕이고 주류다.
 
산골에 들어 뉴스를 안 보니 평가가 어렵지만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온갖 갑질 세력으로 넘쳐나는 듯하다. 백성을 무시한 채 부패 권력을 쥔 청맹과니들의 세상인가 보다. 백성의 씨앗 없이 권력의 씨앗으로 휘두른들 무슨 싹이 나겠는가. 권력은 헛것이다. 가진 자들의 횡포와 무능과 그들만의 고인 물은 반드시 썩을 것이다. 역사와 속담이 증명하지 않던가. 고인 물은 썩는다.
  
여의주일까, 저 파아란 블랙홀로 내 마음 편린을 내보내고 싶었다. ⓒ 박병춘
 
먹구름과 흰구름 사이로 블랙홀 하나. 글을 마치려니 이 또한 부질없나 싶어 허전하다. 이런저런 견문 감상을 넘어 저 구멍 속으로 내 흐트러진 마음 내보낸다. 푸른 하늘이 나를 보고 활짝 웃어줄 것이다. 산골에 오길 참 잘했다.
태그:#박병춘의 산골 통신, #햐암, #햐암 야생화, #그리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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