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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운영하자면 이미 자리를 잡은 인기 메뉴 외에 꾸준한 연구를 통해 주기적으로 새로운 메뉴들를 선보여야 한다. 그래야 기존 단골 고객도 유지가 되고 새로운 고객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 식당을 내고서는 신메뉴 개발이란 숙제가 창업 못지 않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막상 가게를 시작하고 나니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어떤 조리법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맛을 내 볼까?' 궁리하는 일이 의외로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재료들 간의 조합이 의외로 좋은 맛을 내기도 하고 재료들이 소스와 어우러지면서 멋진 조화를 이루어내기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식당을 연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신메뉴에 대한 고민은 24시간 계속된다. 실험정신과 끊임없는 도전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만들기도 쉽고,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으면서 우리 가게만의 독창적인 메뉴가 탄생할 거라는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매일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보고 있다. 물론  그런 가운데 실패한 메뉴들도 한 둘이 아니다.  

신메뉴에 대한 고민
 
작년 이맘때, 한여름 내내 찜통과 씨름하며 만들어 낸 메뉴 프랑스식 소고기찜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작년 이맘때, 한여름 내내 찜통과 씨름하며 만들어 낸 메뉴 프랑스식 소고기찜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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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딴에는 맛있게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지만 한 입 먹어본 가족들의 표정을 보고 낙심한 적도 많았고, 맛은 괜찮지만 막상 재료의 원가를 계산해보니 가격을 정하는데 많은 무리가 따라서 포기한 메뉴들도 있었다. 괜찮다고 결론을 내서 메뉴에 올려보지만 손님들 반응이 시큰둥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식당 '메뉴판'에 적혀 나오는 메뉴들은 어찌 보면 파이널 완주 테이프를 끊은 '승자'들인 셈. 상품으로서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격을 가진 메뉴들인 것이다.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메뉴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요소들이 정말 많다. 이쯤되면 자격이라기보다 덕목이라고 예를 갖춰 대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우선 가격 면에서 손님도 만족해야 하고 만들어 판매하는 사장도 손해를 보면 안 되는 선이라야 한다. 적정선의 원가를 들여 구입 가능한 재료로 최선의 맛을 내주는 메뉴여야 하고, 가능하면 건강에 좋은 재료이거나 매스컴을 타고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인기 재료라면 더욱 좋다.  

더불어 주방에서 소화해 내기 좋은 조리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메뉴, 다른 메뉴와의 호환이 가능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메뉴, 배달 시장에서도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메뉴 등등 메뉴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끝이 없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는 음식이 비로소 '메뉴'로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장의 일상식도  플레이팅의 연구 대상
 사장의 일상식도 플레이팅의 연구 대상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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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내고 나서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다른 식당의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고 분석을 하게 된 점이다. '이 메뉴는 왜 이 가격일까? 이 메뉴는 왜 이 재료를 넣어 만들었을까? 이 메뉴를 이 카테고리에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메뉴가 나오기 위해 중간에서 사장된 메뉴는 몇 가지나 되려나' 등등 모든 것이 '일'로 다가온다.

때문에 정말 편한 마음으로 외식 타임을 즐긴 적이 드물지만 그렇게 메뉴판을 한참 보다 보면 그 식당 사장님과 한참을 대화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다른 식당의 메뉴판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아, 이건 이래서 이 가격이군요. 아, 이건 그래서 저 재료를 넣으셨군요. 어머나! 사장님,이 가격에 원가를 맞추느라 무진 애 쓰셨겠어요."

사장 혼자서 풀어야 할 숙제
 
차가운 수프인 클래식 비시스와즈는 고객의 반응이 적어 실패한 메뉴
 차가운 수프인 클래식 비시스와즈는 고객의 반응이 적어 실패한 메뉴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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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을을 맞아 내가 곧 고객들에게 내놓을 새 메뉴판이 나오게 된다. 물론 거기에도 무언의 대화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메뉴명은 물론, 간단히 소개된 재료와 가격, 그리고 포인트 이모티콘으로 표시된 매장의 대표 메뉴까지 모든 것이 사장인 내가 고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메뉴를 만든 의도에서부터 그 가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메뉴의 특징에 이르기까지 메뉴판에 적힌 활자가 나의 메시지를 고객에게 전달할 것이고, 사장은 고객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식당 주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별점'을 통해 고객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수렴하게 될 것이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가 만족하고 윈윈(win-win) 할 수 있는 메뉴를 찾아내는 일은 참 힘들기 짝이 없다. 그렇기에 메뉴 하나 하나를 만들며 사장이 느끼는 부담과 중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다.  
 
 매출의 다각화를 꾀할 수 있는 배달 포장 메뉴
  매출의 다각화를 꾀할 수 있는 배달 포장 메뉴
ⓒ 이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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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메뉴 아이디어가 나지 않아 힘들고 고생스러울 때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심이 담긴 고객의 칭찬을 들을 때, 만족스러운 표정을 읽을 때면 그런 후회는 한 방에 날아간다. 어쩌면 그 맛에 식당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메시지가 담긴 메뉴판을 만들어야 사장과 고객 만족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까?'

티없이 맑은 초가을 하늘 한 구석에도 그에 대한 답은 없다. 왜? 장사를 접는 그 날까지 오롯이 사장 혼자서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한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25년을 꿈꾸어 온 피아노가 있는 와인 식당 주인이 되었어요. 작은 실내악 콘서트며 와인클래스 등 소소한 일 만드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직접 만든 요리에 와인을 맞춰 손님께 골라 드리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의 연주를 해드리며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태그:#사장일기, #식당일기, #창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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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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