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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기 전에 같이 한라산에 오르자!"

수시로 산을 타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한 이 제안에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시작한 것이 일요일 북한산 등산이었어요. 코로나로 짐(gym)을 다니기 곤란했던 기간에도 매일 걷기 등으로 움직임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지만 평지를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건 엄연히 다른 움직임 영역이잖아요.

대학생 때 딱 한 번 동기들과 한라산을 오른 것이 한라산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이었지요. 20대 때 몇 번 친구들과 등산을 해 본 적은 있었지만 등산보다 재미있는 놀이가 넘쳐나던 그 시절에 제게 산은 그렇게 매력적인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중년의 몸을 가진 우리들 사이에서 홀로 찬란히 결혼 전 몸매를 유지하고 있던 친구가 있더란 말이죠.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그렇게 산을 타는 거예요. 와, 산을 타면 그 친구처럼 예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구나, 감탄만 했더랬죠.

그 친구가 우리들에게 한라산에 같이 오르자고 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어요. 친구에게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그래, 등산을 해서 그 친구처럼 예쁜 몸매를 가져 보자. 나도 한 번 회춘의 기회를 가져보는 거야!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거지? 마음이 급해졌어요. 다행히 제가 실천력에는 좀 일가견이 있어요. 엉덩이가 가벼운 편이라 학창 시절과 임용 시험 준비 때 애 좀 먹었었죠.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의상 능선에서 바라보는 전경1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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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산을 찾아야 했어요. 대한민국 남쪽 땅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면 일단 산이라는 곳과 친해져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아쉽게도 제가 사는 곳 주변엔 산이라고 부를 만한 산이 없었죠.

몇 군데 'OO산'이라는 구릉이 있긴 한데 산인 줄 알고 등산장비를 다 갖춰 입고 갔다가 30분 만에 정상이란 곳에 오르고선 갖춰진 장비가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갖고 간 등산용 스틱을 다른 사람들이 볼까 싶어 던져버리고 오고 싶을 지경이었다니까요.

그래서 정한 곳이 북한산이었어요. 저희 집에서 40여 분 운전 거리에 있는, 최적의 산이었죠. 처음엔 북한산성 입구부터 시작해서 무작정 올랐어요. 길도 모르면서요.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의 최대 단점은, 실천력에 비해 계획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에요.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대충 출발 지점만 확인하고 수많은 등산 행렬 속에 섞여 오른 거죠.

경사면을 오를 때 사용하는 근육이 달라 처음엔 무리할 수도 없었어요. 그냥 한 시간쯤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그런 마음으로 올랐는데, 갈림길이 나와요. 그럼 고민이 시작되는 거죠. 흠...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 자에게 닥치는 첫 시련은 선택을 요하는 갈림길에서 와요. 그럼 그때라도 열심히 구글링을 하거나 초록창을 뒤져야 마땅할 텐데... 안내 팻말을 보고는 그냥 쉬워 보이는 쪽으로 향해요. 그런 길이란 으레 계획없이 길을 나선 저 같은 등린이를 위한 길일 테니까요.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의상 능선에서 바라보는 전경2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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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한하게도 쉬운 방향으로 한 두어 달 올라보니, 나름 욕심이라는 게 생기더란 말이죠. 장비 잘 갖추고 온 사람들이 열심히 땀 흘리며 오르는 그 길을 나도 한 번 올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죠. 욕심이 생기니 그때부터 어느 곳으로 갈지 계획이란 것도 세우게 되었죠. 

남들은 욕심이 생기면 보통 가장 높은 봉우리부터 살펴볼 텐데, 전 북한산의 많고 많은 봉우리들 중 가장 낮은 봉우리부터 찾아봤어요. 초보자에게 필요한 것은 도전에 대한 성공과 성취에서 오는 자존감이잖아요. 그래야 다음 스텝도 도모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말이죠... 최근에야 자존감을 다 채우고서도 저는 다음 스텝을 밟을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난 일 년 동안 일요일마다 북한산 원효봉에 올랐으니 몸이 정말 아프거나 기상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로 빠진 날들을 뺀다 해도 족히 30회 이상은 원효봉에 오른 것 같아요.

아마 눈 감고 올라가래도 아마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날과 이상하게 도전의식에 사로잡힌 날, 북한산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에 두 차례 오르면서 저의 자존감은 이미 채워질 대로 채워졌는데도 여전히 일요일엔 원효봉만 오르고 있었던 거예요.
 
용출봉과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용출봉과 의상봉 용출봉과 의상 능선 뷰 보고 가실게요~^^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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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북한산에 처음 올랐으니 이제 딱 일 년이 되었어요. 비록 주 1회지만 일 년이면 이제 '등린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간혹 저를 따라 오르는 지인들에게 원효봉 말고 다른 봉우리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한몫했을 거예요. 인간이란 자신의 것을 나눌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존재니까요.

북한산 원효봉에 오른 지 일 년 만에 또 다른 욕심이 생겼어요. 북한산의 모든 봉우리들을 다 올라보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생긴 거예요. 그렇게 2주째 다른 봉우리들을 탐험하고 있어요. 지난주엔 의상봉에 올랐고, 이번 주엔 국녕사를 거쳐 가사당암문 방향으로 올라 용출봉-용혈봉-증취봉을 거쳐 하산했어요.

북한산 의상 능선에는 여러 봉우리들이 쭈욱 걸쳐 있어서 일단 능선을 타기 시작하면 여러 봉우리를 만나게 되어 있어요. 오르는 이에게 성취감을 팍팍 주는 매력적인 능선이죠. 능선을 타며 넘어가는 길에 내려다보이는 도심 시가지와 북한산 능선 뷰는 직접 보지 않았다면 말을 마세요. 와, 막, 그냥, 엄청, 숨이 턱! 막힐 지경이거든요. 사진으로는 절대 그 감동을 다 전할 수 없답니다.
 
의상 능선에서 바라본 원효봉(제일 왼쪽 낮은 봉우리). 왼쪽부터 차례대로 원효봉-염초봉-백운대-노적봉이에요.
▲ 의상 능선에서 바라본 원효봉 의상 능선에서 바라본 원효봉(제일 왼쪽 낮은 봉우리). 왼쪽부터 차례대로 원효봉-염초봉-백운대-노적봉이에요.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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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특히 제 마음을 찡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의상 능선에서 건너다보이는 원효봉 능선을 보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이 가슴이 벅차오르는 거예요. 아, 저 원효봉을 일 년 동안 그렇게 올랐구나. 왜 미련하게 저기만 저렇게 올랐을까. 북한산에 이렇게 봉우리가 많은데 왜 난 저기밖에 몰랐을까. 스스로가 답답하고 미련하다 싶긴 한데, 궁금하기도 했죠. 그렇게 한 대상을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저란 사람이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하나의 대상에 꽂히면 다른 길을 잘 못 보는 미련 밤퉁이 같은 사람이요. 그래서 늦은 결혼에도 연애 횟수가 적었나 봐요. 한 사람을 만나면 애정의 도파민이 쥐어짜서 한 방울도 안 나올 때까지 만났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미련한 기질이 한 분야의 업(業)에 매진하거나 한 번 맺은 인연을 공고히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을 거예요.

이제 이 미련한 사람은 일요일마다 북한산 봉우리들을 탐험할 것 같으니, 혹시 저 같은 사람을 만나시면 반갑게 웃어 주세요. 암호명은 '원효봉!'이에요. 잠시 다른 봉우리들에 혹할 수는 있어도 제 첫사랑이자 끝사랑은 '원효봉'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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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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