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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해남군 반려견 캠핑 '곁' 단체사진
 2022 해남군 반려견 캠핑 "곁" 단체사진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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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으로부터 반려견 캠핑을 함께 준비해 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지난 5월 온 가족이 코로나19 확진 때문에 발이 묶여있었다. 군청 관광실에서 걸려 온 전화가 내심 반가우면서도, 네 살 난 아들이 놀이방에 어질러 놓은 장난감처럼 산만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와 '무엇을' 그리고 '왜'에 대해 나는 하나도 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첫 번째 행사를 치렀다. 첫 번째라는 말은, 앞으로 두 번의 캠핑 행사가 더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이 글은 지자체와 함께 캠핑을 기획하는 과정과 첫 번째 행사를 치르고 난 후의 소회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려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신조어 '펫팸(pet+family)족'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 이면에 빛과 그림자는 무엇일까. 캠핑 축제를 기획하는 데, 슬로건은 행사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것이기에 고민해야만 했다. 마땅한 문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첫 번째로 전위적인 화가 마르셀 뒤샹의 '앵프라맹스(inframince)'에 주목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어쩔 수 없이 그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틈, 애타는 마음, 그리운 마음 때문에 더욱 서글퍼지는 느낌, 그것을 사랑, 정, 그리움 등으로 표현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한계에 봉착한다. 눈으로 식별할 수 없지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불안, 두려움, 애탐의 어지러움을 눈감게 하고,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건강을 회복할 만한 '앵프라맹스'같은 우리말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두 번째로 내 눈길을 끈 것은, '부절'과 '부합'이라는 단어였다. 부절이란, 옛날의 사신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던 일종의 신분증이다. 주로 돌이나 대나무 따위로 만든 것이다. 이들이 지닌 부절은 온전한 모양이 아니다. 반으로 쪼개어 하나는 임금이 갖고 나머지 하나를 사신이 지닌다. 이 두 개의 반쪽 부절이 딱 맞았을 때 우리는 '부합(符合)'을 말한다.

옛적 고구려 유리왕의 신화에서 나왔던 칼 도막처럼, 그리스 로마신화의 테세우스 신화에서 언급된 칼과 가죽신처럼, 자신을 증명하고 마침내 간절히 염원했던 대상인 아버지와의 만남에 부합할 정서적인 슬로건이 필요했다.

반려견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을 키우는 보호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을 불러 축제를 행하는 해남군의 자연적 자원은 무엇일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나는 반려견 캠핑 내지는 페스티벌과 관련된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실제 다른 지자체에서 행사를 치르는 현장에 갔다. 

깔끔하게 부스가 차려지고, 삼삼오오 보호자들과 그들의 반려견이 모이는 그 장소에서, 뭔가 부합되지 않는 부절이 된 것 같았다. 일곱 모가 난 돌 위의 소나무 밑에서 기껏 칼도막을 들고 왔지만, 고주몽을 알현조차 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때 쪼그려 앉은 보호자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하얀 털의 포메라니안을 봤다. 짧은 다리로 깡충깡충 뛰며 보호자의 품으로 파고들려는 시도, 그 시도를 용케 받아주는 보호자의 넉넉한 마음, 그들 사이에 미소가 보였다. 행사가 끝나는 저녁 무렵, 노을은 그들에게 바치는 꽃다발 같았다.
 
송호항을 바라보는 반려견과 보호자
 송호항을 바라보는 반려견과 보호자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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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곁'은 정말 불완전한 단어다. 옛말인 겿에서 변화된 명사형 말이 포메라니안과 그 보호자를 어우르는 적확한 낱말이었다. 다가오는 대상이 있어야 하며, 그를 받아줄 마음이 있어야만 부합할 수 있는 단어였다.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사람, 물체 따위의 옆, 또는 공간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데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관용어구 '곁(을) 주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가까이할 수 있도록 속을 터 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서적으로 부족함을 느낀 사람들은 왕왕 '주다'에 그치지 않고 '내주다'는 좀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한다. 

반려견은 그 자체로서 보호자에게 곁을 준다. 보호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이 부합하는 가운데 지자체인 해남군은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추억의 시간을 준다면 그들이 물리적인 공간인 해남군 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심리적인 여운은 해남군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해남군의 송지면에 있는 황토나라테마촌은 그러한 이상향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사실 이곳은 행사 이외에는 반려견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장소이다. 그런 점에서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잘 삶과 건강함이 모티브가 되어 건축된 해남의 랜드마크에서 반려견이 맘껏 노즈 워킹하고, 보호자도 반려견을 양육하는 데 있어 격려받을 수 있는 장소가 될 듯싶었다. 

"강제하지 않되, 놀이판은 펼쳐 놓을 것!"

고아웃독스 이경원 대표의 말이었다. 처음으로 반려견 캠프를 준비하다 보니, 프로그램 기획부터 난항이었다. 해남군에서 몇 차례 캠프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력이 있는 이경원 대표를 행정이 연결해주었다. 목마른 자에는 늘 갈급함이 있는 법이었다. 전화로 몇 마디 주고받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다. 스승은 도처에 있는 법이었고, 때마침 지자체에서 그런 배움을 주선해주었는데, 해남군에서 하남시까지 못 갈 이유는 없었다. 나는 군에서 전화번호를 받고 그 이튿날 여행 가방을 꾸려 하남시로 갔다.
 
커뮤니티 모임을 갖는 반려견과 보호자
 커뮤니티 모임을 갖는 반려견과 보호자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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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들끼리도 곁을 내줄 수 있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대해서 확신이 섰던 것은 이경원 대표를 만난 직후였다. 오랫동안 반려견과 관련된 각종 커뮤니티 및 업체를 운영했던 경력답게 사전에 교류하는 준비 시간만 갖는다면 집단 프로그램에 대한 운영, 특히 안전사고에 대해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조언도 들었다. 

캠프의 주제이자 정점이 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위해 무엇을 예비적으로 배치할 것인가는 고민은 하남시에서 해남군까지 자가용으로 5시간 넘는 길을 내려오면서 고민했다. 행사일에 나는 이경원 대표에게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장기자랑 진행을 부탁했다. 장기자랑에 대해 보호자님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전에 단체 카카오톡방을 안내드렸다. 반려견이 곡예를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오랫동안 반려견과 함께 지내며 보았던 좋은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반려견 자랑을 통해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크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의외의 말들이 나왔다. 광주에 거주하는 한 보호자님은 '조카가 결혼하면서 남긴 아이다. 그전에는 반려견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되려 왜 키우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접하면서, 생명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고,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다'고 말했다. 또 용인시에서 오신 분은 수술을 앞두고 사랑하는 반려견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전국각지에서 총 20팀을 모집했다. 토·일요일 당일 팀 외에 1박 2일 팀으로 꾸려진 30여 명이 참석한 행사였다. 이들은 반려견을 다루는데 목줄과 하네스 착용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유했다. 또한 반려동물 등록세에 관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본래 준비했던 시간보다 길어졌고, 해는 서산 뒤로 넘어갔다.

1차 행사는 끝났다. 보호자들은 단체 카카오톡 방을 통해 서로의 소감을 나누었다. '너무너무 따뜻한 시간 잘 보내고 간다. 매력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는데... 다른 친구들을 챙겨주지 못해 아쉽다, 좋은 시간 선물해줘서 고맙다, 정말 재밌게 즐기다 간다' 등의 의견을 남겨 주셨다.

마음 졸이며 행사를 준비한 시간이었다. 한 차례 치르고 나니, 기획할 때 보이지 않았던 미흡한 점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을 조금은 개선해서 남은 두 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황토나라테마촌에서 캠핑을 즐기는 보호자와 반려견
 황토나라테마촌에서 캠핑을 즐기는 보호자와 반려견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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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째 주, 둘째 주 주말에 연이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좀 더 고민해보고, 삶을 껴안은 보호자들의 생명 존중의 가치와 해남군의 천혜 자연을 흠향할 프로그램을 계획해 봐야겠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갑갑한 세상에 서로의 결에 새길 곁이지 않을까.

태그:#2022, #해남군, #반려견 캠핑, #오마이뉴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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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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