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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2년 9월 2일 오후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022년 9월 2일 오후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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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장관이) 강제동원 피해자들 의견을 경청할 것이라며 광주까지 온 거다. 막상 피해자들 만나서는 '의견서'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사과 표명도 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이율배반적이라고 보는 이유다."

지난 2일 진행된 박진 외교부장관의 '광주행'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이 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를 우롱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면서 한 말이다.

지난 2일 오후 박 장관은 KTX를 타고 광주에 내려가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98)씨와 양금덕(93)씨를 차례로 만났다. 그러나 박 장관은 "문제가 잘 풀리고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저희가 방안을 잘 마련하겠다"라고 밝히면서도 대법원에 낸 외교부 의견서에 대해 "법원 판결 선고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구속력도 없다"면서 철회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앞서 7월 26일 외교부는 전범기업 미쓰비시 압류재산 강제매각을 위한 최종 결정만을 남긴 대법원에 "강제 현금화 이전에 외교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대법원에서) 충분히 고려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 의견서를 수령한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날짜를 특정하지 않은 채 미쓰비시 측의 특허권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에 대한 심리불속행 결정을 미뤘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씨 등 5명은 2012년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들은 1심과 2심에서 이긴 뒤 지난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우리 법원은 미쓰비시가 양씨 등 5명에게 각각 1억 원~1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미쓰비시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자 우리 법원은 미쓰비시가 국내 보유한 상표권과 특허권에 대한 압류 및 매각 조치를 명령한 바 있다. 

아래는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과 나눈 대화 주요 문답이다. 그는 박 장관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나는 자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했다.

"이율배반"

- 박진 장관이 광주에 내려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쓰비시 자산에 대한 강제 매각 조치 결정을 사실상 유보해 달라는 외교부의 의견서가 대법원에 전해져 영향력을 미친 상황에서 박진 장관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피해자 지원 단체)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나는 반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박 장관과) 동행하며 안내를 했다. 심사는 복잡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역할대로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전 기자회견을 통해 '전범기업 손을 들어줬던 외교부가 아무 일 없었던 듯, 피해자들 손목을 부여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며 '사과 표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피해자들을 만난 박 장관은 '법령과 절차에 따라 진행한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 마디 사과 표명도 하지 않았다.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든 이유다."

- 이율배반적이라 느낀 구체적인 이유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미 벼랑 끝에서 강제 집행 하나만을 믿고 힘겹게 버티고 선 사람들이다. 그런데 외교부가 낸 의견서를 통해 피해자들을 낭떠러지 아래로 툭 밀어버린 것이다. 외교부의 의견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니 장관의 사과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끝끝내 사과하지 않은 채 '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거나 관여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했다. '영향을 주거나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왜 정부 기관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의도도 없는 행위를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외교부가 그렇게 한가한 조직인가?"

"그동안 흘린 눈물로 배 한 척 띄우고도 남았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2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박진 장관에게 건넬 손편지를 작성하는 모습.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2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박진 장관에게 건넬 손편지를 작성하는 모습.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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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동원 피해자 중 한 명은 박 장관에게 자필 편지를 건넸다고 하던데. 

"올해 94세가 된 양금덕 할머니다. 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질 못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장관이 온다니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다. 할머니는 편지에 '그동안 흘린 눈물로 배 한 척 띄우고도 남았다'라고 적었다. 그 말 한마디에 당신이 살아온 아픈 세월을 그대로 녹여낸 거다.

할머니 편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편지 말미에 눌러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양금덕 말을 꼭 부탁, 부탁한다고 부탁합니다'라고 적은 부분이다. 부탁을 세 번이나 썼다. 간절함을 담아서 쓰고 또 쓴 거다. 할머니는 부탁하고 또 부탁한다는 말에 앞서 '돈 때문이라면 진작 포기했다. 나는 일본에서 사죄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도 박 장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염치없는 일 아니냐. 지금이라도 의견서를 철회해야 한다."

- 이대로 가면 대법원의 결정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과정에서 외교부 주도로 진행되는 민관협의회 논의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민관협의회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해법을 마련한다고 만들어진 단체다. 정작 피해자들은 빠져버렸다. 5일도 4차 회의가 열린다고 하는데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 단체와 다르지 않다. 나는 민간협의회는 '외교부 자문기구'에 불과하다고 본다. 혹여 나중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단체의 이름에 얹는다면 그야말로 사기 행위다. 

언론에서 대법원의 결정이 한없이 연기된 것처럼 '기약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김성주 할머니 건 같은 경우에는 새 법관이 구성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양금덕 할머니 건은 대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고 기각 결정(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 된다. 양금덕 할머니 재판부가 다른 재판부 상황에 영향을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재판부가 행정부의 재판 개입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인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서 김성주 할머니와 양금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보유 특허권과 상표권에 대한 압류 명령 및 매각 명령을 법원에 각각 신청했다. 각각의 사건은 미쓰비시 재항고로 대법원에 넘어왔는데 김성주 할머니가 당사자인 경우는 대법원 3부 주심 김재형 대법관이 지난 2일 퇴임하면서 주심 교체가 불가피해졌다. 양금덕 할머니가 당사자인 사건은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가 심리 중이다. 

인터뷰 말미 이국언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본 저자세외교를 꼬집으며 "정부의 행태(의견서 제출)는 심하게 말하면 '시간'이라는 가장 무서운 적을 둔 피해자들을 앞에 두고 약을 처방하는 법원에 약 처방을 미뤄달라고 방해한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에서 피해자들과 신뢰를 구축하겠다 말하는데 신뢰라는 건 법과 원칙에 따라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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