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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1일, 산양 두 마리가 알래스카 주 주노에서 호손 피크를 따라 눈밭을 오르다가 멈춰 있다.
 2022년 8월 21일, 산양 두 마리가 알래스카 주 주노에서 호손 피크를 따라 눈밭을 오르다가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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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선거 제도

미국 알래스카에서 치러진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의 메리 펠톨라 후보가 승리했다.

알래스카는 그 자체로 매우 독특한 선거구다. 알래스카 주는 면적이 170만 ㎢를 넘는 미국 최대의 주다. 하지만 인구는 70만 명 수준으로, 와이오밍과 버몬트를 제외하면 가장 적은 수준이다. 덕분에 주별로 똑같이 2명을 할당받은 연방상원의원은 2명을 선출하지만, 인구에 따라 할당받은 연방하원의원은 주 전체에서 1명만을 선출한다.

따라서 알래스카의 연방하원의원은 170만 ㎢를 넘는 거대한 영토를 의회에서 홀로 대표한다. 물론 미국에서 가장 큰 선거구이며, 세계적으로 봐도 한 명을 뽑는 선거구로는 캐나다의 누나부트(Nunavut)를 제외하면 가장 넓다.

하지만 알래스카라는 선거구가 독특한 것은 단순히 면적이나 인구 때문만은 아니다. 알래스카 주는 2020년 11월 주민투표를 통해 매우 독특한 선거제도를 도입했다. 주민투표에서도 1%p 남짓한 근소한 차이로 통과된 선거제도다.

기존의 선거 방식은 이해하기 쉽다. 한국이나 미국의 다른 주와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경선을 통해 한 명씩 후보자를 선출하고, 이 후보자가 선거에 나오는 방식이다. 유권자들은 두 후보 사이 한 명을 고르면 되고,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자가 당선된다.

그러나 알래스카에서는 이제 선거를 이렇게 치르지 않는다. 우선 경선을 각 당에서 별도로 진행하지 않는다. 대신 선거 두 달 전 예비선거를 치른다. 이 예비선거에서는 소속된 정당과 관계없이, 원하는 모든 사람이 입후보할 수 있다. 여기서 유권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후보 한 명만을 골라 투표한다.

예비선거에 출마한 수많은 후보자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상위 4명은 본 선거에 진출한다. 상위 4명이 어떤 정당인지는 관계 없다. 4명 모두가 공화당일 수도 있고, 절반씩 섞여 있을 수도 있고, 4명 모두 민주당일 수도 있다. 이 네 명을 두고 본 선거에서는 선호투표를 실시한다. 단순히 원하는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1등부터 4등까지 순위를 적는다. 가장 지지하는 후보는 1등으로, 가장 지지하지 않는 후보는 4등으로 적는다.

이렇게 기표한 표를 모아, 처음에는 누구를 1등으로 썼는지만을 본다. 만약 유권자의 과반이 특정 후보를 1등으로 썼다면, 다른 절차 없이 그 후보가 당선된다. 하지만 후보자 네 명이 나온 상황에서 그것은 쉽지 않다. 과반 득표자가 없다면, 1등을 가장 적게 얻은 후보를 탈락시킨다.

탈락된 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탈락된 후보를 1등으로 쓴 표는, 일일이 검토해 해당 유권자가 2등으로 쓴 후보자에게 승계된다. 이렇게 표가 승계된 뒤, 다시 과반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그 후보는 당선된다. 없다면 다시 한 번 최소 득표자를 탈락시키고, 표는 차순위로 승계한다. 이제는 후보가 두 사람만 남았으니, 둘 중 한 명은 과반을 얻게 된다.

특별한 보궐선거
 
사라 페일린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 사진은 지난 7월 9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국을 구하라'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연헐하고 있는 모습.
 사라 페일린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 사진은 지난 7월 9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국을 구하라" 집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연헐하고 있는 모습.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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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주는 원래 이 선거 제도를 오는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다. 이때 연방 하원의원 뿐 아니라 연방 상원의원, 주지사 등 알래스카에서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 이 제도를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겨났다. 지난 50년 동안 25차례의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알래스카의 연방 하원의원을 도맡아 왔던 공화당 돈 영 의원이 임기 도중 사망한 것이다. 그렇게 알래스카는 8월에 연방하원의원만을 뽑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시기적으로 보면 11월에 다시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의원을 뽑아야 하니, 임기 3개월의 단명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셈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연방하원의원이 공석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기간에 제약이 있어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됐다. 완전히 새로운 선거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보궐선거를 시험대로 사용할 수도 있게 됐다.

이번 선거의 예비선거엔 수십 명의 후보가 출마했고, 그 가운데 4명이 선택됐다. 1위는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으로, 2008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한 공화당 사라 페일린이었다. 낙선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각종 음모론을 정치 일선에 내세우며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2위는 역시 공화당의 닉 베기치 3세였고, 3위는 무소속의 알 그로스 후보가 차지했다. 민주당은 메리 펠톨라 후보가 4위를 차지하며 겨우 본선에 출마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공화당 우세 지역이었던 알래스카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였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다시 한 번의 변수가 있었다. 3위를 차지한 알 그로스 후보가 사퇴한 것. 결국 본 선거는 공화당 2명, 민주당 1명의 세 후보만 놓고 치르게 됐다. 역전의 서막이었다.

그렇게 치러진 선거 결과는 반전이었다. 1등에서 4등까지 선호도를 표시한 표가 집계됐다. 첫 번째 집계에서는 민주당 메리 펠톨라 후보가 1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결과였다. 민주당 후보는 한 명이었고, 공화당 후보는 둘이었다. 공화당의 표가 나뉘는 것은 당연했고, 이제 3위 후보가 탈락해 그 표를 다른 공화당 후보에게 넘기면 공화당의 승리는 명확했다.

메리 펠톨라가 처음 얻은 표는 7만5799표. 2위 사라 페일린은 5만8973표를, 3위 닉 베기치 3세는 5만3810표를 얻었다. 닉 베기치 후보의 표가 같은 당의 사라 페일린에게 넘어가면 3만 표 이상이 차이 나는 낙승이었다.

하지만 닉 베기치 후보를 선택한 5만3000여 표 가운데 1만 표 이상이 아예 차순위를 적지 않았다. 이 표들은 닉 베기치 후보가 탈락한 뒤 다른 후보에게 승계되지 않고 사라진다. 남은 표 가운데 같은 당 사라 페일린 후보에게 넘어간 표는 2만7000여 표에 불과했다. 1만5000여 표가 민주당 메리 펠톨라 후보에게 넘어갔다.

결국 최종적으로 메리 펠톨라 후보가 9만1266표를 가져가며 51.48%로 과반을 차지했다. 50년간 공화당의 장기 집권이 이어졌던 알래스카의 연방 하원 의석을 민주당이 탈환한 역전극이 펼쳐진 것이다. 선호투표제가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개혁과 변화
 
지난 8월 19일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메리 펠톨라 민주당 의원. 사진은 8월 3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데나이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행사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지난 8월 19일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메리 펠톨라 민주당 의원. 사진은 8월 31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데나이나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행사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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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래스카에서는 과거 유사한 일이 벌어진 적 있었다. 알래스카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주에는 수기투표제가 있다. 원하는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을 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직접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투표용지 마지막에 공란을 두어, 여기에 유권자가 마음대로 이름을 써서 내면 그것도 유효표가 된다.

2010년, 알래스카의 현직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재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공화당 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알래스카는 아직 선호투표제를 도입하기 전이었고, 경선에 탈락하면 공화당 후보로는 본 선거에 나설 수 없었다.

제3당 입당이나 무소속 출마설까지 돌던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결국 이 수기투표제를 활용하기로 한다. 경선에서 탈락했으니 공화당 후보로 출마는 못 하지만, 선거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써 달라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이 전략을 통해 무르코우스키는 39.5%의 표를 얻었고, 선거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알래스카의 이 독특한 경험과 이번 선거제도 개혁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선거제도를 이용해 기성 정치세력이 원하지 않는 후보를 당선시켜본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선거제도의 변혁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알래스카에서 민주당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성장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의 선거결과가 조작됐다고 생각하고, 백신 음모론을 퍼뜨리고, 지하정부가 미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동조하는 한 정치인의 의회 진입을 막아냈다는 사실이다.

선호투표제는 1등만 기억하지 않는다. 2등과 3등의 뜻을 기억하고 존중한다. 1등만 얻어서는 당선될 수 없다. 2등과 3등의 여론까지 모두 받아안아 과반을 만들어야 당선될 수 있다. 이것은 극단화되는 정치를 막아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2010년 수기투표제를 통해 당선된 후 2016년 재선에 성공, 지금까지 상원의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리사 무르코우스키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에 동의한 7명의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중 한 명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내 경선과 양당 사이의 본선이라는 선거제도가 아닌, 다른 선거제도를 활용해 본 후보자는 극단화되는 정치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알래스카에서 선호투표제를 이용한 역전극이 벌어진 뒤, 미국의 여러 주에서 선호투표제 도입에 대한 여론이 나오고 있다. 뉴욕 주를 비롯해 이미 일부 선거에서 선호투표제를 도입한 주들도 있다.

미국의 선거제도에는 여러 문제가 지적된다. 고착화된 양당제 구도는 양당과 다른 정치색을 가진 제3세력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며 정치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감소시켰다. 대통령선거의 승자독식제는 정작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요원하다. 바꾸기 어려운 헌법조항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이미 익숙해진 정치문화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조금씩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알래스카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그 성과가 지렛대가 돼 오늘의 역전과 반전이 만들어졌다.

알래스카의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단지 3개월의 단명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양당제의 틀을 본질적으로 바꾸지 못하더라도 제도를 통해 극단을 걸러내고, 정치의 문제를 조금씩이나마 보완해나갈 수 있다는 첫걸음이다.

알래스카의 방향이 꼭 정답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을 떠나, 고착화된 지지세를 역전시키는 변혁이 가능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알래스카의 이번 선거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정치제도가 변화할 수 있다는, 충분한 희망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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