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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와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요트와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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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푼(Yeppoon)을 떠나 집으로 향한다. 호주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퍼시픽 하이웨이(Pacific Hwy)를 타고 남쪽으로만 가면 집에 도착한다. 여행 시작할 때 퍼시픽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왔기에 한 번 지나쳤던 도로다. 집까지는 이틀 이상 운전해야 하는 먼 길이다. 어디선가 지내며 가야 한다. 분다버그(Bundaberg)라는 도시에서 머물기로 했다. 적당히 운전해 도착할 수 있는 이유도 있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안 도시이기 때문이다.

분다버그에서 유명한 건 '술'

도로에는 캐러밴을 끌고 가는 자동차가 많다. 주로 나이 든 부부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은퇴한 사람들일 것이다. 호주 사람들의 캐러밴 사랑을 실감한다. 두세 시간 운전했을까, 도로에 카페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쉴 때도 되었다. 허기가 조금 느껴지기도 한다. 널찍한 공터 주차장에 들어서니 캐러밴 대여섯 대가 주차해 있다. 카페는 동네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 들어서니 통나무로 만든 육중한 식탁이 시선을 끈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손님을 받으며 음식도 준비한다. 언뜻 보아도 장사에 익숙한 움직임이 아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조금 시간이 걸려 주문한 음식을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가지고 온다.

그런데 들고 오는 쟁반이 예사롭지 않다. 통나무를 파서 만든 고급스러운 쟁반이다. 호주 시골에는 동네마다 할아버지들이 취미 활동하는 목공예 그룹(Men's Shed)이 있다. 그룹에서 활동하는 할아버지들이 만들어 기증한 것이다. 동네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하며 노년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기에 좋다.

정성들여 만든 음식과 커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사탕수수밭과 과수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농사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의 눈에도 땅이 기름져 보인다. 이름 모를 과일나무가 빽빽한 과수원과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을 지나 도시에 들어선다.

분다버그는 인구 70000명이 넘는 대도시다. 야영장은 쇼핑센터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편의 시설이 주위에 널려있어 지내기에 좋다. 저녁은 쇼핑센터에 걸어가 베트남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로 해결한다.

다음날은 자동차로 시내를 둘러본다. 식당과 가게가 길게 늘어진 도시 한복판에 주차했다. 상점 윈도우를 기웃거리며 수많은 사람과 하나 되어 걷는다. 특이한 가게가 시선을 끈다. 히말라야 고산 지방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물건을 파는 가게다. 산악지대 순박한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방을 하나 집어 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은 제품이라 마음에 든다.

쇼핑 거리를 벗어나 근처에 있는 공원에도 가본다. 동네 한복판을 흐르는 큰 강(Burnett River)이 소리 없이 가까운 바다로 흘러간다. 강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한가하게 오르내린다. 넓은 공원이다. 그러나 사람은 많지 않다. 근처에 서너 명의 사람이 주위를 거닐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여자 혼자서 책을 읽고 있다. 게으름을 피우며 지내기에 좋은 한가한 공원이다.
 
분다버그(Bundaberg)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
 분다버그(Bundaberg)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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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다버그에서 유명한 것은 술(Rum)이다. 유명한 양조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조장은 관광안내소에서 추천하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찾아가 본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건물에 도착했다. 입장권을 사고 전시장을 둘러본다. 공장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술에 대한 설명도 많다. 그러나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거대한 오크통과 벽장에 전시된 수많은 술이다. 이렇게 많은 술이 한 곳에 전시된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직원 안내를 받으며 양조장을 둘러본다. 처음 보는 규모가 큰 양조장이다. 사탕수수를 발효하는 건물에서는 이런저런 설명이 길게 이어진다. 공장을 둘러본 후에는 술을 시음하는 시간을 갖는다. 술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 좋다는 술 몇 가지를 시음해 보았다. 맛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술의 좋고 나쁨은 구별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시음까지 했는데, 좋다는 술 한 병 계산하며 관광을 끝낸다.
 
분다버그 양조장
 분다버그 양조장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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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오크통과 술이 전시된 분다버그 양조장
 거대한 오크통과 술이 전시된 분다버그 양조장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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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집을 떠났나

다음 날은 항구가 있는 바닷가를 찾았다.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다. 어선도 보인다.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어대는 바닷가를 걷는다. 관광객을 위한 건물에는 호주 최대의 관광지 산호섬(Great Barrier Reef)을 오가는 관광선 시간표가 붙어 있다. 오래전 산호섬에 가본 적이 있으나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항구를 떠나 야영장으로 향한다. 돌아갈 때는 작은 도로를 택했다. 시골 풍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밭이 줄지어 있다. 밭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이 정겹다. 확실히 호주 농사는 규모가 크다. 땅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방향만 대충 생각하며 야영장으로 운전하는데 전망대가 있다. 지나칠 수 없다. 가파른 도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 오후 늦은 시간이다.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야자수 나무들이 심한 바람에 몸을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해가 멀리 떨어진다. 여행하면서 수없이 보았던 일몰이다. 그러나 지는 해는 항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준다. 또 다른 멋진 일몰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몰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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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는 농사짓는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호주에는 농사짓는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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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분다버그에 사는 사람을 관광지에서 만난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분다버그에 있는 한국 식당을 자랑했던 사람이다. 고기 구워 먹는 뷔페식당인데 맛이 좋았다고 한다. 값이 비쌌다는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이곳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새우 양식장도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있어서인지 거리에는 한국 사람도 가끔 보인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며칠 더 지낸 후 분다버그를 떠난다.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캐러밴 점검도 하면서 여행을 준비하며 지냈던 골드 코스트(Gold Coast)가 목적지다. 먼 거리다. 중간에 쉬기도 하면서 7시간 이상 운전해 골드 코스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집까지도 가깝지 않다. 골드 코스트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길을 떠나 집으로 향한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여유를 부리며 캐러밴 청소를 비롯해 밀린 집안일을 한다. 여행하면서 찍었던 수많은 사진도 정리한다. 캐러밴을 가지고 7개월 정도 다닌 여행이다. 여행하면서 지냈던 삶이 하나둘 떠오른다. 호주 광야의 경이로운 풍경이 떠오른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물건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있는 캐러밴을 청소하느라 반나절을 보낸 추억도 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캐러밴을 가지고 정처 없는 방랑(nomad)의 삶을 택한 부부의 맑은 모습도 떠오른다. 삶에 정답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 주었던 부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오지 야영장(Mount Surprise)에서 주방일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던 식당 주인이다.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라고 한다. 만약 주방일을 도우며 한두 달 머물렀다면 오지 식당에서 특이한 삶을 경험했을 것이다. 여행 일정 또한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순간의 선택으로 삶의 진로가 달라졌던 경험은 많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사람의 말은 맞는 말이다. 집처럼 편한 곳은 곳은 없다. 그런데 집을 왜 떠났는가. 자문해 본다. 순례(Pilgrimage)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안주하지 않는 거리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단어다. 거리의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안한 미래가 삶을 싱싱하게 만든다고 한다.

얼마간 집에서 지내면 하루하루의 편안함과 일상에 또다시 매몰될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미래를 그리워하며 집을 떠날 것이다. 싱싱하게 살고 싶다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분다버그에 농사와 식수를 제공하는 호수(Monduran Lake)
 분다버그에 농사와 식수를 제공하는 호수(Monduran Lake)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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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캐러밴으로 돌아보는 호주 여행기' 연재를 끝냅니다.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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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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