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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는 노인의 네 가지 고통을 다룹니다. 이 기사는 그 중에서 노인의 '빈곤'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종종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뵐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유튜브 채널을 하나 보는데, 진행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영국에 사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리어카로 폐지를 줍고 나르는 어르신을 보고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어떻게 노인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며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됐다는데, 어르신들이 이런 일을 하실 수밖에 없도록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런 취지였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일단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루 종일 폐지와 공병 등을 주워 모아서 카트나 유모차, 리어카 등에 담아 고물상에 갖다 주면 3000원에서 5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한 달 내내 모으면 10만원 정도는 된다. 그걸로 필요한 물건도 사고, 자녀 생계에도 보태고, 손주 용돈도 줄 수 있다.'

한 달에 10만원. 어떻습니까? 땅을 파서는 나오지 않을 돈이지만, 최저임금을 적용하더라도 10시간 정도 일하면 벌 수 있고, 숙련된 기술직 노동자는 반나절 안에 벌 수 있으며, 박사급 강사나 경력직 실무자가 외부강의를 하면 1시간에 받을 수 있는 수당이니 사실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노후의 삶이 앙상해지지 않도록
 노후의 삶이 앙상해지지 않도록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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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우리에게는 가난한 어르신들에게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소득보장' 제도가 있습니다. 매달 30만원 정도의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등을 합쳐서 독거노인은 60만원, 노인부부는 1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공적 이전소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장 가난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이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1인 가구 200만원, 2인 가구 320만원 정도인 기준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기본적인 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알고 있어야 할 정보가 있는데요. 노인 빈곤율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올해 노인 인구가 900만 명이니까 이런저런 소득을 다 합쳐도 빈곤선 아래에 있는 어르신이 360만 명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전혀 소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준 중위소득의 30%인 60만원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부끄러워해야 할 지점은 우선 바로 여기입니다. 게다가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빈곤이 360만 명으로 예측되는 것이고, 기준 중위소득의 50%로 빈곤선을 올리면 540만 명 정도로 늘어납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수치입니다.

엄청나게 많아 보이죠? 게다가 이 어르신들을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상 수준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 것 같습니다.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 공적연금 등이 없다고 가정하고, 독거노인도 있지만 부부가 같이 사는 2인 가구도 있으니까 지원금을 매달 80만원, 연간 1000만 원 정도로 줄이고, 인구 규모를 500만명 정도로 가정해 보겠습니다. 계산해 보니까 1년에 50조 정도가 필요하네요.

어쨌든 큰 돈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가 예산이 600조 정도였으니까 실제로 큰 돈입니다. 그러나 이것저것 따져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단 위 가정에서 뺀 기초연금(20조원)과 기초생활보장 중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지급되는 급여 총액(전체 14조 중 절반 이상), 그리고 공적 연금의 일부를 포함하면 이미 빈곤노인에게 지급되는 재정이 30조원은 넘을 테니까 더 필요한 재정은 많아도 20조 정도일 것입니다. 여전히 큰 금액처럼 보이겠지만 4대강 사업이나 대통령집무실을 아무 이유 없이 옮기는데 들어가는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줄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거시적인 지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021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은 2200조원 정도였습니다. 주식시장 시가총액도 2021년 기준으로는 2000조원 안팎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총자산은 2경원에 조금 못 미치는데, 그 중에서 가계가 주거를 목적으로 갖고 있는 주택자산의 시가총액은 6600조원 정도이며, 부동산 대출이 대부분인 가계부채는 2000조원 정도였습니다. 가계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겁이 나지만, 65세 이상 어르신 중에서는 부동산을 위해 대출을 받는 비율이 낮고, 투자 목적으로 거액의 대출을 받을 정도의 분들이라면 빈곤해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국가 재정에서 추가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큰 무리가 되지는 않으며, 국내총생산의 규모와 대기업들이 쌓아놓고 있는 막대한 사내유보금 규모, 낮은 조세부담률 등을 고려하면 20조원 정도는 푼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주택 자가보유율은 60% 정도인데, 65세 이상 노인의 자가보유율은 70%가 넘습니다. 다만 저소득층의 자가보유율은 50% 이하로 낮아집니다. 이런 수치들을 종합하면, 빈곤노인의 절반 이상은 자가가 아닌 전세나 월세 등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자가보유 여부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거비 지출여부와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집마저 없다면 부담이 커질 것입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에게 주거비 부담이 없는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다른 걸림돌은 향후 30년 간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공적 이전소득의 부담도 급증하는 반면에, 점차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청장년세대와 아동청소년세대가 나중에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빈곤노인이 많다는 말은 부자노인도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가 자산의 대부분을 이들 부자노인들이 갖고 있고,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의 정점에 도달하는 연령집단이 10여년 뒤 노인이 될 50대 중반 세대이며, 임대료 수입을 가져가는 '건물주'와 금융시장의 큰 손도 동일한 연령집단입니다. 따라서 곧 발생할 문제를 미래로 미룰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인세대가 지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당분간 정치적 합의도 어려우며, 반발이 크다는 사실도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해 왔으므로, 결국 답은 부자노인들과 부자기업들로부터 사회보장성 조세를 획기적으로 더 거둬들이는 방법 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모은 돈을 빈곤노인이나 빈곤예방 프로그램에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면, 현물이나 증권, 서비스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재정 지원을 통해서 우리는 노인 빈곤을 '거의' 전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전부'에 도달하지 못하고 '거의'에 머무르는 것은 불가피한 제도의 결함과 사각지대에 해당하는 공백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없어진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소득과 재산을 포함한 자산 산정기준(소득인정액) 등이 전자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제도가 있는지 몰랐거나 존재는 알았지만 자신이 해당되는지 몰랐거나 해당되는 건 알았지만 신청하기가 힘들었던 경우와 같은 신청주의의 함정(낮은 접근성)이나 국가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철저한 자립의지, 아껴 쓰면 버틸 수 있다는 다소 지나친 근면의식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은 이중 어디에 해당할까요?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공적연금의 대상이 아니거나 대상이더라도 급여액이 적어서 기초보장의 생계급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으로 기초생활을 위한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돈이 자신과 동거가족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국가가 정한 수준에는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어르신들이 제도의 결함과 신청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사각지대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분들에게 제도에 대해 알려드리고 적극적으로 이 소득보장제도들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고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한 어르신은 '기초연금과 생계급여는 가난한 자식에게 주고, 자신은 폐지를 주워서 번 돈으로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고, 그 확대가족에 마땅히 가야할 지원이 제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황혼이 더 아름다워지도록
 그리고 황혼이 더 아름다워지도록
ⓒ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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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맥락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노인들의 근로능력과 근로의지입니다. 즉 여든 안팎의 연령에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한국 노인들의 뼛속 깊이 박힌 근면과 성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조금의 근로능력만 남아 있어도 '뭐라도' 해서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려는 의지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폐지를 주워도 손에 쥐는 돈이 얼마 안 됨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자녀, 손자녀를 위해 그렇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태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르신들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근로능력을 조절하여 일하시겠지만, 폐지를 수거하는 길바닥이나 쓰레기 더미의 위생상태, 그것을 고물상이나 집하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각종 사고의 위험성을 고려하면 더 그렇습니다. 노인의 나머지 세 가지 고통, 즉 질병, 소외, 무위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노인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여전히 자신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느끼며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찾아드리는 것이 마땅해 보입니다. 그런 일이 어떤 일인지는 '무위'를 다루는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노인빈곤을 점차 줄이고, 결국 없애는 것입니다.

태그:#노인빈곤, #소득보장, #폐지 줍는 노인,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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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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