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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옛 황궁인 탕롱황성은 정문인 도안문과 후문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식민시기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 하노이 탕롱황성 하노이의 옛 황궁인 탕롱황성은 정문인 도안문과 후문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식민시기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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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구시가는 얼핏 보면 좁고 불편한 것 투성이다. 인도는 가게의 의자와 기물들이 주차된 오토바이와 뒤엉켜 걷기 힘들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행렬로 보행자들에게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기 어렵다. 매연과 먼지가 뒤섞인 하노이 구시가는 여행자들에게 한없이 불친절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허나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면 말끔한 신사 같은 고풍스러운 하노이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길거리에는 좁고도 길쭉한 이곳만의 전통양식의 건축인 튜브 하우스가 옹기종기 모여있고, 골목마다 불교, 도교사원, 사당이 이곳의 오래된 역사를 말없이 알려준다.

다양한 하노이의 건축양식들
 
하노이 구시가의 가옥들은 폭이좁고 내부는 길쭉한 튜브, 타운하우스라 불리는 양식으로 지어졌다.
▲ 하노이 구시가의 가옥들 하노이 구시가의 가옥들은 폭이좁고 내부는 길쭉한 튜브, 타운하우스라 불리는 양식으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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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네덜란드의 집처럼 정면의 폭이 좁고 내부가 길쭉한 가옥 양식인 튜브 하우스는 베트남어로 냐옹(nha ong)이라 불리는 세장형 주택을 일컫는 말이다. 봉건 시대에 상가에 대한 세금을 건물 전면부의 폭을 기준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다. 특히 하노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얼핏 튜브 하우스와 전체적인 틀은 비슷하지만 서양적인 느낌이 좀 더 드는 건축물은 타운하우스라 하는데 프랑스 식민 시기 하노이를 새롭게 건설할 때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보통 발코니 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녹색을 띤 정교한 나무문, 밝은 노란색이 특징이다. 타운하우스는 호이안 올드타운에서도 드문드문 볼 수 있다.

다양한 볼거리가 숨어 있는 하노이지만 그 오래된 고도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옛 탕롱 성(하노이의 옛 명칭)을 구성하고 있는 궁성과 관료들의 공간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교를 핵심 통치사상으로 가진 베트남 역시 관료들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조선의 성균관 같은 기관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엔 호안끼엠 호수의 서편, 옛 황성터의 남쪽에 자리 잡은 문묘로 찾아가 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알아가 보기로 했다. 한국의 성균관과 달리 고풍스러운 석조 양식의 정문이 있는 문묘는 엄숙함보다는 발랄한 기운이 묻어 나온다. 하노이의 문묘 역시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자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국자감이 자리해있었다.
 
문묘의 정문을 따라 가다보면 과거급제자를 기록한 82개의 진사제명비가 모습을 들어낸다. 시대에 따라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비석은 중국, 한국보다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 문묘의 진사제명비 문묘의 정문을 따라 가다보면 과거급제자를 기록한 82개의 진사제명비가 모습을 들어낸다. 시대에 따라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비석은 중국, 한국보다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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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리 왕조의 3대 황제 성종이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곳을 세웠고, 그다음 황제인 인종 때 과거제도가 최초로 실시되고, 왕족 자제들을 위한 국자감을 설립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매표소에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 가능해(유료) 이곳이 어떤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세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이곳은 입구부터 공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까지 5개의 문을 통과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높은 석축 계단 위에 들어서 위엄과 권위를 보이는 우리의 공간 구조와 달리 친근하면서 편안한 분위기가 건축물에 감돌고 있다. 문을 지나 성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 바깥에는 연못정원으로 꾸며져 현지인들의 산책코스로도 사랑을 받는 듯했다.

우리의 성균관보다 중국 취푸에 위치한 공묘와 비교해 규모는 작을지라도 구조는 유사한 듯 싶었다. 그중 하나가 1484년부터 300년간의 과거 급제자를 기록한 82개의 진사제명비가 모여있는 구역이다. 웅장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는 비석들은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대부분 파괴돼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의 자부심이 이곳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의 유교는 조선처럼 교조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처럼 여필종부를 강조했지만 부인의 재산권과 이혼권을 인정했으며 부모 생존 중에도 한집안 동거를 벗어나는 자녀의 분가를 인정했다. 그리고 대가족보다 핵가족이 일반적이었다.     
 
베트남 제단은 우리와 달리 화려한 꽃, 열대과일, 초콜릿, 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상에 올려져 있다.
▲ 문묘 제단의 모습 베트남 제단은 우리와 달리 화려한 꽃, 열대과일, 초콜릿, 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들이 상에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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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나라의 특성상 건물 지붕이 낮고 건물 전체를 덮고 있었으며 지붕을 장식하는 조각이 화려했다. 하지만 내부는 중국과 흡사했다. 하지만 제단에 바나나, 리치 등의 열대과일과 초콜릿 등이 올려져 있어 제사상은 우리보다 진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지하 벙커의 싸늘한 냉기

문묘에서 골목을 따라 위쪽으로 올라간다면 레닌 공원이 나오는데 이 주변으로 군대와 경찰의 경비가 삼엄해져 비로소 사회주의 국가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중국, 북한, 싱가포르 등 많은 국가의 대사관이 몰려있고, 머지않은 곳에 국회의사당, 국방부 등 국가의 핵심시설이 몰려있다. 바로 이 구역에 베트남의 옛 황성이 자리해 있다.

1802년 응우옌 왕조가 수도를 후에로 옮기기 전까지 700년 동안 베트남의 황도가 되었던 이 황성은 프랑스군 사령부로 쓰이기 시작했고, 정문인 도안문과 깃발탑, 북문 등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터와 식민지 시기의 건물만 남아있다. 우리의 경복궁은 일제의 잔재를 걷어내고 수십 년에 걸쳐 복원이 이뤄지는데 반해 터만 남은 옛 궁터는 안타깝고 씁쓸함만 전해주는 듯했다. 

그마저도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들어가기 수월치 않았다 한다. 늠름한 자태의 도안 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무성한 잡초와 기단부 그리고 방치된 서양식 건물들이 별거를 앞둔 부부처럼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탕롱황성의 안쪽 구역에는 옛 프랑스군 사령부를 이용한 베트남군 사령부가 들어와있었다. 월맹군은 이곳에서 베트남 전쟁을 지휘하였고, 지금은 집무실과 회의실 벙커를 공개하고 있다.
▲ 하노이 벙커 탕롱황성의 안쪽 구역에는 옛 프랑스군 사령부를 이용한 베트남군 사령부가 들어와있었다. 월맹군은 이곳에서 베트남 전쟁을 지휘하였고, 지금은 집무실과 회의실 벙커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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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볼만한 것이라곤 내부 건물에 꾸며진 전시관이었다. 탕롱 황성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를 전시하고 있는데 화려했던 건물 장식과 도자기에서 영화로웠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식민정부의 군사령부로 쓰였던 만큼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 사령부가 주둔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주둔했던 사령관의 집무실과 회의실 그리고 지하벙커에서 싸늘한 냉기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하노이의 다양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베트남의 다양한 면모를 이곳에서 얻어간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경기별곡 2편)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연, 기고 협업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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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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