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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암진단이 대지진이었다면, 지금은 여진 중입니다. 흔들흔들! 흔들리며 '나다움'을 회복해 가는 여정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기자말]
"꼬끼오~ 꼬끼오~ 꼬끼오~"

매일 아침 우리집 뒷산에선 닭이 운다. 그것은 진짜 닭이 아니라 내가 우는 소리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암입니다" 의사 말을 듣고 
 
자연 앞에 오감이 열릴 때야말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자연 앞에 오감이 열릴 때야말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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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암입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그토록 소용돌이 쳤던 마음이 깊은 바다 속으로 쑤욱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의외로 평온하고 고요했다. 그날 밥상머리에서 둘째 아이가 "엄마, 의사가 뭐래?" 물었을 때, 나는 태연히 "암이래!"라고 대답을 했으니까. 그 길로 현미를 사러 갔으니까. 그날 밤부터 9시 취침을 강행하며 푸욱 잤으니까.

드디어 수술 하는 날, 내 발로 수술대에 올라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차가운 수술대를 상상했는데, 따뜻했다. 병원 스태프들이 뭔가로 나를 포옥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수술 담당 의사의 말에 따라, 푹 잠을 자고 나온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평안은 여기까지!

퇴원을 앞두고 병원 침대에서 명상을 하는데, 뜻밖에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참 불쌍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돌보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한 내 모습이 그랬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자각이 선명해졌다. 이제부터 자기를 소외시킨 삶에서 돌이켜, 나를 사랑하고 돌보는 거다.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나름의 예식이 필요했다. 수십년 몸에 배인 습관이 저절로 사라질 리 없기 때문이다. 한 웃음 치료사가 알려준 대로, 산에 올라가서 야호! 대신 '꼬끼오!'를 외치기로 했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 '꼬끼오!'를 외치며 인생을 새롭게 열어가고 싶었다.

홀로 있음... 더 큰 가족을 얻는 길
 
칠보산 자락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 오늘도 그대에게 생명을 빚진 자로
 칠보산 자락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 오늘도 그대에게 생명을 빚진 자로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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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좋다>의 저자 프란치스카 무리는 이렇게 말한다.
홀로있음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삶에서 당신 스스로를 발견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시간들을 통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면, 타자들과도 더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24쪽

나도 혼자가 되는 길을 모색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영덕으로 9박 10일 치유여행을 떠나는 것이 그것이다. 암환자가 아니었더라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독학 반수생 둘째와 고등학생 막내를 남겨두고 말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암은 나에게 인생의 쉼표요, 리셋버튼이자, 방향등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암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나를 영덕으로 밀어부쳤다.

그곳에서 처음엔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만큼 총천연색의 자연 치유 밥상이 제일 좋았다. 가족을 떠나 혼자가 되는 것이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칠보산 자락 깊은 산 속, 외딴 섬과 같은 그곳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 얼핏 생각하면 외롭고 적막하고 따분할 것 같지만.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자연 앞에 오감이 깨어나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 솔잎을 흔들며 내 살갗에도 스쳐지나가는 바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산새들의 조잘거림, 코끝을 스치는 풀내음과 꽃내음,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산딸기...

거기다 깊이 잠들어 있던 직관까지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닌가.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과 함께 더 큰 가족을 얻은 느낌! 모두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깨달음!

생명의 경이로움을 맛보다
 
트레이닝복, 반백의 머리, 햇볕에 그을린 얼굴... 눈빛만큼은 위풍당당해지지 않았을까.
 트레이닝복, 반백의 머리, 햇볕에 그을린 얼굴... 눈빛만큼은 위풍당당해지지 않았을까.
ⓒ 박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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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주절거리다 보니, 갑자기 내가 도가 튼 것 같네. 문득 문득 이런 마음이 찾아왔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카 무리도 혼자 있음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생명 자체에 대한 절절하고 놀라운 관계라고 말한다. 이것은 관습과 기존 질서와 다른 사람들이 덮어씌운 표상에서 벗어나,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동력이라고 하는데. 그럼 나도 그동안 몸과 마음에 배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암 이후 지나치게 날씬해진 몸매에 날마다 걸치는 트레이닝복, 반백의 머리, 햇볕에 그을린 얼굴... 별로 예쁘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위풍당당해지지 않았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끊임없이 나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니까 말이다. 그냥 나는 '나', 생명 그 자체로 그들과 공명하며 살면 되는 거다.

"얘들아, 기다려봐 봐! 엄마가 너희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암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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