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5 09:13최종 업데이트 22.09.1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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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상과 앞에 새로 꾸민 명량 분수 ⓒ 최준화


한창 인기를 끈 한산도 대첩을 다룬 영화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감독)이 다시금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업적을 되새기게 했다. 그런데 이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공용문자인 한글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면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이건 케케묵은 한글전용 논쟁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 안내문을 읽을 수 없다
 

새로 설치된 이순신 장군의 전승 기록 새김돌(34개)과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된 분수 시설 ⓒ 최준화

 

한자로만 기록되어 있는 이순신 장군상 이름과 뒤편 새김돌 정보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대학생들 ⓒ 김슬옹


새로 단장한 광화문 광장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곳은 이순신 장군상 주변이다. 앞의 좌우로 충무공의 해전을 상징하는 명량 분수를 설치하고 34개의 업적과 어록 새김돌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광화문 광장 아카이브'에 의하면, 동상 안쪽 분수의 133개 물줄기는 명량 해전 당시 격퇴한 133척의 왜선 수를, 바깥쪽 분수는 한산도 대첩 당시 학익진 전법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분수 앞 바닥 조명은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신 1545년을 상징하기 위해 길이를 15.45m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가위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9일, 이곳을 찾은 세 명의 대학생에게 광장의 가장 중요한 안내문인 "忠武公李舜臣將軍像"을 읽어보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 이름 자체를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사실 한자를 공부한 사람들도 '舜'자가 중국 고대의 요순 시대의 순임금인 '순'을 나타낸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순신 장군 형의 이름은 '이요신'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 새내기(사회복지학과 1년)라는 김도담씨는 "왜 대한민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장군 이름을 전 세계인들이 격찬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로 적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했다. 임학선씨(컴퓨터과학과 4년)는 이순신 장군 뒤편에 새겨 놓은 한자 정보를 전혀 읽을 수 없다면서 "왜 세종대왕 동상 앞에 한글을 무시하는 이런 새김글을 그대로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朴正熙 獻納 / 題字 朴正熙 書 / 銘文 李殷相 撰 / 彫像 金世中 作 /西紀 一九六八年四月 日 /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 /서울신문社 建立" (이순신 장군상 뒤편의 건립기)

세 청년은 다 같이 일부 어른들은 한자를 못 읽는 자신들이 잘못이라 하겠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의 위인을 한글로 적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한자를 모르는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국혜씨(교육학과 2년)는 건립기 위의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새김글(건립 명문)도 너무 위에 있고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어, 제대로 읽을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저녁 무렵의 이순신 장군 상 앞 명량 분수 ⓒ 최준화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여 동상 뒤에 붙어 있는 '관리기관 : 서울특별시 역사도심재생과'로 전화했더니 전혀 다른 부서로 연결되었다. 같은 명칭의 부서는 없어지고 전화번호가 바뀌었단다. 서울시 누리집 조직도를 통해 알아보니 '서울특별시 균형발전본부 균형발전기획관 광화문광장사업과 광장관리팀'이라는 아주 긴 이름의 부서가 관리하고 있었고 전화번호도 바뀌었다.

이곳 관계자와 통화를 해 보니, 문제의식은 공감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1968년에 세운 역사성에 따른 문화재 측면도 있고 조각 예술품이다 보니 조각가(김세중)의 의중도 물어봐야 하고, 이순신 관련 각종 단체들의 의견을 모두 들은 뒤, 더불어 국민의 중지를 모아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내부 협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라 하여 기사에 그 의견을 반영하지는 못했다.

충분히 일리 있고 예견되는 답변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그런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야 하고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도 하다. 한글학회 김한빛나리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고 받드는 세종대왕상 앞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이름을 제나라 공용 문자로 적혀 있지 않고 '忠武公李舜臣將軍像'라고 한자로만 적어 놓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성훈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은 "충무공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도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몇 년 전 관광객 해설사 특강을 갔는데 그때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순신 장군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다 보니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파병한 장수로 오인하기도 한다고 한다. '李舜臣'의 '舜'의 중국 고대 임금인 '순임금 신', '臣'이 '신하 신'이라는 뜻이다 보니 더욱 그런 오해를 하는 듯하다.

굳이 외국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자 모르는 국민들은 읽을 수조차 없다. 더욱이 국가가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이 동상이 세워진 1968년은 1948년에 시행된 한글전용법이 시행되고 있었고, 설령 그 시대의 관습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2005년도에 제정한 국어기본법에 의거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이라고 적어야 한다. 그리고 동상 밑이나 옆에 5개국어 설명 표지판을 세우면 더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이순신 장군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국격과 자중감을 높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인 '한글'의 가치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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