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26 11:46최종 업데이트 22.09.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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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가상의 눈이 그려준 엉뚱한 그림 때문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가 새로운 세상 운운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세상 역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장애인들은 뭔가 한두 가지를 잃어버려서 힘들고 불편한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어이없고 황당한 일을 종종 겪게 된다.


나도 당연히 그런 일을 적잖게 겪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한동안은 그게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고, 나와 세상을 원망하게 했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에이, 겨우 이런 일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내겐 꽤 심각했고, 무척 감추고 싶었다.

그래도 어렴풋이 길과 사물을 볼 수 있던 8년 전, 내가 등산화를 신고 조금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다.

따뜻함을 넘어 더위가 느껴지던 어느 날 퇴근하려고 평소처럼 택시를 부르려다가 혹시 걸어서 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성남시에는 산책로가 훌륭하게 갖춰진 탄천과 그리로 흘러드는 지천의 정비가 비교적 잘 돼 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그 지천과 탄천을 따라가면 됐고, 난 그 길을 수십 번은 걸었다.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결심을 굳히고 나는 자신 있게 퇴근길에 나섰다. 어렴풋이 보이는 사람들을 뒤쫓아 횡단보도를 건너고, 8차선 대로 옆 보도를 지나 마침내 지천 산책로에 닿았다.

"휴우, 뭐, 별거 아니구만."

지천은 5~6m 남짓 너비에 냇물 깊이도 기껏해야 무릎을 넘지 않았다. 산책로는 냇가를 따라 쌓은 1m 남짓 높이의 축대를 따라 이어져 있었다. 내가 볼 수 있었을 때 나는 그 산책로에 설치된 난간을 직접 확인했고, 불과 얼마 전에도 아내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걸어본 적이 있어서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냇가 쪽 난간을 조심스럽게 확인해 가며 천천히 집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는 내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넘쳐나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퇴근했다. 그리고 반 달 정도 지났을 때는 출근길에도 도전해서 깔끔하게 성공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걸어서 출퇴근했다.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에 이르렀던 것일까, 일이 터졌다.

내가 평소처럼 지천 산책로로 접어드는데 그날따라 흐릿하기만 했던 시야가 조금 밝아진 느낌이었다. 좁고 어두워 보이던 산책로가 넓게 느껴졌고, 평소 두세 명은 있던 사람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호, 오늘 컨디션 짱인데! 거기다가 가만있자, 분명 아무도 없지?"

온 신경을 집중해 주변을 살폈지만 청아한 물소리와 경쾌한 새소리만이 날 반겨줄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제대로 한 번 걸어볼까? 사람 만날 때까지만이라도."

분명 그 길은 기껏해야 세 사람 정도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이었고, 냇가 쪽으로는 철제 난간이 설치돼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시야가 확 트인 그 느낌과 아무도 없다는 그 기회가 내게 뭘 씌워 버린 것 같았다. 분명 있어야 할 난간이 없었는데도 난 넓게 트인 길로 자신 있게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생뚱맞게 휘파람까지 불면서.

그렇게 네댓 걸음 걸었을까, 힘차게 내딘 내 왼발이 바닥에 닿지 못하고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어어…"

순간적으로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죽는 거야?' '이런 꼴을 누가 보면 어쩌지?' 정말 신기하게도 그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떻게든 뛰어내려서 발이 먼저 닿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내 오른발 만세였다. 반사적으로 도약을 시작한 오른발 덕분에 난 간신히 중심을 잡고 뛰어내릴 수 있었다. 발목까지 잠긴 내 발 주위에는 온통 사람 머리만 한 돌덩이가 어지러웠지만 난 너무도 멀쩡했다.

"휴우, 하느님 감사합니다."
  

느닷없이 넓어진 산책길 하지만 거긴 길이 아니었다. 아니면 가상의 눈들아, 여긴 길이 아니잖아. ⓒ 김승재

 

안도의 한숨도 잠시 나는 누가 물에 빠진 내 꼴을 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들었고, 나도 놀랄 정도의 날랜 동작으로 방금 떨어진 가슴 높이의 그곳으로 뛰어 올라갔다.

다행히도 그런 내 꼴을 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제야 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살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넓다고 느낀 산책로는 지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기껏해야 5~6m 정도 길이의 다리였기에 옆에는 난간도 없었고, 그냥 시멘트 길뿐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내 가상의 눈들은 그 다리를 넓은 길로 보여주었고, 자신 있게 그곳으로 발을 내딛는 바람에 그 꼴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의 아찔함은 나를 한동안 탄천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며칠 후 퇴근길에 나선 나는 문제의 그 다리 근처로 들어서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걷기의 유혹, 하지만 그때의 아찔함은 어느새 두려움으로 변해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내가 문제의 그 산책로를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할머니 두 분이 천천히 담소를 즐기며 걷고 있었다. 웬만하면 그냥 뒤를 따라가려 했지만, 두 분의 걸음은 너무 느렸다.

'추월하자.'

그때 내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고, 내 가슴은 크게 뛰기 시작했다. 냇가로 난간이 설치돼있기는 했지만, 중간중간 사람 하나는 충분히 빠질 공간도 있었다. 두 분이 난간 쪽으로 길을 열어 준다면 내 빈약한 시력으로 그 공간을 피해 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했다.

망설이던 나는 결국 그대로 두 분 뒤를 쫓아가기로 했고, 두 분은 가끔 걸음까지 멈추고 배꼽을 잡고 웃다가 다시 담소를 즐기며 정말 너무너무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세 배는 느린 걸음으로 두 분 뒤를 쫓았다.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두 분 이야기에 웃기라도 해보려 애썼지만 끝내 웃을 수가 없었다.

친구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 눈을 대신한 가상의 눈들이 멋지게 제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을 무렵, 도서관 앞 단골 카페에서의 일이다.

내 눈에조차 작열하는 폭염이 보이는 것만 같았던 8월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시원한 에어컨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도서관 앞 단골 카페에 들어갔다. 열 명 남짓 손님으로도 가득 찰 정도의 작은 카페였지만, 커피 맛도 좋았고, 값도 싼 데다가 무엇보다 여사장님의 밝고 친절한 목소리가 기분 좋은 곳이었다.

가볍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가 궁금한 게 있다면서 역사 이야기를 꺼냈다. 사학과 출신인데다가, 지금까지 그것을 최고의 관심 분야로 삼고 있으며,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도 한 내게는 너무도 반가운 주제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는 건 그냥 일반적인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과 역할을 판단한다는 건데, 그러니까 왕이면 왕으로서, 장군이면 장군으로서..."

내가 한참 신나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좀 길게 통화를 해야 했다.

"아이고, 미안. 좀 상의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맞다. 그렇지. 그러니까 역사에서 어떤 왕을 언급한다는 건 한 국가의 왕으로서이지 한 남자로서가..."

시원한 커피로 목까지 축여가며 한참 열변을 토하는데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가타부타 내 말에 호응을 잘해 주던 친구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혹시...'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순간, 카페 여사장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저기요. 친구분 잠깐 전화하러 나가셨어요. 말씀하고 나가신 줄 알았는데..."

"예? 아, 예."

   

카페에서 웬 모노 드라마? 무대도 아닌데. ⓒ 김승재

 
불현듯 스쳐 갔던 불안한 생각이 현실이 됐다. 그리고 갑자기 내 가상의 눈이 그림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친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손짓까지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나를 쳐다보는 카페 손님들과 여사장님의 웃음 가득한 얼굴들이 그 자리를 가득 채웠다.

숨기고 싶었는데 일단 꺼내 놓으니까 할 말이 너무 많다. 혼자 걷다 낭패를 당하거나 허공을 향해 떠든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앞서 걷는 사람을 무리하게 뒤쫓다가 양철 안내판을 머리로 들이받아 때아닌 종을 울린 적도 있었고, 가로등을 들이받아 졸지에 너구리 눈이 돼 버린 적도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내 곁으로 다가온 생면부지의 아저씨를 동행한 친구로 착각해서 농담을 하거나 심지어 장난으로 헤드록을 건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들은 기껏해야 며칠 정도 날 잡아뒀을 뿐이다. 진짜 날 몇 달 동안 우울의 늪으로 끌고 간 건 정말 정말 단순한 말이었다.

탄천 산책로에서 맞닥뜨린 어떤 존재, 내가 시각 장애인임을 밝히자 그 존재가 나를 비껴가며 혼잣말처럼 내뱉은 단 네 마디. 내 평생 딱 한 번 들어본 말이지만 아직도 그 말은 날 주저앉게 만든다.

"눈x신이 왜 싸돌아다녀, 싸돌아다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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