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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아이 '지구를 지켜요' 피켓을 들고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3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아이 "지구를 지켜요" 피켓을 들고 있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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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전세사기를 당했다. 지난해 청년 임차인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많은 곳으로 조사된 곳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다. 화곡동은 빌라 밀집 지역으로 임대인들의 갭투자가 활발하고 극단적으로는 무갭투자(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아 임대인들이 돈 한 푼 안 들이고 주택을 매수하는 것)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도 그 역전세의 피해자였다.

보증보험을 들지 못했던 우리는 하마터면 1억이 넘는 전세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었지만 확정일자를 받아놓은 덕에 쫓겨날 신세는 면했다. 하지만 당장 보증금을 돌려받을 주인이 사라진 탓에 이사가 쉽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서 가깝게 지내던 이웃들 중에도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했다. 내가 살던 화곡본동은 서울에서 그나마 집값이 저렴한 동네였다. 지하철 역과 거리가 멀고 봉제산 중턱에 있어 교통편이 불편하고, 20년 넘은 작은 빌라들이 빼곡하게 모여있어주거 환경이 주변 지역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출을 많이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회초년생, 신혼부부가 많았고, 아이들을 좋은 가치로 함께 키우고자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대안 공동체를 꿈꾸며 한 동네로 모인 청년들도 많은 곳이었다. 봉제산 자락에 있어 도심에서 숲을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서로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 많아 꼭 어릴적 마을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모여 살 수 있고, 좋은 가치를 함께 실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터를 잡은 사람들이 투기꾼들의 먹튀에 속절없이 당했다는 사실에 나는 자주 울화가 치밀었다.     

주거환경 취약할수록 기후위기 심각성 크게 느껴
 
서울 화곡동에서 살던 집은 기후재난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다음 세입자는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부 뜯어내어 공사를 하고 있다.
▲ 집수리 서울 화곡동에서 살던 집은 기후재난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다음 세입자는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부 뜯어내어 공사를 하고 있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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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들어오지 않는 열 평 조금 넘는 빌라는 기후변화의 타격을 크게 받는 주거환경이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빌라는 환기도 쉽지 않았다. 장마철엔 빨래에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유기농 음식만 골라서 먹이는데도 어느 순간 아이 피부에는 아토피가 번졌다. 할 수 없이 건조기를 사서 돌렸더니 전기 차단기가 내려갔다. 경제사정 탓에 가격이 저렴한 대신 에너지 효율이 낮은 건조기와 에어컨을 함께 돌린 탓이다. 그 집에서 6년이란 시간을 살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에 갇혀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우리는 진지하게 지방 이주를 고민하다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살고자 지난해 1월 경북 김천으로 이사 왔다.

김천에 와서도 서울 집 문제 해결에 남편이 오랜 시간 매달렸다. 지난 몇 년간의 지난한 경매과정을 거쳐 올봄이 되어서야 집의 소유권을 겨우 가져올 수 있었다. 세입자에서 본의 아니게 집주인이 되었지만 아직 전세금 대출은 여전히 갚지 못했다. 오히려 빚이 늘었다. 다음 세입자가 우리와 같은 전세사기와 폭염피해, 장마철 곰팡이 등의 피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큰돈을 들여 집을 수리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폭염에 늘어난 돌봄 비용
 
자연으로 놀러갔던 날, 귀한 꿀벌을 보았다
▲ 자연과 함께 자연으로 놀러갔던 날, 귀한 꿀벌을 보았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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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살이도 상상했던 것처럼 자연과 가까운 삶은 아니었다. 때 이른 폭염과 이례적으로 긴 장마와 태풍 등으로 올여름은 주말이면 아이들과 자연 대신 대형마트나 키즈카페를 찾는 일이 많았다. 너무 더워서 근처 공원에만 나갔다 와도 탈진되고, 아이 몸엔 땀띠가 났다.

자동차가 없는 우리는 아이 둘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기 어려워 택시를 이용하다 보니 택시비도 적지 않게 든다. 그 사이 뉴스에서는 폭염으로, 홍수로, 태풍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보도된다. 기후위기의 그림자가 일상 곳곳을 파고들었다.

삶의 전반에서 먼저 기후위기를 느낀 이들은 거의 늘 사회적 약자들이다. 가난하고 주거환경이 취약한 이들, 땡볕에서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 어린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 등 이미 기후 재난의 시대를 몸으로 살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 우리도 기후재난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온 가족이 지난 24일 서울에서 열린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상경했다.

터전을 잃은 이들을 기꺼이 환대할 수 있는 삶

서울에는 행진 이틀 전에 먼저 올라왔다. 긴 시간 우리 발목을 붙잡던 서울 집 문제의 마지막 해결을 위해서다. 김천에서 서울까지 두 아이와 함께 올라오는 길은 쉽지 않았지만 친언니와 서울 사는 친구 가족이 기꺼이 잘 곳을 내어주어서 이틀밤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신세 지는 형편이 되어보니 여러 생각이 올라왔다.

'만약 김천이나 대구에서 기후행진이 열렸다면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내려왔을까?'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 한복판을 떠도는 일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수많은 난민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터전을 잃고 길 위에서 헤매야 하는 이들의 고통을 헤아려보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우리에게 기꺼이 집을 내어준 이들의 환대가 없었다면 정말 고단했을 이틀을 보내며, 나도 누군가에게 쉴 곳을 내어주는 이웃으로 살아야겠다는 새삼스러운 다짐도 했다.

24일 토요일,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유모차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수 없기에 가까운 출구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역마다 한 개씩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찾아서 네 식구가 미로 찾기 행진을 벌였다.

겨우 찾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유모차 두 대를 향해 따가운 눈총을 날리며 슬금슬금 우리 앞으로 새치기를 하시는 어르신들을 먼저 보내드리느라 기본 10분은 기다려야 했다.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광화문역도 엘리베이터는 한 대뿐이었다. 그 곳에서 만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한 분은 이미 익숙한 듯 계속해서 먼저 사람들을 엘리베이터로 들여보내셨다. 나는 유모차 한 대를 접고 아이를 안았다. 전동휠체어와 유모차를 끄는 4인 가족이 모두 함께 탈 수 있도록 우리는 최대한 몸을 붙였고, 그분은 섬세하게 바퀴를 조정했다.

지상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생각했다.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는 기후정의행동의 구호만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 위한 발걸음 또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보행에 어려움이 있을수록 돌봄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그 어려움의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 그 어려움을 안고 승강기에 탄 우리는 서로가 자신의 자리를 좁혀 공간을 내어주는 연대를 했다.

작은 목소리의 연대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시민이 '지금당장 기후정의' 피켓을 들고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7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시민이 "지금당장 기후정의"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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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역에서 시청역까지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는 동안 사방 곳곳에서 확성기가 울려 퍼졌다. 한쪽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라 하고 반대편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구속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일상이었던 이 풍경들이었는데 오랜만에 마주하니 재난 영화 대여섯편을 VR로 체험하고 빠져나온 것 마냥 정신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다 지나고 나서야 겨우 기후정의행진 대열을 만날 수 있었다.

첫 해 5천 명 규모였던 기후정의행진 행사는 기후위기가 낳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고 3년 만에 3만 5천 명(집회측 추산)으로 몸집이 커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시민들이 서울 남대문 앞에서부터 서울광장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어린이가 피켓을 들고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6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어린이가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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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재활용 안 돼요", "내일은 없다 SAVE THE EARTH" 등의 피켓을 손수 제작해 거리로 나선 많은 사람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육아인으로서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아이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본집회에서 손수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기후정의를 함께 외치는 사람들의 열기에 지쳐있던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상경한 우리 가족도 대열에 합류했다. 7살 첫째 아이는 "지구를 지켜요", "북극곰을 도와주세요"라고 직접 만든 피켓을 들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지구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기후 재난의 불평등 뒤에는 자본주의가 있다.
 
924 기후정의행진 '불교기후행동' 스님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5 924 기후정의행진 "불교기후행동" 스님들이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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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는 다양한 연령대는 물론, 다른 정치 성향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 수도권과 비수도권 거주자들, 무직과 노숙자, 산업 현장 노동자와 대기업 직장인, 수녀와 스님, 장애인과 농어민, 반려인과 채식인 등 전부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스펙트럼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그만큼 기후위기는 모든 사람이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후 재난에도 더 큰 어려움에 처하는 이웃들이 있다. 어르신들은 무더위나 폭염에 훨씬 취약하고, 장애인들도 여러 재난에 대응하기가 비장애인보다 힘들다.
 
924 기후정의행진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조형물 행진 모습
▲ 924 기후정의행진 12 924 기후정의행진 "일하다 죽지않게 차별받지 않게" 조형물 행진 모습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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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송전탑, 신공항 사업 등으로 고통받는 지역주민들, 기후재난으로 농작물을 잃고 일방적인 대규모 재생에너지로 농토를 잃고 있는 농민,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에 빠진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이 있다. 

올 여름 서울의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반지하 가족의 사고도, 공장식 축산으로 무참히 착취당하고 있는 비인간 동물과 생태계도 기후재난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어린이가 직접 만든 피켓에 '북금곰을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14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어린이가 직접 만든 피켓에 "북금곰을 도와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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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후위기 시대에도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사는 삶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야기하며 막대한 부를 쌓는 일부 최상위 계층과 기후재난의 피해가 고스란히 쏠리는 빈곤층의 불평등한 구조를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 모두 기후재난으로 인한 불평등 해결과 기후위기를 방관하거나 가속화하는 사회구조 체제의 변환을 촉구했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 아닌 지금 나의 문제
 
924 기후정의행진. 유모차를 타고 참여한 아이의 유모차에 '지구를 지켜요' 피켓이 올려져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16 924 기후정의행진. 유모차를 타고 참여한 아이의 유모차에 "지구를 지켜요" 피켓이 올려져 있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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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전문가들은 기후 재난이 앞으로 더 거세지고 잦아질 것이며, 특히 재난에 취약한 계층에게는 더욱 심각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경고한다. 지금이라도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성장 계획을 멈추고, 생명을 살리는 성장으로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 빠른 속도로 대규모의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화석연료 사용을 최대한 줄어나가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야 한다. 먼 미래의 숙제로만 남겨두면 기후위기는 해결되지 않는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열에 함께하고 있는 동물권해방 운동 단체 '카라'
▲ 924 기후정의행진 10 924 기후정의행진 대열에 함께하고 있는 동물권해방 운동 단체 "카라"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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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기후위기를 막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지난 주말 시청과 광화문 일대를 뒤덮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희망의 씨앗처럼 느껴졌다.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라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자발적불편운동'의 슬로건이 내게도 용기를 북돋워 분다.

나도 지구의 생명체로서 그 움직임의 주체가 될 의무가 있다. 좋은 세상을 꿈꾸며 더불어 살고자 했던 이들의 작은 꿈들이 더이상 자본주의의 압력에 스러지지 않도록. 작은 약속들을 가슴에 담고 다시 내가 사는 곳, 김천으로 내려왔다. 
 
924 기후정의행진 '동물해방이 정답이다' 피켓을 든 시민들
▲ 924 기후정의행진 1 924 기후정의행진 "동물해방이 정답이다" 피켓을 든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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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기후정의행진 '기후위기 포천시민행동'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924 기후정의행진 2 924 기후정의행진 "기후위기 포천시민행동"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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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기후정의행진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
▲ 924 기후정의행진 4 924 기후정의행진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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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다시입다연구소' 활동가들
▲ 924 기후정의행진 8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다시입다연구소" 활동가들
ⓒ 문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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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중복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msa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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