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과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거장'으로 인정 받는 베테랑 감독들이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와 웅장한 화면을 잘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루카스 감독과 카메론 감독은 지구를 넘어 광활한 우주로 퍼져 있는 <스타워즈>와 <아바타>의 세계관을 직접 만들어낸 '이야기꾼'이다. 이런 작가로서의 능력이야말로 루카스와 카메론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인정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카메론 감독은 데뷔작 <피라냐2>를 제외하고 자신이 연출한 장편영화 7편의 각본을 모두 썼다. 할리우드가 연출가과 각본가의 영역이 확실하게 나눠진 제작환경임을 고려하면 카메론 감독은 할리우드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장르가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화면으로 구현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한다면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는 카메론 감독의 작업방식은 오히려 '정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비족이라는 새로운 외계종족을 등장시킨 <아바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카메론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 <터미네이터> 역시 미래에서 온 기계인간과 인간의 싸움이라는 복잡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2편까지 SF 액션영화의 새 역사를 쓰던 <터미네이터>는 2003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아래 <터미네이터3>)부터 그 기세가 크게 위축됐다. 그리고 이는 카메론 감독의 이탈이 결정적이었다.
 
 <터미네이터3>는 2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4억 달러를 갓 넘는 아쉬운 흥행성적에 머물렀다.

<터미네이터3>는 2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4억 달러를 갓 넘는 아쉬운 흥행성적에 머물렀다. ⓒ 시네마서비스

 
카메론 감독 하차부터 틀어진 <터미네이터> 세계관

기계들과 인간 저항군의 전쟁이 벌어지는 미래세계에서 저항군 사령관의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과거로 간 암살기계와 그녀를 지키기 위한 용사의 이야기를 그린 <터미네이터>는 1980년대 중반 SF 액션영화의 걸작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터미네이터> 1편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은 물론 각본작업까지 병행했던 작품으로 카메론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 세계관'의 시작을 알린 영화였다.

카메론 감독은 1991년 할리우드 역사상 처음으로 제작비 1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을 통해 세계적으로 5억 1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남기며 SF액션의 대가로 등극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1997년 <타이타닉>을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휩쓸며 '세상의 왕'이 된 카메론 감독은 많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터미네이터3> 연출에 난색을 표했다.

결국 <터미네이터3>는 '터미네이터의 아버지' 카메론 감독이 빠진 채로 제작됐고 <터미네이터3>는 2억 달러의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세계적으로 4억 3300만 달러라는 다소 아쉬운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한 편이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고 후속작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아이템이었다. 결국 제작사는 6년이 지난 2009년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싱턴 주연의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을 제작해 개봉했다.

<터미네이터4>는 기계 인간이 과거로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던 앞의 세 편과 달리 스카이넷과 저항군의 전쟁이 벌어지는 미래로 시점을 바꾼 작품이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마저 정치 활동(캘리포니아 주지사)으로 인해 <터미네이터4>에 불참했다. 2015년에는 슈왈제네거가 복귀하고 한국배우 이병헌이 T-1000을 연기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개봉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카메론 감독이 없는 터미네이터의 초라함을 깨달은 제작진은 2019년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린다 해밀턴을 복귀시키고 카메론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미 마블의 히어로에게 익숙해진 관객들은 노인이 된 아놀드와 해밀턴에게 열광하지 않았다. 결국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2억6100만 달러의 흥행성적으로 제작비 640만 달러로 만들었던 <터미네이터1>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존 코너 캐스팅에서 큰 실망 안긴 <터미네이터3>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4편을 제외하고 6편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5편에 출연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4편을 제외하고 6편의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5편에 출연했다. ⓒ 시네마서비스

 
사실 <터미네이터3> 프로젝트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이름이 빠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영화팬들은 3편의 완성도가 앞선 두 편을 능가하거나 버금갈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인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캐스팅된 만큼 '재미'에 대한 기대까지 접긴 힘들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3>는 캐스팅 단계부터 이미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터미네이터2>에서 나이답지 않은 꽃미모와 함께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전 세계 여성 팬들을 설레게 했던 존 코너 역의 에드워드 펄롱은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역변'하면서 <터미네이터3> 출연이 불발됐다. 관객들은 내심 떠오르는 젊은 스타배우나 그 시절의 에드워드 펄롱 같은 특급 신예의 캐스팅을 기대했다. 하지만 청년 존 코너 역으로 낙점된 닉 스탈은 외모와 연기, 카리스마 모두 관객들의 기대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터미네이터3>는 '1, 2편의 장점들을 짜깁기해 만든 단순한 액션영화'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터미네이터3>는 카메론 감독이 탄생시킨 터미네이터의 세계관을 훼손시키는 영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장면과 설정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냉정하게 수행하는 T-850(아놀드 슈왈제네거 분)이 존 코너를 앞에 두고 '죽일까 말까' 고뇌하는 장면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3>는 2억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답게 후반으로 갈수록 많은 물량을 쏟아 부은 액션장면들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T-850과 T-X(크리스타나 로컨 분)가 화장실에서 선보이는 격투는 상당히 잘 뽑아낸 액션장면이었다. <터미네이터>를 상징하는 명대사 "I'll Be Back"을 살짝 비튼 "I'm Back(내가 돌아왔다)"과 "You're Terminated(너는 제거됐다)"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잘 사용됐다.

<터미네이터3>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을 포기한 이후 <에일리언1>과 <글래디에이터>의 리들리 스콧 감독, <다이하드>의 존 맥티어난 감독에게도 연출제의가 갔다고 한다. 결국 이들이 모두 고사하면서 <브레이크다운>을 연출했던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이 <터미네이터3>의 감독으로 최종 낙점됐다. 만약 리들리 스콧 감독이나 존 맥티어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터미네이터3>가 탄생할 뻔했다.

결과 썩 좋지 못했던 여성 터미네이터
 
 최초의 여성 터미네이터 T-X를 연기한 크리스타나 로컨은 스타배우로 성장하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 터미네이터 T-X를 연기한 크리스타나 로컨은 스타배우로 성장하지 못했다. ⓒ 시네마서비스

 
초기 기획단계에서 T-X는 남성형으로 설정돼 있었고 재작사에서는 T-1000을 연기했던 호리호리한 체격의 로버트 패트릭과 달리 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도 뒤지지 않는 거구의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었다. 이에 NBA의 '공룡센터' 샤킬 오닐과 WWE 챔피언 출신의 프로레슬러 '더 락' 드웨인 존슨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T-X가 여성형으로 설정이 바뀌면서 이들의 캐스팅은 모두 무산됐다. 거구들의 묵직한 액션을 감상할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제니퍼 로페즈와 팜케 얀센 등 하마평에 올랐던 배우들을 제치고 T-X 역에 최종낙점된 배우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추천을 받은 모델 출신의 배우 크리스타나 로컨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주로 조·단역으로 활동하다가 제작비 2억 달러의 대작 <터미네이터3>에 전격 캐스팅된 로컨은 T-X를 연기하기 위해 근육량을 7kg이나 늘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겉은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새로운 터미네이터 T-X가 탄생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터미네이터3>는 기대 만큼 좋은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로컨 역시 T-X를 연기한 것이 배우로서 도약의 계기가 되지 못했다. 실제로 로컨은 <터미네이터3> 이후 비슷한 이미지의 여전사 캐릭터로 이미지가 소모됐고 그나마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거의 없었다. 결국 로컨은 <터미네이터3>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표작이 <터미네이터3>인 배우로 남아있다.

1996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연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클레어 데인즈는 2003년 <터미네이터3>에서 미래 존 코너의 아내가 되는 캐서린 브루스터 역을 맡았다. <터미네이터3>에서 썩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데인즈는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지만 2011년부터 2020년까지 8시즌에 걸쳐 방송된 드라마 <홈랜드>에서 CIA 공작관 캐리 매티슨을 연기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 아놀드 슈왈제네거 크리스타나 로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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