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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는 자유경쟁에 입각한 시장만능주의다. 18세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담긴 고전적 경제 자유주의를 보내고, 자본의 방임적 자유를 통제하면서 자본과 고용을 확대시킨다는 수정자본주의(일명 케인스주의)를 거친 뒤, 동구권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 속에서 20세기 후반에 힘을 얻어온 시장 경제의 흐름이다. 1970년대 후반에 영국과 미국에서 펼쳤던 자유 시장 정책 이후에 급격히 세계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는 정부의 개입이 경제의 원리를 훼손시킬 수 있으니, 정부는 개인 및 기업의 권리와 사적 재산권을 보호하되 개입은 최소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에크는 자유를 경제 최고의 가치로 꼽았다.

이때 자유는 경쟁이라는 외피를 입는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국가는 시장이 자유롭게 경쟁해 최대한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시장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이 가능한 한 효과적일 수 있도록 조건을 창출하는 일, 경쟁이 효과적이지 못하면 보완해주는 일" 정도이다. 그에게 자유경쟁은 시장중심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동력이자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까지 한국 사회에서도 대단히 익숙한 주장들이다.

'루저'를 양산하는 사회

이런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면서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성과를 생산하도록 충동하는 체제를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한다. 심신이 피곤해져도 피곤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 모든 경제 행위를 자유의 이름으로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자유경쟁의 원리로 넘쳐나며, 자본의 힘으로 돌아가는 시장은 성과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인간을 찬양한다. 바빠서 피곤할수록 능력자로 평가받는다.

이런 자유경쟁에는 자의든 타의든 낙오자가 있게 마련이다. 자유의 이름으로 기존의 차별적이고 위계적 구조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서로를 내몰면서 자유가 만들어놓은 경쟁적 성과 문화가 폭력으로 작동한다. 자유가 폭력을 구조화시키는 동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는 나름 긍정적인 의도로 시작한 신자유주의가 인간을 구속하는 언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대통령의 자유와 평화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2.9.21
▲ 유엔총회에서 "자유"와 "연대"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2.9.21
ⓒ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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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유난히 '자유'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난 2022년 5월 취임사에서는 '자유'라는 말을 35번, 8.15경축사에서는 33번, 9월 유엔연설에서는 21번이나 했다. 자유가 위협받고 있으니 자유의 이름으로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때의 자유란 무엇인가. 누구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고 있으며 연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말일까. 9월 유엔연설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자유론은 원론적으로는 무난했다.

"진정한 자유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자아를 인간답게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고, 평화는 인류 공동 번영의 발목을 잡는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인류가 공동으로 더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입니다." '

자아를 인간답게 실현할 수 있을 때 평화의 토대가 갖추어진다'는 의미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견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좀 더 보면, 어떤 이의 자아가 어떻게 실현된다는 것인지, 정말 온 인류가 그런 기회를 공평하게 갖는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평화가 인류 공동 번영의 토대를 갖추는 '계기'인지, 아니면 공동 번영의 '과정'과 '상태'인지도 불분명하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평화는 일체의 폭력을 줄여가는 과정 혹은 실제로 폭력이 없어진 상태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유엔연설문은 '평화가 인류 번영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라는 애매한 말로 끝내고 만다. 평화는 인류 공동 번영의 과정이자 상태이고 결과이자 목적이지만, 연설문에서는 평화를 번영의 원인인 것처럼만 말한다. 뭔가 논리와 범주가 맞지 않는다. 윤대통령은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앞선 문장에서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말을 서너 번 이상 사용했을 때 그의 자유와 평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위협인지 예측은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분명하지는 않았다.

아직도 진영논리인가

그러다가 연설문 말미에 윤 대통령은 유엔의 의미를 추켜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유엔이 창립된 직후 세계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의미 있는 미션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유엔군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라는 것이 진영논리에 입각한 대단히 이념적인 발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자유경쟁에 입각한 경제 규모의 확장을 자유의 목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 자유가 차별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공고하게 만들어서 인간을 다시 속박으로 몰아넣고, 특히 온갖 '루저들'을 양산할 수 있는 모순적 계기가 된다는 사실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인류 공동 번영의 발목을 잡는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인류가 더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라는 앞선 말을 뒤집는 모순적인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윤대통령에게 자유와 평화는 정말 인류 공동의 것인가. 아니면 의식적으로 누군가 어떤 세력은 배제하는 차별적인 것인가.

냉전과 대립의 언어를 넘어서야

현재 전 세계 193개국이 유엔 회원국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정치적 이념, 권력의 의도와 상관없이 유엔에 가입해 있다. 그런 유엔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유엔군을 파견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것"을 "유엔 창립 이후 첫 번째의 미션이었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한국전의 당사자였던 북한과 한국전에 참전한 중국 등 이른바 사회주의국가와 사실상 노골적으로 대립하는 언어를 써야 했을까.

유엔은 대한민국만 합법적인 정부로 여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유엔 성립 초기에 미국적 질서에 따라 그렇게 했던 역사도 있고,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이름으로 연합군을 파병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유엔은 원칙적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것이다. 유엔의 논리 안에서 한국과 북한은 대등한 한 표를 지닌 별개의 나라이다.

이런 유엔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80여년 전 언어를 구사했어야 했을까. 윤 대통령이 자유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급기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운운하는 옛말을 꺼냈을 때, 그의 자유가 인류와 한반도의 특정 세력에게만 유리한 자기중심적 자유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찬수님은 인권연대 회원이십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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