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1 11:19최종 업데이트 22.10.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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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위 현장에 내걸린 "조선인 위안부의 터무니없는 거짓말, 일본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현수막. ⓒ 인종차별철폐NGO네트워크


일본의 혐한 시위에서는 '위안부는 사기다'라는 구호가 등장한다. 일본 인종차별철폐NGO네트워크가 2014년 6월 2일 작성한 '헤이트 스피치에 관한 NGO 리포트'에는 시위 현장에 내걸린 "조선인 위안부의 터무니없는 거짓말(大嘘), 일본인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현수막이 등장한다. 오우소(大嘘)는 '터무니없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로 번역되지만, '사기'로 번역돼도 무방하다.

동일한 구호가 한국에서도 나온다. 베를린 소녀상을 철거하러 독일에 갔다 온 위안부사기청산연대 등도 '위안부는 사기다'라고 한국 땅에서 외치고 있다.


'위안부는 사기다'라고 외치는 이들의 운동 방식에는 결정적 문제점들이 담겨 있다. 그중 하나는 이들이 사안의 본질에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본질을 흐리게 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헌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대표가 YTN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를 상대로 벌이는 논쟁에서도 그런 양상이 나타난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과 함께 베를린에 가서 소녀상 철거운동을 벌인 그는 위안부 피해의 범주를 축소시키는 방법으로 위안부 피해자의 숫자를 0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가 애당초 없었음을 입증하지 못하고 위안부 피해의 개념을 극도로 한정하는 방식을 통해 피해자 숫자를 0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지난 8일자 <펜앤드마이크>에 실린 '위안부 관련 보도해놓고 제대로 해명 못하는 YTN, 김병헌 소장에게 딱 걸렸다'라는 기사는 김병헌 대표가 "지난 4일 언론중재위원회에 YTN의 해당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및 위자료 5000만 원을 청구하는 내용으로 조정을 신청했다"라고 전했다.

김병헌 대표 등은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에 일본군에 납치돼 강간 또는 살해당한 여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0명이라는 이 주장에 대해 9월 14일자 YTN 보도 "[팩트와이] 일본군에 살해당한 위안부 피해자 1명도 없다'는 "사망한 위안부 피해자는 아예 등록 대상이 아닙니다"라며 "살해당한 위안부 피해자가 정부 지원을 받을 가능성 자체가 없다"라고 말했다. 일본군에 살해된 위안부가 240명 중에 한 명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을 한 것이다. 이 보도에 대해 김병헌 대표가 정정보도 및 위자료 청구를 제기한 것이다.

<팬앤드마이크>는 "김 대표는 YTN의 해당 보도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공식 웹사이트상에 게재한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를 대상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들어 형사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김병헌 대표가 YTN 및 서울대 연구소를 상대로 벌이는 논쟁을 살펴보면 반(反)위안부 운동가들이 구사하는 접근법이  드러난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고 이를 흐리려 하는 그들의 접근법을 읽을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쟁범죄 피해자가 아니라는 김병헌 대표의 논리는 흥미롭다. 2020년 5월 18일자 <미디어워치> 기사 "김병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거짓말부터 바로잡아야'"에서도 그 논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사에 따르면, 김병헌은 이 매체의 변희재 대표고문이 그 이틀 전에 개최한 '이용수 거짓 증언과 윤미향 위안부팔이'라는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회견에서 김병헌은 "점령군이 점령지의 여인들을 납치하고 강간하고 살해하는 게 바로 전쟁범죄"라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1993년 고노담화
 

1993년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관방장관이 2013년 12월 16일 와세다대 한국학연구소 개설기념 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고노 전 장관은 "한일관계를 잘 풀어가지 못하면 경제적 손실이 있고 한일관계가 안보에 중요하다는 시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라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1993년 고노담화다.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이 담화는 위안부 피해의 범주에 관한 일본 정부의 견해를 보여준다.

고노담화는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것이었다"라고 인정했다. 그런 뒤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라고 표명했다.

일본군이 직접 연행하지 않았더라도 여성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위안부를 모집한 뒤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생활'을 강요함으로써 여성의 명예와 존엄을 해친 것이 일본 정부가 인정한 위안부 피해의 개념이다. 김병헌 대표는 위안부 피해의 범주를 일본 정부가 인정한 범위보다 훨씬 축소시킨다. '납치당한 뒤 강간이나 살해를 당했어야 전쟁범죄다'라며 그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군대가 위안부를 강제연행한 목적은 '강제적인 상황 하의 참혹한 생활'을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여성들을 살해하는 것은 그들의 의도가 아니었고, 그들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김 소장은 '강간당했거나 살해당했어야 한다'를 위안부 전쟁범죄의 요건에 포함시키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위안부 피해의 요건을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지금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런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 피해자들은 단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작년 12월 1일 서울 종로구 소녀상 앞에서 발표한 '가짜 위안부 이용수를 처벌하라'는 성명에서 김병헌은 "20만 명이나 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어디로 가고 여가부에 등록된 인원은 고작 240명뿐이다"라고 한 뒤 "그 240명조차도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항(1호의 오기)에 부합하는 피해자는 1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식 명칭이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인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제1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한다. 이런 의미의 위안부 피해자는 단 1명도 없으며, 지금 벌어지는 위안부 운동은 사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고 박위남 할머니 같은 사람도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제1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제대로 심의도 하지 않은 채 가짜 피해자들을 양산해 왔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 흐리려는 시도
 

지난 5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542회 수요시위가 열리는 동안 보수단체 회원들이 스피커의 소리를 높여 방해하고 있다. ⓒ 이희훈


그는 지난 9월 29일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명의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일본군에게 납치되어 강간 또는 살해당한 위안부를 제시하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얼마나 형편 없는 심의였는지는 2014년에 등록한 박위남의 경우가 이를 잘 대변해준다"라며 "박위남에 대해서는 구체적 피해 상황을 알 수 없었는데도, 손녀가 '병원에서 들은 할머니의 잠꼬대 중 위안부 피해자임을 암시하는 단어가 있다'고 말했더니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시켜줬다고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위남의 별세 소식을 전한 2015년 2월 2일자 <한겨레> '위안부 피해 박위남 할머니 별세'는 "박 할머니는 별세 여섯 달 전인 지난해 8월 8일 전문기관의 조사를 거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됐다"라고 보도했다. 세상을 떠나기 6개월 전에 사실조사를 통한 피해자 등록이 있었다는 보도다. 

위안부 피해의 범주를 축소하려는 김병헌 대표의 시도는 영장주의 운운에서도 나타난다. 위의 '가짜 위안부 이용수를 처벌하라'는 성명에서 그는 일본군이 강제연행을 하려면 영장 같은 게 있어야 했다면서 전쟁하느라 바쁜 일본군이 그런 절차까지 밟으면서 여성들을 연행했겠느냐고 주장했다.

성명에서 그는 "일본군은 국가공무원으로서 그들의 행위는 공무이기 때문에 반드시 관련 법령에 따라 실행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는 반드시 소집영장이나 출두명령서와 같은 문서를 교부하여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출두할 것을 명령"한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런데 어떻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전 지역에서 전쟁하던 군인이 전쟁을 하다 말고 조선 땅에 와서 골골이 쫓아다니며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 위안소로 갔다는 말인가?"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해외에 있던 일본군이 소집영장을 들고 와서 끌고 갔어야 위안부 강제연행으로 볼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그런 뒤 최종적으로 '강간 혹은 살해'까지 했어야 전쟁범죄가 된다는 게 그의 발상이다.

그의 발상에 따르면, 이용수 할머니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를 대표해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시인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도 거짓말쟁이가 된다. 고노 장관은 소집영장도 없이 이뤄진 위안부 강제연행을 일본 정부의 행위로 인정한 '사기꾼'이 된다. 고노 장관과 당시의 자민당 내각도 위안부 사기에 가담했다는 말이 된다.

위안부 피해가 거짓임을 입증하려면 고노담화에서 인정된 '일본군과 관헌이 개입된 강제연행'과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생활'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강제연행과 성노예 부분이 거짓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증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소집영장이 제시됐어야 한다''느니 '점령지 여인들을 납치하고 강간하거나 살해했어야' 한다느니 하며 피해자의 범위를 극도로 축소시켜 피해자 숫자를 0명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일 뿐 아니라 사안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룰 자료가 없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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