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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10개월에서 11개월로 넘어가던 여름, 내게도 육아우울증이 찾아왔다.

(나에게'도'라고 쓰는 것은, 이것이 나만이 겪는 특수한 증상이 아니라 흔한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별나고 신경질적인 완벽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노력하는 엄마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라고 자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외로워지기도 하니까.)

그만둔 이전 직장에서 얻은 직장우울증은 긴 꼬리를 남겼고, 나는 임신 사실을 알기 직전까지도 저용량의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유지 용량 수준이라서 주치의 선생님은 임신 사실을 알고 끊어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고,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하자마자 복용을 중단했다.

입덧과 우울증에 시달린 임신 초기
 
아기 신발.
 아기 신발.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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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실로 임신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임신의 상징처럼 알고 있는 입덧이 임신 초기에 집중된다는 것, 사람마다 정도 차가 커서 아예 겪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물조차 못 마실 정도로 심하게 겪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엄청나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임신을 했으니까.

나는 후자에 가까운 임산부였고 임신 초기 석 달 간 거의 먹지 못하고 누워 지냈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아 한 알에 1500원 안팎인 입덧약을 하루 최대 용량인 4알씩 먹었고 그러면 그나마 덜 토했다.

뿐만 아니라, 임신 초기에는 각종 호르몬이 요동쳐 그야말로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 이유 없이 계속 우울하고,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불안하고, 절망적이고, 심지어는 죽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구에 의하면 임산부 사망 원인의 10%가 자살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숭고하고 참혹했다. 괴로웠다.

어쨌거나 살아 있으면 살아지고 시간은 흐르는 법. 죽을 기운이 없어 죽지도 못하고, 먹을 수 있는 약도 없이 '쌩으로' 버텨내야만 했던 지옥 같은 2~3개월이 지나자 좀 살만한 시기가 왔다. 임신 15주가 지나자 그래도 집밖에 나갈 수 있었고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제대로 된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자주 숨이 차고, 관절이 아프고, 튼살과 각종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방광이 짓눌려 화장실에 자주 가고, 변비가 오고... 임신의 흔한 증상들을 나도 물론 겪었지만 그건 초기의 '개고생'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로소 먹고 싶은 것도 좀 먹고, 임산부 요가도 다니면서 활기찬 임신 중후기를 보냈고 건강한 남자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우울증 병력이 있고, 임신 초기에 극심한 우울증을 경험했기 때문에 산후 우울증도 걱정이었다. 산후의 우울감 내지 우울증은 정도 차가 있지만 대부분의 산모가 겪는 것이기 때문에, 증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심했다.

다행히 아기는 순한 편이었고,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른 남편은 시간이 많았다.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 베테랑 산후도우미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산후 회복에 집중하며 무사히 그 시기를 넘겼다.
 
신생아의 모습.
 신생아의 모습.
ⓒ Christian Bowe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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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아이가 백일쯤 되고, 육아가 어느 정도 손에 익자 이게 은근히 재미있었다. 울면 젖을 주면 되고, 졸리다고 칭얼대면 흔들어서 재워주면 되고, 딸꾹질을 하면 모자를 씌워주거나 기저귀를 확인해보고, 어느 정도 명확한 솔루션이 있는 단순한 과정이 재미있었다.

아이가 몇 시간씩 잠을 못 자고 울던 시기는 힘겨웠지만, 유튜브와 육아책을 뒤져 수면교육을 하니 효과가 있었다. 이앓이를 하는지 자주 깨고 짜증을 내면 육아 단톡방에서 추천받은 물약을 먹였다. 이유식을 거부할 때는 고체 음식을 스스로 쥐고 먹는 아기주도 이유식을 도입해서 해결했다.

아기의 문제에는 대부분 솔루션이 있었다. 육아책을 탐독하거나 인터넷을 뒤지거나 단톡방 엄마들에게 지혜를 구해 하나하나 적용해 나가다 보면 뭐 하나라도 맞아 떨어지는 해결 방법이 있었다. 육아란 매일매일 반복이고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영역일 거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성취감도 있었다.

육아는 뒤늦게 찾은 내 적성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주변 엄마들 중 가장 오래 모유 수유를 했으며, 분유는 성분을 꼼꼼히 공부해서 비싼 돈을 주고 해외에서 공수했다. 소셜미디어라고는 하지도 않던 내가 아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매일 사진을 올렸다. 다양한 자극을 주려 꼬박꼬박 문화센터에 데려갔고 아기 친구들도 만나게끔 해줬다.

이 모든 노력은 어쩌면 내 어린 시절의 결핍에 대한 보상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행복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고 난 늘 외로웠고 두려웠다. 내 아이는 이런 쓸쓸함을 몰랐으면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모자람이 없이, 넘치게 사랑하고 충분히 보살펴주고 싶었다.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직접 쿠키를 만들어주고, 내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엄마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목걸이에 걸린 열쇠로 혼자 집 문을 따고 들어가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컴퓨터 게임을 하는 아이였다.

아이에게 분유쿠키를 만들어주며 나는 그 시절의 어린 나로 돌아가 대리만족했다. 내게는 그런 엄마가 없었지만, 내가 그런 엄마가 되면 되지.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육아우울증, #육아일기, #임신, #우울증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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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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