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인(자료사진).
 노인(자료사진).
ⓒ pexels

관련사진보기

 
이번 연재에서는 어르신이 경험하는 네 가지 고통, 즉 빈곤, 무위, 고독, 질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고독, 즉 어르신들의 외로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독, 외로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외로움은 슬픈 느낌이 드는데, 고독은 중립적인 느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고독을 즐긴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외로움을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립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부정적인 표현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은 어떤가요? 요즘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하고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혼밥, 혼술 등도 그런 태도가 바깥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의 특정 시간이나 인생의 어느 기간을 혼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라는 선언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하는 거야, 혼자서는 살 수 없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듣게 됩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이런 말들을 툭 내뱉곤 하지만,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로움은 어르신들에게 더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경험하는 외로움의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평생 헌신해 온 일자리에서 은퇴한 어르신은 그 순간 상당히 많은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사람들과 당분간 어울려 지내겠지만, 젊은 후배들은 대부분 연락을 하지 않겠죠? 전업주부로 살아온 분들은 다른 경험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녀 양육으로부터 해방된 분들끼리 더 자유롭고 즐거운 노후생활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부모님이 생존해 계셨다면 조만간 부모를 잃는 슬픔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70세를 넘기면서 친구의 장례식에 찾아가는 일이 잦아질 것입니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이 짙어집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친밀했던' 배우자를 떠나보내게 되면 극심한 외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친밀했던'을 강조하는 이유는 배우자와 그런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던 분들은 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외로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자원은 자녀와 손자녀, 여전히 생존해 있는 친구들, 그리고 새롭게 사귀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녀와 손자녀는 이전에 '괜찮은' 관계가 유지되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녀의 자녀인 손자녀를 돌보는 역할만을 수행하면서 외로움을 극복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혹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가 자신을 그저 자녀 양육의 수단으로만 본다 하더라도, 손자녀를 돌보는 것이 노화를 촉진시키더라도, 어쨌든 그것은 외로운 시간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자녀가 퇴근 후에 손자녀를 데려간 이후에도 외로운 시간을 없앨 수 있습니다. TV는 언제든 켤 수 있고, 유튜브는 온갖 정보로 가득하니까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아 보입니다. 관계망의 단절과 부모와 친구의 죽음, 배우자와 사별은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과업이니까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삶의 여러 조건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변수들 

첫째, 배우자의 중증질환이나 너무 이른 죽음입니다. 둘째, 자녀 세대와 단절입니다. 셋째, 본인의 몸과 마음의 질병입니다. 넷째, 열악한 자산 수준입니다. 다섯째, '할 일 없음'입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노인의 네 가지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배우자가 없으면, 자녀가 찾아오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하면, 가난함이 '비루함'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릴 경제적 여유가 없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사라지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나쁜 일들은 대개 한꺼번에 몰려오기 마련입니다. 그 시기는 대체로 74세부터일 것입니다. 통상 세대들의 연결고리를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30년을 한 세대로 생각하면 74세인 어르신에게는 40대 초중반의 자녀와 열 살 안팎의 손자녀가 있습니다. 65세부터 73세까지는 재산과 소득도 있고, 일거리도 있으며, 건강 상태도 나쁘지 않고, 자녀들도 자주 집에 찾아오며, 미취학 연령인 손자녀를 돌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외로울 틈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74세가 되면 자산 가치와 규모도 줄고, 일자리와 근로 능력도 사라지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거동 자체가 불편해집니다. 40대가 된 자녀는 제 앞가림하기도 바쁘며, 10대 손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악조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점점 악화되면, 어르신들은 고독을 넘어 '고독사'에 이르게 됩니다. 배우자는 사별하고 자녀와 손자녀는 명절에나 찾아오며, 친구들은 이미 절반이 세상을 떠났고 이웃과는 소원하며, 몸은 고달프고 마음은 어두우며, 단칸방에서 혼자, 나라에서 주는 돈과 복지관에서 갖다 주는 반찬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있을 때, 어느 날 자신에게도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하나하나의 악조건들이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고독사는 인간이 겪게 되는 가장 극단적인 외로움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즐길 수도 있고, 일반화된 현상이 되면 그럭저럭 견뎌낼 수도 있겠으나, 고독사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통계포털 자료(2021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노인은 900만명이며, 독거노인은 180만명 정도입니다. 전체 가구 2,145만 가구의 8.5%인 182만 가구가 65세 이상 1인 가구이며, 노인 중 20%가 혼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2020년 가족실태조사 결과에서 1인 가구가 혼자 사는 이유 중 30%가 사별이었습니다. 미혼이나 이혼 등의 다른 사유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해 혼자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에 발생한 고독사(무연고 사망)는 3600여명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50% 정도였습니다. 40대와 50대 중장년의 고독사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놀랍지만, 여전히 주류를 이루는 것은 독거노인의 고독사입니다.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21년 4월부터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였고, 올해 2022년 8월부터 전국 9개 시도에서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8월부터 첫걸음' 참고).

그 내용을 보면 전국 공통사업으로 <고독사 위험자 발굴>을 실시하고, 정보통신기술과 인적자원망을 활용하고 연계하는 <안부확인 중심형>, 경제적 지원, 민간서비스 연계, 일자리, 돌봄, 주거지원을 통합하는 <생활지원 중심형>, 기관연계와 사회적 관계망 형성, 심리 지원 등 <심리·정신지원 중심형>, 유품정리와 법률지원 등 <사전사후관리 중심형> 중에서 지역사회의 특성과 여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밖에도 정부에서는 이미 U-care라는 이름의 독거노인응급안전돌보미 시스템을 구축해왔고, 독거노인 공동생활가정도 지자체별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거의' 완벽한 고독사 예방 대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매년 30여만 명의 사망자 중에서 3천 명이라면 1% 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인데도 법률을 따로 제정하고,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보니 국가로서 할 일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다른 사회문제들과 그에 대처한 제도들의 양상을 지켜본 입장에서 '이것으로 충분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운 죽음이 없도록
 외로운 죽음이 없도록
ⓒ 권지성

관련사진보기

 
어르신의 고독사를 해결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혼자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거나 혼자 살더라도 수시로 사람을 만나도록 하면 됩니다.

전자의 방법에는 노인생활시설,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공동주택 등이 이미 있지만 여건이 아직 부족합니다. 게다가 어르신들 중에는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고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살아온 생활공간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분도 많고, 공동주거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노인종합복지관 등 사회복지기관에서는 방문과 말벗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연배나 조금 어린 어르신, 주부, 대학생 등이 주기적으로 독거노인을 방문해서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이죠. 물론 거동이 가능하고 건강한 편이라면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에 가서 다른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며 외로운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한다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근린지역사회 내에서 10명 이내의 독거노인들을 매일 순회방문하면서 상태를 확인하고 말벗으로서 대화를 나누며 필요한 자원과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파악하는 방문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꺼리거나 거절하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저어하실 수 있죠. 이런 분들을 위해 일각에선 'AI 로봇 효돌' 사업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AI로 작동되는 로봇 인형이 24시간 내내 어르신의 말벗과 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어르신에게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외부기관에 응급서비스를 요청하는 기능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 로봇과 동거하고 있는 독거노인들의 경험을 탐색한 송문선(2022)의 연구에 의하면, 어르신들은 처음에 집에 온 로봇 인형을 낯설어하고 어색해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의인화, 즉 사람처럼 느끼고 대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손자녀 같고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어르신도 있었습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그럴 수 있겠다 싶고 일부 어르신들에게는 꼭 필요한 서비스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서글픔이 느껴집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꾸 기계가 하도록 맡겨두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지켜보면서 가끔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사회가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대세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라고 단념하고 수용할 것인가, '이 방향은 우리의 삶과 행복에 결국 유익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것인가 하는 고민입니다. 그리고 많은 순간에 '내가 꼰대라서 그런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합니다.

또 언론을 통해 보이는 그 사회 현상들이 실제로도 그러한가에 대한 의문도 생깁니다. MZ세대는 정말 직장에서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보일까요? 부장님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갈까요? 실제로는 남녀마다 다르고, M세대와 Z세대도 다르고, 직군에 따라 다르고, 이념과 가치에 따라 다르고, 성격유형에 따라서도 다르지 않을까요? 평균적으로 개인주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 세대는 다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독거노인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입니다.

외로움을 싫어하는 어르신에게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즐거워할 기회를, 외로움을 즐기는 어르신에게는 안전하게 고독감을 누릴 수 있고 언제든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르신이든 임종을 지켜보며 '그동안 잘 살아왔어요. 수고했어요. 평안히 가세요'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둘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독거노인, #고독사, #외로움, #효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