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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국내 공립미술관 최초로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 올해로 개관 30주년이다
 1992년 국내 공립미술관 최초로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 올해로 개관 30주년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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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지도 춥지도 않아 활동하기 딱 좋은 계절. 귀밑머리에 살랑거리는 선선한 가을바람 따라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 가는 시월이다. 첫 주부터 시작된 3일간의 황금연휴는 한글날 연휴로 이어지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월만 같아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10월은 일 년 중 문화행사가 가장 많은 달이다. 남도 지방도 각 지역별로 다양한 공연과 축제가 한창이다. 모두들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는 떠들썩한 행사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동안 갇혔던 욕망들이 한꺼번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니 오죽하겠는가.

이런 가운데 광주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구며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형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광주 특별전'이 그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중에서 2만 3000여 점을 이 회장 사후에 삼성 일가가 국가에 기증한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10.04~11.27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지방순회 특별전’이 열린다. 순회전의 주제: 사람의 향기, 예술로 남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10.04~11.27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지방순회 특별전’이 열린다. 순회전의 주제: 사람의 향기, 예술로 남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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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술품 국가 기증 사례로 기록됐다. 이중 고미술품 2만 1600점은 국립중앙박물관 및 산하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내외 거장들의 근대미술 작품 1400점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등 각 작가의 연고지 미술관에 기증했다.

기증 1주년을 기념해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는 4개월 동안 관람객 23만여 명이 다녀가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서울과 지방간 문화 향유 격차 해소를 위해 '지역순회전'을 열고 있다. 더 이상 지방 사람들이 KTX 타고 일부러 서울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게 됐다. 더구나 입장료까지 안 받는다니 참 잘한 결정이다.

올해는 문화·예술의 도시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경남에서, 내년에는 대전을 비롯한 7개 지역에서, 2024년에는 제주를 비롯한 3개 지역에서 순회전이 열릴 예정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1) 밤새(1974) 종이에 수묵 채색
 운보 김기창(1913~2001) 밤새(1974) 종이에 수묵 채색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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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전시회 중 맨 처음 열리는 광주 순회전은 4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10.04~11.27)과 국립광주박물관(10.05∼2023.1.29)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천경자 등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 대가들의 미술 작품들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고서화 작품과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도자기와 조각 등은 미술관 인근에 있는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시립미술관은 사전에 예약해야 하고 박물관은 예약 없이 당일 입장 가능하다.

어느 곳을 먼저 가든 상관없다.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될 일이다. 다만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긴 여운을 남겨두고 싶다면 하루에 한 곳씩 두 번에 걸쳐 감상하길 권한다. 이건 순전히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박수근(1914~1965) 세 여인(1961) 패널에 유채
 박수근(1914~1965) 세 여인(1961) 패널에 유채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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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미술 대가들의 작품 한자리에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는 1992년 국내 공립미술관 최초로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이 있다. 1995년 광주 비엔날레 창설의 주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번 전시회는 개관 3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했던 이건희 컬렉션의 지역 순회 특별전 일환으로 준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50점, 대구미술관 7점, 전남도립미술관 6점, 광주시립미술관 30점 등 각 미술관에 기증된 93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45명의 작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관 2층 (3, 4전시실)과 3층(5, 6전시실)으로 나뉘어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계승과 수용', '한국화의 변용, 혁신', '변혁의 시대, 새로운 모색', '추상미술과 다양성의 확장' 등 4개의 섹션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청전 이상범(1897~1972) 화훼절지(1960) 종이에 수묵채색 10폭 병풍
 청전 이상범(1897~1972) 화훼절지(1960) 종이에 수묵채색 10폭 병풍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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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 김은호(1892~1979) 화기(1960년대) 비단에 채색
 이당 김은호(1892~1979) 화기(1960년대) 비단에 채색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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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변관식(1899~1976) 진양성(1957) 종이에 수묵채색 6폭 병풍
 소정 변관식(1899~1976) 진양성(1957) 종이에 수묵채색 6폭 병풍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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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계승과 수용' 섹션에서는 서양화의 도입으로 서양미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 가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변화된 한국 미술계의 상황을 허백련, 김은호, 이상범, 이인성, 오지호 등의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 섹션 '한국화의 변용, 혁신'에서는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보 김기창, 이응노를 중심으로 한국화의 다양한 변화와 혁신을 보여준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채색으로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를 벗어나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천경자의 작품도 전시된다.
 
이응노(1904~1989) 까치(1981) 종이에 먹, 채색
 이응노(1904~1989) 까치(1981) 종이에 먹, 채색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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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1924~2015) 만선(1971) 종이에 채색(석채, 분채, 아교)
 천경자(1924~2015) 만선(1971) 종이에 채색(석채, 분채, 아교)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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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섹션 '변혁의 시대, 새로운 모색'에서는 1940~50년대, 식민지 종결과 한국 전쟁, 분단 등 굴곡진 시대의 아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표현한 이중섭, 박수근 등의 작품과 구상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한 권옥연, 임직순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특히 미술관에서는 너무 작은 크기로 그려진 이중섭의 은지화 작품을 자대를 통해 큰 화면으로 확대해서 볼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람객을 배려했다. '은지화'는 이중섭이 가난했던 피난 시절에 담뱃갑 속 은박지에 철필로 윤곽을 그린 후에 물감을 문질러 선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그림이다.
 
이중섭(1916~1956)의 은지화. 오줌 싸는 아이들
 이중섭(1916~1956)의 은지화. 오줌 싸는 아이들
ⓒ 광주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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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1916~1956) 비둘기(1950년대) 종이에 유채
 이중섭(1916~1956) 비둘기(1950년대) 종이에 유채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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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순(1921~1996) 여인 좌상(1978) 캔버스에 유채
 임직순(1921~1996) 여인 좌상(1978) 캔버스에 유채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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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 '추상미술과 다양성의 확장' 섹션에서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유영국의 작품과 새로운 실험적 미술 작업을 한 곽인식, 전광영, 류경채, 하인두 등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류경채의 <비둘기 치는 소녀들>은 구성회화에서 추상화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모두 자유롭게 촬영이 허용되고 있다. 중간에 포토존을 설정해 놓고 관람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섹션에 있는 우리나라 추상화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촬영이 허락되지 않으니 이점 참고하기 바란다.
 
류경채의(1920~1995) 비둘기 치는 소녀들(1959) 캔버스에 유채
 류경채의(1920~1995) 비둘기 치는 소녀들(1959) 캔버스에 유채
ⓒ 임영열. 전시장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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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한 번에 봤다는 뿌듯함과 함께 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나온다. 긴 여운이 남아 자꾸만 전시장을 뒤돌아보며 '예술로 남은 사람의 향기'를 느낀다. 2004년 삼성 리움 미술관 개관식 때 故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태그:#이건희 컬렉션 광주 순회전, #광주시립미술관, #이건희, #이건희 광주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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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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