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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의 일출. 일출과 함께 금호강 물길걷기 생태조사가 시작됐다.
 금호강의 일출. 일출과 함께 금호강 물길걷기 생태조사가 시작됐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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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금호강을 찾았다. 금호강 물길을 걸으며 이곳엔 과연 어떤 생명이 살고 있는지 생태조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번엔 조금 상류로 길을 잡았다. 금호강 교서부터 안심교 상류까지가 이날 탐사 코스다. 편도 3㎞, 왕복 6㎞로 걷기엔 짧지 않은 구간이다. 2017년 대구환경운동연합으로부터 '반야월습지'로 명명된 구간이다.  

이곳 또한 아름다운 습지가 잘 발달돼 있다. 소와 여울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가천잠수교 일대 여울은 폭도 넓고 길어서 생물 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곳이다. 그 위로는 버드나무군락이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금호강 반야월습지
 
버드나무와 초지가 조화를 이룬 하천 숲. 이곳에서도 새들과 삵과 고라니 같은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간다.
 버드나무와 초지가 조화를 이룬 하천 숲. 이곳에서도 새들과 삵과 고라니 같은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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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심은 것도 아닌데 저절로 왕버들과 버느나무, 수양버들 등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라 가운데 있는 넓은 초지와 더불어 이색적이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유년 시절 금호강에서 바라봤던 강의 모습의 일단을 그곳에서 다시 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강 가운데 버드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은 치수(治水)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하진 않다. 영천댐이 생기고 유량이 줄어들면서 하천 스스로가 선택한 생존의 전략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생명을 불러 모으고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모래와 자갈의 강 금호강이 거대한 습지 형태의 금호강으로 바뀐 이유다.

습지의 발달과 더불어 금호강엔 다양한 생명이 터를 잡아 살고 있다. 수달과 삵, 원앙과 흰목물떼새, 고니와 남생이 그리고 최근 발견된 얼룩새코미꾸리까지 여러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이 금호강에 깃들어 살고 있다. 금호강은 그들의 귀한 집이다.
       
사천잠수교 아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왜가리 한 마리가 묵언수행자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다.
 사천잠수교 아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왜가리 한 마리가 묵언수행자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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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그들의 집을 방문한다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강을 걸었다. 동이 틀 무렵 강에 들었다. 막 해가 떠올랐다. 햇살이 강을 비추자 물안개 자욱이 피어오르는 강은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저 멀리 왜가리 한 마리는 묵언수행을 하는지, 잠을 자는지 미동조차 없이 서있다. 그 풍경이 아름답다. 강과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가슴장화를 입었지만 물길이 제법 깊은 곳도 있었다. 물길을 잘 더듬어 걸었다. 조심조심 걸음을 걷는데 저 위에서 물질 소리가 들렸다. 잉어가 꼬리를 치는 소리인가 했더니 둥근 머리가 쑥 올라온다. 수달이었다. 수달은 물고기를 잡는지 물속을 이리저리 빠르게 유영하고 있었다.

금호강에 깃들어 사는 금호강의 참 주인들
      
금호강에서 세번째 마추친 수달. 녀석은 고개를 내밀어 낯선 이방인을 살피는 수달. 그러고는 이내 사라졌다.
 금호강에서 세번째 마추친 수달. 녀석은 고개를 내밀어 낯선 이방인을 살피는 수달. 그러고는 이내 사라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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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방인이 서 있는 줄도 모른 채 열심히 물질을 한다. 수달은 분명 포유류인데 어떻게 저렇게 물에서 자유롭게 수영을 잘 할 수 있을까? 물고기처럼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부여받았을까.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점점 다가온 녀석은 그제야 낯선 이방인을 알아차리고는 쑥 들어가더니 나오질 않았다. 제법 자란 수달인지라 이미 인간을 봤을 것이고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녀석이 사라진 곳을 지나치며 상류로 걸음을 옮겼다.
            
수달과 헤어지자 오리떼가 튀어나왔다. 아침햇살을 받은 녀석들은 특유의 색채를 과시하면서 조용히 밝아오는 아침을 맞고 있었다. 회색빛 흰뺨검둥오리와 청록색 청둥오리, 백색의 백로가 조화롭게 자리를 잡고 섰다. 그 모습 또한 아름답다.
 
흰빰검둥오리와 청둥오리 무리와 백로가 사이좋게 조화롭게 아침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다.
 흰빰검둥오리와 청둥오리 무리와 백로가 사이좋게 조화롭게 아침햇살을 받으며 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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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가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가 평화롭게 유영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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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방인이 걸어가자 녀석들이 날아가 버린다. 잘 쉬고 있는 녀석들을 쫓아낸 것 같아 미안해진다. 고라니와 수달, 오리들처럼 종이 다른 야생의 친구들은 서로 잘 어울려 지내는데 왜 같은 동물인 인간은 받아주지 않는 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자주 봤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서로를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도 더욱 야생과 자주 만나고 친해지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새와 다양한 수중 생명의 신비

여울목을 벗어나자 깊은 소가 나오고 소를 피해 걷자 다시 여울이 나온다. 여울 자갈돌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흰목물떼새가 휙 날아오르면서 날아간다. 물길 옆으로는 하천 숲이다. 그 작은 숲에 들었다. 새들 소리가 들린다. 삑삑 소리를 내며 다양한 새들이 경계인지 환영인지 모를 소리를 들려준다.
             
금호강에서 만난 새들. 좌측 왼쪽부터 직박구리, 깝짝도요, 오목눈이, 검은딱새, 딱새, 금은등할미새
 금호강에서 만난 새들. 좌측 왼쪽부터 직박구리, 깝짝도요, 오목눈이, 검은딱새, 딱새, 금은등할미새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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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난 새들이 깜짝도요와 할미새, 직박구리, 오목눈이, 검은딱새, 딱새, 물닭, 민물가마우지, 물총새 등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녀석들도 있다. 이처럼 강에는 다양한 새가 살아간다. 녀석들이 내지르는 소리와 물살이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면서 말이다.

물길을 걸으며 강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명을 만났다. 다양한 물고기를 말이다. 흔하게 보이는 녀석들이 피라미와 누치, 베스와 블루길이다. 가끔 동사리와 붕어도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얼룩새코미꾸리 같은 녀석도 있다. 
        
금호강에는 정말 많은 조개들이 살고 있다. 저서생물들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이는 강바닥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금호강에는 정말 많은 조개들이 살고 있다. 저서생물들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이는 강바닥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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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와 더불어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조개들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대칭이와 말조개도 많이 살고 있다. 다슬기도 물론 많이 있다. 이것은 강바닥 생태계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조개가 살게 되면 납자루과 물고기들도 함께 살 수 있다. 이들은 조개가 입을 벌리면 그 안에다 알을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개가 사라지면 납자루들도 사라진다. 이렇듯 생명을 서로 연결돼 있다. 그 생명의 고리들을 따라갈 것 같으면 그 끝은 인간이다. 이들이 부재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청소년 고라니가 들려준 말

다시 물길을 벗어나 하천 숲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웅덩이가 있어서 그 안에서도 물고기와 조개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뒤로하고 초지를 한참 걷는 데 저 앞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잠시 기다리자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놀랍게도 고라니였다. 아직 다 크지 않은 말하자면 청소년 고라니쯤 되어 보였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낯선 이방인을 뚫어져라 처다보는 청소년 고리니. 잠시지만 녀석과 한 공간에서 서 있을 수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운 채 낯선 이방인을 뚫어져라 처다보는 청소년 고리니. 잠시지만 녀석과 한 공간에서 서 있을 수 있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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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심 없이 걷다가 녀석이 낯선 이방인을 봤다. 그 이방인이 카메라를 든 채 미동도 않고 서 있으니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경계심을 풀고는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낯선 이방인을 살핀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내 냅다 뛰어 달아난다. 녀석의 인내심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고, 그 시간까지만 낯선 이방인을 친구로 대해주었다. 고마웠다. 인간을 보는 순간 냅다 도망가기 마련인데, 5분 동안을 한 공간에 함께했으니 말이다.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이 땅엔 평화가 가득할 것만 같다.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이 땅엔 평화가 가득할 것만 같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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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를 보내주면서 아까 스스로 던졌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이들과 얼마나 자주 만나야 인간도 그들과 동화될 수 있을까? 인간이 그들에게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심리적 마지노선의 길이를 우리는 어떻게 더 확보할 수 있을까?

유럽에는 새들이 인간과의 거리를 허용하는 길이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짧다고 한다. 유럽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도 가급적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으며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야생과의 거리를 조금 더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공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토건 공사를 제발 끝내야 한다. 함부로 자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수중보와 교량 건설이 핵심 사업인 대구시의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과 생태 민감 지역의 생태계를 단절시키는 교량 산책로 건설이 핵심인 금호강 고모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 등 불필요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청소년 고라니와 같은 금호강에서 만난 저 수많은 생명이 한결같이 전하는 소리다.

[관련 기사]
홍준표 시장님, '금호강 생명'의 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http://omn.kr/20u6z
환경부는 아름다운 팔현습지서 왜 이런 일을... "국민 배신" http://omn.kr/219dh
 
버드나무와 강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습지의 모습이다.
 버드나무와 강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습지의 모습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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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 동안 낙동강을 비롯한 우리 강 현장을 다니면서 각종 개발사업으로부터 우리 강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금호강 르네상스, #홍준표, #환경부, #낙동강유역환경청, #멸종위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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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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