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대로 즐기려면 때를 잘 맞춰야 한다. 탐방안내소에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 어사길 단풍 제대로 즐기려면 때를 잘 맞춰야 한다. 탐방안내소에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덕유산의 사계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두 해가 지났다. 가을 이야기는 향적봉대피소에서 보낸 하룻밤 내용을 쓰려고 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뒤 대피소는 문을 닫았다. 가을 이야기가 한없이 미뤄졌다.

오랫동안 벼르던 곳을 찾았다. 지난 23일, 대피소에서 하룻밤 머무르는 대신, 아침 일찍 구천동 삼공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어사길을 걸어 백련사에 갔다. 그리고 중봉을 거쳐 향적봉에 올랐다.

어사길

월하탄을 지나 어사길에 들어섰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계곡길'이다. 지금은 덕유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서 백련사까지 4.9km 길이 모두 완성되었다. 나무데크와 야자매트로 잘 정리되어 있다. 안내문도 곳곳에 설치되어서 구천동 33경 가운데 16경 인월담부터 32경 백련사까지 빠뜨리지 않고 볼 수 있다.
 
구천동 제16경이다. 달이 물 위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뚜렷하게 보인다는 곳이다. 일사대, 파회 함께 구천동 3대 명소 가운데 하나다.
▲ 인월담 구천동 제16경이다. 달이 물 위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뚜렷하게 보인다는 곳이다. 일사대, 파회 함께 구천동 3대 명소 가운데 하나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구천동 제20경이다. 선인들이 차를 마셨다는 곳이다.
▲ 다연대 구천동 제20경이다. 선인들이 차를 마셨다는 곳이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구천동 제21경이다. 구천동 골짜기와 월음령 골짜기가 만난다. 사진작가들이 머무르며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 구월담 구천동 제21경이다. 구천동 골짜기와 월음령 골짜기가 만난다. 사진작가들이 머무르며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처음 쉴 만한 곳이 인월담이다. 바위가 널찍하게 펼쳐지고, 맑은 물이 소리내며 바위를 타고 떨어진다. 바위에 앉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돗자리를 펼치면 바로 방송이 나온다. 탐방센터에서 CCTV로 지켜보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므로 물놀이 금지다.

인월담에서 구월담까지 이르는 800m 길이 어사길 가운데 가장 멋진 구간이다. 물소리가 시원스럽고, 바위가 멋스럽게 놓여 있다. 그 위에 노랗고 빨간 단풍이 내려앉았다. 데크길에 떨어진 낙엽 밟는 소리와 물소리가 잘 어울린다.
 
구천동 제27경이다. 마음조차 비칠 만큼 물이 맑아서 붙은 이름이다. 물빛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명경담 구천동 제27경이다. 마음조차 비칠 만큼 물이 맑아서 붙은 이름이다. 물빛이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구천동 제28경이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던 곳이다.
▲ 구천폭포 구천동 제28경이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던 곳이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안심대는 예전에 구천동과 백련사에 오가는 사람들이 한숨 돌리며 마음 놓고 쉬어가던 곳이다. 김시습 이야기도 전해진다. 김시습이 관군을 피해 떠돌다 안심하고 잠시 쉬어 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안심대를 지나면 골짜기 왼쪽으로 테크길과 매트길이 새로 만들어졌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걷기 어렵지 않다. 명경담에 이르면 물빛이 수채화를 그리려고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구천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은 노랗고 빨간 단풍과 잘 어울린다.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하고, 소나무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이속대를 지나며 속세와 인연을 끊고, 백련사 일주문을 들어서며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

백련사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때 세워진 절이다. 하얀 연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신문왕 때 백련 스님이 세웠다고도 하고, 흥덕왕 때 무염 국사가 세웠다고도 한다.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졌고, 196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승탑이 5기 있다. 이들 중 한가운데 있는 것이 매월당 설흔 스님 승탑이다. 종 모양을 하고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43호다. 돌계단을 오르면 사천왕문이다. 현판은 탄허 스님 작품이다.
 
꽃비 대신 빨간 단풍으로 둘러싸였다. 앞에는 수백 년 된 돌배나무가 있다.
▲ 우화루 꽃비 대신 빨간 단풍으로 둘러싸였다. 앞에는 수백 년 된 돌배나무가 있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우화루(雨花樓)가 이어진다. 부처님이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절 안으로 들어가는 다락과 불경을 학습하는 곳으로 사용한다. 그 앞에 수백 년 된 돌배나무가 있다. 나무줄기 속이 푹 파였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구천동 제31경이다. 대웅전 옆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 백련사 구천동 제31경이다. 대웅전 옆 마당에서 하늘을 보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돌계단을 더 오르면 대웅전이다. 해발 950m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 가운데 하나다. 현판은 한석봉 글씨다. 찾아보니, 한석봉이 쓴 글씨를 보고 그대로 본떠 새겼다고 한다.

대웅전 옆 마당에 서서 하늘을 보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연꽃잎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 절이 들어선 듯하다. 백련사라는 절 이름을 걸맞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백련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중봉으로 갔다.

중봉에서 향적봉까지
 
굴속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이다. 굴이 넓고 포근하다.
▲ 오수자굴 굴속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이다. 굴이 넓고 포근하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오수자굴 가는 길은 좁다. 바윗길을 걷고, 조릿대 숲길을 지나, 줄을 잡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한다. 바람도 없고, 그늘도 없다. 거의 지쳐갈 무렵 큰 바위 밑에 넓게 파인 굴이 나타난다. 오수자굴이다.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러 사람이 들어갈 만큼 널찍하다. 굴속으로 들어가 앉아 앞을 보면 포근한 느낌이 든다.

다시 힘을 내 나무 계단을 오르고 바위를 기어오르면 키 작은 조릿대 숲길이 나온다. 잘 다듬어진 길이다. 바람도 시원하게 분다. 파란 하늘도 보인다. 저절로 힘이 난다. 중봉에 오르면 백암봉까지 이어지는 덕유평전이 눈 앞에 펼쳐진다.

겨울에는 하얀색으로 변한 덕유평전을 걸으며 산행이 주는 맛을 느꼈던 곳이다. 여름에는 덕유평전 위로 솜처럼 피었다가 사라지는 뭉게구름을 보며 즐거워했던 곳이다. 산 아래는 단풍이 울긋불긋 한창인데, 산 위는 갈색으로 뒤덮여 을씨년스럽다.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 향적봉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인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갈색이다.
▲ 향적봉 전망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통 갈색이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중봉에서 향적봉 가는 길은 언제나 좋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맑은 새소리를 들으면서 부지런히 발길을 서두른다. 향적봉 정상석 앞에서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보일 즈음, 그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또랑또랑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상석 뒤에 있는 바위에 서면 사방이 훤히 보인다.

백련사 가는 길은 내내 내리막이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묻는다. 쉬엄쉬엄 가면 정상에 금방 도착할 거라고 알려주며 웃는다. 그들도 웃는다.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백련사에 가까워질수록 단풍이 아름답다. 어사길 못지않다. 내려가는 길이 자꾸만 더디어진다.
 
빨간 단풍보다 노란 단풍이 더 많다.
▲ 어사길 단풍 빨간 단풍보다 노란 단풍이 더 많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어사길은 노란색이다. 은행나무도 없는데, 노란 단풍이 빨간 단풍보다 더 많다. 제대로 즐기려면 때를 잘 맞춰야 한다. 탐방안내소에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덕유산에서는 계절이 바뀐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철마다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겨울 눈꽃, 봄 신록, 여름 들꽃, 그리고 가을 단풍. 덕유산의 사계를 기록에 남겨야 하는 이유다.

태그:#무주구천동, #덕유산, #어사길, #백련사, #향적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