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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유적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 B,C,D구역을 중심으로 여행객들이 주로 찾고 있다.
▲ 미선유적의 전경 미선유적은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여기 B,C,D구역을 중심으로 여행객들이 주로 찾고 있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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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시기를 거치긴 했지만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대가족 사회의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직도 집안 한구석에는 그들의 조상을 모시는 제단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매일 아침 그들은 조상들에게 복을 빌고 기원한다.

호이안의 고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비교해 보는 재미를 호이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이안의 북쪽에 위치한 호이안 박물관은 인상적인 유물은 없지만 옥상에서 이 도시의 전체적인 경관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중국과 일본 상인이 주로 활동했던 호이안은 음식문화 또한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우선 일본의 우동과 비슷한 까오러우를 들 수 있겠다. 면발은 우동과 비슷해 보이지만 식감이 두툼하고 색다르다.

철분이 함유된 호이안 지방의 우물물로 반죽하며 쫄깃하면서 달달한 맛이 난다. 고명으로 돼지고기와 쌀튀김, 채소를 넣어 함께 비벼 먹는다. 호이안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까오러우다.  
 
호이안의 상징인 화려한 등불은 밤이되면 거리 곳곳을 환하게 비춘다.
▲ 호이안의 상징 화려한 등불 호이안의 상징인 화려한 등불은 밤이되면 거리 곳곳을 환하게 비춘다.
ⓒ 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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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베트남식 완탕인 환탄과 만두와 비슷한 화이트로즈도 이곳만의 특색을 지닌 요리라 할 만하다. 그 밖에도 거리마다 아기자기한 카페와 먹거리들, 밤에는 안호이 섬에서 열리는 야시장이 여행객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호이안을 장기간으로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혹시 있다면 이번에는 도시의 외곽으로 발을 뻗어보도록 하자. 호이안의 구시가지가 주로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답사 위주로 진행된다면 외곽은 해수욕장, 액티비티 등 다양한 스타일의 투어를 즐겨 볼 수 있다.

투본강은 호이안을 지나 끄어다이비치로 이어지는데 이 해변이 호이안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었지만, 현재는 침식과 높은 파도로 모래가 유실되면서 인근의 안방비치로 사람들을 빼앗기고 있다. 대나무 쪽배를 타고 야자수 숲을 거니는 에코투어로 각광을 받고 있고, 인근의 공예마을을 방문하는 것도 호이안 여행의 별미다.

하지만 서쪽으로 55km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산속에는 기존의 베트남 문명과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힌두교 국가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유적들이 있다. 가는 길도 험하고 반나절 이상 투자해야 할 만큼 수많은 옵션이 있는 다낭, 호이안에서 이곳을 선택하기란 좀처럼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 베트남과 다른 사라진 참파 왕국의 수수께끼가 미선 유적지 곳곳에 숨어 있다.     
 
풀숲으로 덮힌 미선유적은 제법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미선유적의 중심구역 풀숲으로 덮힌 미선유적은 제법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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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베트남 민족은 오랜 기간 동안 하노이 일대의 북부지방만 그들의 영역으로 삼았다. 중부와 남부 해안지대에는 192년부터 1200년 동안 힌두교 문명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렸던 참파 왕국이 대월(베트남)과 맞대고 있었다.

그들은 자바(인도네시아), 남인도 등과의 해상교역으로 영향을 받았고, 종교와 문화면에서 그 당시 제일 번성했던 국가인 크메르 제국과 유사했다. 참파 왕국은 바다를 통해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번영을 누렸는데 도자기, 향신료, 실크 등이 중국을 출발해 참파 왕국을 거쳐 인도와 아라비아를 이었다.

12세기에 가장 번성했던 참파 왕국은 한때 앙코르를 점령할 정도로 강성했고, 지금도 앙코르 유적에서는 참파 왕국과 전쟁했던 당시의 부조가 남아있다.     
 
미선유적입구에는 출토된 유물의 일부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 미선유적전시관의 유물들 미선유적입구에는 출토된 유물의 일부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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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북쪽의 베트남 왕조와의 전쟁으로 인해 왕국은 갈수록 피폐해져 가고 느슨한 연방체였던 참파 왕국은 중앙집권화의 하노이 왕조를 이길 수 없었다. 점차 땅은 남쪽으로 쪼그라들고 결국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응우옌 왕조에 의해 합병된 이후 참파 왕국의 참족들은 베트남에 의한 철저한 동화정책으로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남아있다.

참족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 경우도 많아 16만 명 정도만 베트남 중남부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미선 유적은 참파 왕국이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의 수도 비지야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당시에는 종교성지로 사용되었다.     

미선은 한자로 쓰면 미산(美山)으로 말 그대로 아름다운 산이다. 그만큼 이 유적이 있는 위치는 이 일대에서 보기 드문 험준한 첩첩산중 한복판에 있다. 주차장에서 미선 유적이 있는 구역까지는 꽤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에 카트를 타고 15분 정도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입구에 있는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실 미선 유적은 베트남전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유물들은 다낭의 참 박물관에 옮겨진 상태라 화려한 힌두교의 조각들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중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기존 유물과 다르게 낯설게만 다가오는 힌두교 관련 조각 등은 중국과 인도의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미선 유적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처럼 복원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대부분 일본과 인도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베트남전을 거치며 큰 피해를 입은 미선유적은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각국에서는 유네스코를 통해 인력과 자본을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일본, 인도에서 가장 지원이 활발하다고 한다.
▲ 미선유적에 붙은 일본의 지원내역 베트남전을 거치며 큰 피해를 입은 미선유적은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각국에서는 유네스코를 통해 인력과 자본을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일본, 인도에서 가장 지원이 활발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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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속도를 자랑하는 카트를 타고 미선 유적의 입구에 도달했다. 미선 유적은 광활한 땅에 A, B, C, D, E, F 등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중앙 구역인 B, C, D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무래도 힌두교 문명을 바탕으로 한 유적이라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을 가보신 분이라면 비슷한 인상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시바신에게 헌정된 이 사원은 미선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훌륭하다. 건축물은 수풀이 무성하고 부조도 성치 않지만 디테일을 차분히 살펴본다면 사라진 고대국가의 번영했던 시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미선 유적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아침이다. 이른 아침에 이곳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유적을 감싸 안으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이안과 다른 색다른 문명을 전해주는 이곳은 미선 유적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경기별곡 2편)가 전국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절찬리 판매 중입니다. 경기도 각 도시의 여행, 문화, 역사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강연, 기고, 기타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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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저자. kbs 경인 <시사인사이드> 경인방송 <책과 사람들>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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