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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아이의 엉뚱한 질문이 또 시작되었다. 맥락없는 질문이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엄마는 김밥!"

소풍 가기 전날은 항상 설레서 잠을 설쳤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김밥을 돌돌 말고 있는 엄마 옆에 가서 입을 '아!' 벌리고 받아 먹었던 김밥은 추억이고, 사랑이었다. 분명 아침에도 배불리 먹고 왔는데, 점심에 돗자리를 피고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여는 설렘은 마치 처음 먹는 김밥 같았다. 재료도 항상 비슷했지만 매 소풍마다 그랬다.
 
임신 당시 엄마가 싸준 김밥
▲ 엄마표 김밥 임신 당시 엄마가 싸준 김밥
ⓒ 신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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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당근, 햄 그리고 그 외 다양한 재료들을 손질하고 익히는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네모난 까만 김에 밥을 펴고 줄줄이 재료를 넣고 마는 엄마표 김밥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였다. 임신 했을 때 제일 먹고 싶은 음식도 엄마가 싸준 김밥이었다.

김밥을 싸고 마지막에 바르는 고소한 참기름처럼 김밥은 소풍의 참기름이었다. 고소한 향과 아삭한 맛이 추억을 상기시키는 것은 음식의 힘이다.

COVID-19로 인해 학교에서 외부 활동을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첫 체험 학습을 가게 되었다. SNS상에는 다양한 캐릭터 도시락 사진이 넘쳐났다. 문어 소시지 만드는 법도 알아보고 곰손을 보완해 줄 데코픽도 인터넷으로 미리 구매했다. 

워킹맘이라는 마음 한구석의 미안함을 도시락으로 조금이나마 보완하고 싶었다. 항상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하고, 퇴근 후에도 1시간 남짓 밖에 같이 지낼 수 없던 나의 헛헛한 마음도 치즈로 문어 눈알을 만들어 붙이면 조금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도시락을 열었을 때 아이의 함박웃음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설레발을 너무 떨었던 것일까,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 잡혔고 기막히게도 아이의 운동회, 소풍 그리고 생일까지 지나서야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다행히 운동회는 급식이 지원되었는데, 소풍 도시락이 가장 문제였다. 혼자 호들갑 떨며 들떠 있던 내 모습을 계속 봐온지라 남편은 본인이 해보겠다고 했지만 괜히 고생하기 보다 최선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김밥집에 도시락통을 갖고 가면 담아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장을 가기 전에 미리 확인을 했다. 

"어휴~ 4학년이면 그냥 은박지에 싸가요~ 걱정마세요."

사장님도 워킹맘이라 내 마음을 보듬어 주시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는 이미 캐릭터 도시락에 흥미가 없을 만큼 자랐는데, 괜한 내 욕심에 스스로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고보니 어떤 도시락을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었다면 원하는 속재료를 물어봤어야 했다. 어쩌면 도시락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세상을 살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의견은 묻지 않은 채 내가 원하는 길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은박지에 싼 김밥을 재빨리 먹고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캐릭터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 미안할 것이 아니라, 소풍 가는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는 말을 볼을 쓰다듬으며 직접 할 수 없음을 가볍게 섭섭해야겠다. 이렇게 같이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아이도 부모도 누구의 소유물이 아님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태그:#소풍도시락, #김밥,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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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가 꿈인 15년째 직장인이자 수면위로 나타나지 않는 투명인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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