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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옛그림과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화와 생활,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가을이 되면 노랗게 빨갛게 물드는 나뭇잎이 아름답다. 하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에도 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있다. 이러한 상록수는 대표적으로 소나무가 떠오르지만, 소나무의 뾰족한 잎과는 다르게 좀 더 포근한 느낌을 주는 나무가 있다. 바로 측백나무이다.

세한도와 심산지록
 
김정희, 1844년, 종이에 수묵, 23.9 x 70.4cm
▲ 세한도 김정희, 1844년, 종이에 수묵, 23.9 x 70.4cm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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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1844년 그가 제주도 유배생활을 할 당시에 남긴 것이다. 그림의 왼쪽에는 김정희가 적은 발문이 쓰여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께서는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송백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안다'고 하셨다. 송백은 본디 사철 푸르러 잎이 지지 않으니 세한(설 전후의 추위, 몹시 추운 한겨울의 추위) 이전에도 송백이요 세한 이후에도 송백인데, 성인께서는 특별히 세한 이후를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함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하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덜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송백을 두 가지로 다르게 풀이한다. 첫째로 송백이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고 하여, 송은 소나무, 백은 잣나무라는 풀이가 많았다. 그러나 백(柏)이라는 한자는 잣나무 외에도 측백나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중국 내륙에는 잣나무가 자라지 않아 애초에 공자는 측백나무를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윤두서, 종이에 담채, 127 x 90.5cm, 간송미술관 소장
▲ 심산지록 윤두서, 종이에 담채, 127 x 90.5cm, 간송미술관 소장
ⓒ 공유마당(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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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재 윤두서의 작품 심산지록(깊은 산속 영지와 사슴)이다. 대나무와 풀숲을 헤치고 가는 사슴 한 마리가 보인다. 그 위로는 측백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고, 사슴의 앞쪽으로 국화와 영지가 피어있다. 구도를 비스듬하게 잡아, 경사진 길을 내려오는 사슴을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정선, 비단에 채색, 21 x 32.8cm, 간송미술관 소장
▲ 사문탈사 정선, 비단에 채색, 21 x 32.8cm, 간송미술관 소장
ⓒ 공유마당(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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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겸재 정선이 그린 것으로, 사문탈사(절 문 앞에서 도롱이를 벗다)라는 제목이 그림 왼편에 적혀 있다. 검은 소를 타고 도롱이를 입은 선비는 우리도 아는 역사적인 인물로, 율곡 이이(1536~1584)이다. 이 그림 뒤에는 한 통의 편지가 붙어 있었는데, 여기에 그림에 관한 뒷이야기가 적혀있다.

편지는 정선의 벗이자 <사천시초>를 저술한 시인 이병연(1671~1751)이 쓴 것으로, 이병연이 '율곡 이이 선생이 소를 타고 눈 덮인 절을 찾았던 고사'를 화제로 겸재에게 보낸 것이다.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절을 둘러싼 커다란 고목들은 측백나무이다. 측백나무의 특징인 세로로 갈라진 나무껍질은 빗금으로 표현했고, 비늘처럼 납작한 잎에는 눈이 쌓여있다.

측백나무의 쓰임새
 
측백나무
 측백나무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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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는 상록성 침엽수이다. 잎은 작고 납작한 형태로 비늘처럼 여러 겹으로 포개지고, 가지가 많아 잎과 작은 가지는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 측백이라는 이름은 가지가 수직적으로 발달하여 붙여졌다. 잎이 측면으로 갈라져 옆으로 자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예로부터 측백나무를 불로장생의 상징, 신선이 되는 나무라 여겨 귀하게 대접했으며, 왕족이나 귀족의 무덤 혹은 사찰 주변에 심었다. 측백나무는 잎과 열매를 약으로 사용한다.

잎(측백엽)은 성질이 차고 맛이 쓰다. 수렴 지혈하는 작용이 있어, 피를 토하거나 코피가 날 때,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올 때 등 다양한 출혈증에 사용할 수 있다. 기침, 가래를 없애는데 효과가 있어 노인들의 만성 기관지염에도 좋다. 또한 탈모가 있거나 젊은 나이에 흰머리가 빨리 날 때 응용할 수 있다. 
 
백자인
 백자인
ⓒ 윤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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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의 씨를 따서 말린 것은 현대에도 한의원에서 사용하는 약재인데, 백자인이라 부른다. 백자인은 길이가 4~7mm, 지름이 1.5~3mm 정도로, 맛은 달고 성질은 차지 않고 화평하다. 측백엽이 찬 성질과 쓴맛을 가진 것과 다른 점이다. 이처럼 같은 나무에서 나왔더라도 부위에 따라 성질과 맛이 다를 수 있다. 

백자인은 다량의 지방유를 함유하여 장을 적셔주고 대변을 통하게 한다. 즉, 대장의 진액이 줄어 대변이 굳어진 변비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기름기가 많아 공기 중에서 산패되기 쉬우므로, 밀봉하여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 밖에도 백자인은 심장을 튼튼하게 하여, 잘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 혹은 불면증에 사용하며 정신을 안정시킨다. 땀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 식은땀이 날 때도 활용한다. 

일반적으로 송백(松柏)을 나무들 중 으뜸이라 하는데, 소나무를 공(公), 측백나무는 백(伯)이라 했다. 작위로 보자면, 공작인 소나무보다는 아래지만 측백나무는 백작인 셈이다. 이는 변치 않고 푸른 송백의 자태와 향기 때문이겠지만, 유용한 쓰임새도 한몫한 것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nurilton7)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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