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7 12:59최종 업데이트 22.11.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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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지난 15일 경기 성남 SK C&C 판교캠퍼스 데이터센터 지하 3층 전기실 화재로 인해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가 발생했다. ⓒ 유성호

 
카카오가 멈췄다. 카오스가 시작됐다. 지난 10월 15일 오후 3시 19분 SK㈜ C&C가 운영하는 판교 데이터센터에 불이 났다. 국민들 마음에도 불이 났다. 카카오톡은 '불'통, 카카오 택시는 '불'행(行), 카카오 페이는 '불'신으로 불을 지폈다. 카카오 서비스는 이틀에서 닷새에 걸쳐 장애를 일으켰지만 국민들의 마음의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카카오 먹통 사태는 국민 개개인의 불편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보상에 대한 뚜렷한 법과 제도 장치가 없기에 사회적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온 국민이 다 카카오톡을 쓰고 있다. 공공기관들까지 쓰고 있지 않나"라고 카카오 독과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에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공정한 경쟁기반 확보 대책'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플랫폼 독점'이라는 본질을 가리켰다. 카카오 먹통 사태로 인한 피해 보상 문제가 중요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근본 대책과 대응 역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플랫폼 독점의 역설

# A기업이 디지털 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했다. 제품의 질도 좋고 그 가격도 좋아서 단시간에 인기 상품이 됐다. 그런데 그 추이를 보고 있던 플랫폼 사업자가 가격을 낮춰 동일 상품을 PB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후 A기업은 판매 부진으로 퇴점하게 된다.

위의 피해 사례는 매우 전형적이다. 이런 피해 사례는 플랫폼의 조직적인 활동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흐름은 대개 다음과 같다.

'플랫폼은 영세업자들이 납품하는 인기 제품들과 유사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만든다. 직원들은 이들 상품에 조직적으로 리뷰를 단다. 그 상품은 노출 순위가 높아지고 구매가 확대된다.'

플랫폼이 압도적인 자본과 인력을 이용해 납품 중소 업체들이 형성한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 행위이다. 이미 성숙한 자본주의, 시민사회 국가로 성장한 한국에서 이런 불공정한 행위로 플랫폼이 성장할 수 없다. 설령 성장한다 해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으며 글로벌 리더십 발휘는 요원할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가 일단 시장을 선점해 이용자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이들의 상호작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덕분에 플랫폼의 가치는 빠르게 성장한다. 게다가 이런 네트워크 효과 덕분에 초기 우위는 영구적 독점으로 굳어지며, 인터넷을 통해 그 장악력은 쉽게 국경을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며 독점 이익을 키운다.

그러나 소비자 이해와 효용 중심의 잣대로 보면 소비자 가격을 낮춘 것이니 문제가 없다는 항변도 있다. 과연 그럴까? 양면 시장성을 갖는 플랫폼이 소비자 이해 관점을 명분으로 심판과 선수를 겸하고 있다. 데이터 독점을 기반으로 자사 PB 브랜드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자사 PB 제품을 다른 입점 업체보다 우대하는 행위(self-preferencing), 입점 업체가 경쟁 플랫폼과 거래하는 것을 막는 배타 조건부 거래, 알고리즘 조작을 통한 차별적 노출, 문어발식 인수합병(M&A)으로 인한 경제력 집중 등을 통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 시장의 공정성과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디지털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이해 못지않게 생산자를 위한 공정한 유통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거대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계속 커져 왔으며 국회 역시 이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8월 인앱결제 강제를 막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한민국 국회가 통과시켰다.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다.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수단을 앱 개발사에 강제하고,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며, 모바일 콘텐츠를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는 독점적 앱마켓 사업자를 규제하는 세계 첫 사례다. 이 개정안은 세계가 플랫폼 반독점 규제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흐름에서 중요한 사례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멈춰 세운 플랫폼 공정법

사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논의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폐기 수순을 밟았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원장 안철수)는 주요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자율규제 방안을 도입하고 불공정 행위 규율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그리고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미국과 EU에 비해 우리는 관련 법규제를 잘 갖춰 놓고 있다"며 "자율규제를 우선 추진한 후 법제화를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방향은 그동안 진행해 왔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법을 자율규제라는 미명 하에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그랬던 윤석열 정부가 카카오 사태로 호떡집에 불이 났다. 공정거래위원회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대책들이 카카오 사태로 다시 책상 위로 올라왔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심사 지침'과 '디지털 플랫폼 분야 기업결합 심사기준' 제·개정안 등 온라인 플랫폼 특성을 반영한 법집행 기준 개선안이 나왔다. 이는 각각 올해 1월 행정예고와 6월 연구용역을 시작한 정책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자율규제를 옹호하던 학계와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의 인과관계와 관련이 없는 과잉규제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부가통신사업자 재난관리체계편입 의무화 이외의 독과점 심사 지침마련(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시민사회), 독점기업 강제분할(안철수 의원) 논의는 지나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독점의 폐해와 이것을 혁신하려는 것이 카카오 사태로 처음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또한 정책의 일관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정부 취임 초 그간의 논의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플랫폼 사업자의 선의에 기댄 자율규제라는 원칙을 세운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규칙

거대 플랫폼의 공정거래를 위해 최근 각국은 자율규제보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시장을 보호하는 추세다. 유럽연합에서는 올해 10월부터 거대 플랫폼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강력하게 규율하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과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 Act)이 시행되고 있다.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의 '공동부유론'을 앞세워 빅테크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그간 플랫폼 규제에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과 이해 관점에서 미온적이던 미국도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플랫폼의 공정성과 포용, 사회적 후생과 이해, 거시적 효과를 변화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거대한 플랫폼이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된 내용을 우선적으로 보여주거나 그런 것을 담은 앱 등을 설치하게 하는 것들을 불공정한 행위로 보고 미국 하원은 지난해 6월, 'GAFA'(Google, Amazon, Facebook, Apple)를 정조준한 급진적이고 강도높은 사전적‧사후적 규제인 '플랫폼 반독점법 패키지'를 발의했다.

아마존이 제작한 제품은 아마존에서 팔 수 없다. 플랫폼 사업자가 제조업을 겸업하는 것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과거 불공정거래행위는 담합이나 독점, 반경쟁적 기업결합 등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의 금지를 중심으로 했는데 이를 디지털 경제 시대에 맞춘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도입은 글로벌 패권 경쟁이 심한 플랫폼 시장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에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쟁 정책과 그에 따른 규제는 각국의 특수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도입돼야 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대한민국은 추격 국가였지만 새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은 선도 국가이자 기준 국가이다. K 디지털 리더십 구축을 위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도해 가야 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2021년 12월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앞에서 열린 공정거래 가로막는 플랫폼 기업 항의 기자회견에서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플랫폼 경제를 넘어 프로토콜 경제로

20세기의 경제 논법을 답습해서는 디지털 경제로 바꾸기 어렵다. 독점의 강화가 디지털 경제로 바뀐 결과라고 한다면 그것은 퇴행이다. 최근 프로토콜 경제가 호응을 받는 이유도 대중이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전환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프로토콜 경제란 시장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경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프로토콜 경제 체제에서는 쿠팡 로켓맨이 열심히 일하면 그 대가로 쿠팡 주식을 로켓맨에 지급하는 것이다. 배달의민족 배달원, 우버 운전자, 택배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고, 소상공인 사장님들은 지금보다 열린 프로토콜(약속) 체계에서 좀 더 합리적인 수수료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거래하는 사람들의 인적 정보를 분산 저장해 안전하고, 무엇보다 모든 데이터가 공개되기 때문에 투명한(신뢰 있는) 거래가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은 프로토콜 경제를 활용한 '더불어 잘사는 자본주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부의 독점을 막고, 부의 재분배와 공정한 분배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 디지털 지역화폐나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건물의 임대료 등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해 보겠다"라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대전환 시기에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이 말은 이전 정부의 좋은 정책과 방향까지 무조건 지우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도 필요한 말일 것이다.

* 필자 소개: 디지털 기술이 성장과 산업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없을까? 디지털 사회혁신의 물음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 디지털 보좌관, 디지털사회혁신연구소 소장, 중소기업유통센터 소상공인 디지털 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물음에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물음동지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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