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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으로서 선택권을 넓히고자 런던을 거쳐 베를린에 이사 와 살고 있습니다. 10년간 채식을 하며 일상에서 겪는 고충들과 동시에 더욱 풍부해진 비거니즘 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우유와 버터,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빵
▲ 런던 해크니에 위치한 비건 베이커리 카페 우유와 버터, 치즈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빵
ⓒ 최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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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성이 좋았던 내게 음식은 양 많고 가격 저렴한 게 최고였다. 결혼식 뷔페에 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전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음식을 남기지 않고 잘 먹는 편이었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복스럽게 먹는다며 온갖 칭찬 세례를 독차지했다. 그랬던 아이는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구보다도 깐깐하게 '가려 먹는' 비건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제로 웨이스트(남김 없음)를 실천하는 건 바뀌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0년대 초중반은 특히나 한 판에 만 원도 안 되는 대패삼겹살 집이나 뭔가 하나라도 무한리필 되는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제 값 주고 먹는 일은 손해였기에 할인 쿠폰을 보내오면 굳이 사먹지 않아도 될 것에 충실하게 돈을 쓰는 소비자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으로서의 시선은 이전에 당연하게 누려온, '싸고 양 많은 음식'에 대한 소비에 제동을 걸었다. 값이 지나치게 싸면 총알 택배 배송처럼 누군가의 노동이 헐값에 착취 당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 이면을 상상하며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

세상에 공짜인 건 없다. 그렇기에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것엔 그만큼의 인력과 자원이 투자되기 마련이다. 그 인력은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이며 자원이 육가공품이라면 역시 누군가의 친구이고 가족인 생명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소에게도 돼지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고소한 단내와 꼬릿한 치즈의 향이 들푸른 목장의 소로부터 자연스레 오는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을 즈음 비건이 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미니즘은 젠더의 불균형을 바로 잡자는 평등에 기반한 것인데 다른 종의 여성이 한평생 끊임없이 출산을 강요 받는다? 그걸 바로 보지 않으면 차별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채식을 하며 가장 어려운 건 육고기를 안 먹는 것보다 이런 버터, 우유, 치즈가 함유된 식품들을 피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풍미를 더한다며 어느 과자이고 요리에 유제품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우유 광고는 들판에서 순백색의 옷을 입고 요가하는 (인간) 여성을 소로 불현듯 변신시키는 연출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 남성이 카메라를 들고 몰래 다가가는 데서 이미 불법촬영과 여성의 대상화라는 것도 문제인데, 나아가 자사 제품은 다른 종의 여성에게서 '갈취'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들푸른 산과 목장에서 풀을 뜯고 노니는 소들도 있다. 그러나 전세계의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우유와 치즈, 버터, 크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공장'을 가동한다. 축산업이라는 이름은 그들도 개별적인 존재이며 '임신'을 해야지만 '우유'가 나온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지운다. 단지 생산 개체로 일생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도축되는 그들에게는 우리와 같이 '나이 드는' 생애주기란 없다.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기로 한 이유
 
커피의 옵션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
 커피의 옵션을 다르게 바꿀 수 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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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비건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웨이터로서 손님에게 '귀리, 아몬드, 두유' 중 어떤 선택을 원하냐는 질문을 해야했다(영국과 유럽 국가들에는 식당에서 식사와 커피, 술을 동시에 파는 곳이 많다).

그 중 이 곳이 비건 식당이라는 것을 인지 못한 많은 이들이 '보통 우유(Normal Milk)' 혹은 정확히 일컬어 '소젖(Cow's Milk)'을 달라고 했다. 초기에는 당황한 나머지 죄송하지만 여긴 채식 기반이라 해당 우유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 중 한 손님은 화를 내며 그러면 됐다고 커피 주문 자체를 포기했다.

비건 동료들과 이런 고충을 나누며 우리는 '노멀 밀크'에서 '노멀(평범)하다'는 건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서로 주고 받았다. 한 친구는 손님이 해당 우유를 찾으면 상대를 지긋이 바라보고 그가 이 곳이 채식 식당이란 사실을 깨닫기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이 곳이 다른 여성의 젖이나 생명이 착취되지 않은, 안전한 공간임을 인지하기를 바라는 의도였다.

올해 영국에서는 Z세대 소비자들이 카페에서 우유 옵션을 주문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경향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주된 이유는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가리켜 'Dairy Shame'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에서 여전히 대체유 옵션이 많지 않거나 있어도 추가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스타벅스의 경우, 두유는 추가금을 안 내는데 오트밀크는 추가금을 낸다. 하지만 영국의 스타벅스 전 매장은 식물성 대체유(귀리, 아몬드, 코코넛, 두유 등)로 주문 시 어떤 추가금도 받지 않는다.

연대는 공감으로부터 온다. 만나본 적 없고, 한 평생 공장에 갇혀 산다는 고통이 어떤지 감히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고 더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존재이기에 나는 유제품을 소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태그:#우유, #유제품, #치즈, #버터,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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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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