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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웃게 한 초코과자
 엄마를 웃게 한 초코과자
ⓒ 변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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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초코파이 바나나맛 과자 하나를 건넸다.

"아이쿠! 안 그래도 입이 심심해 하던 차인데!"

기대보다 훨씬 큰 반응에 웃음보가 터졌다.

"하하, 우리 엄마가 초콜렛을 좋아하는구나. 몰랐네!"
"이제는, 먹는 낙 밖에 없어서."


엄마는 장난꾸러기 소년같이 말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언제부터 엄마의 낙이 군것질이었나. 젊은 시절 엄마는 과자나 주스 따위의 군것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우리에게 과자를 사 주시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아빠는 달랐다. 저녁마다 종종 맛난 간식거리와 함께 집에 오셨다. 길고 투명한 봉지에 담긴 생강과자나 기름에 튀겼다가 설탕 시럽을 뿌린 과자가 단골손님이었다.  너무 비싸지 않는다면 제철 과일도 아빠덕에 먹을 수 있었다. 봄에는 딸기를 꼭 한 소쿠리씩 가져오셨고, 수박이나 복숭아는 가끔이었다. 더운 여름밤이 좋았던 건, 아빠의 아이스크림 심부름 때문이었다.

엄마도 종종 심부름을 시키셨다. 하지만 주로 생필품을 사는 일이었다. 저녁마다 라면이나 국수, 번개탄이나 부탄 가스 같은 것들이 종종 필요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엄마가 주신 돈 천 원으로 과자를 사러 간 일이 있다. 다음날은 소풍이었다. 평소 같다면 아빠가 과자를 사다 주시거나 대신 돈이라도 주셨을텐데 웬일인지 그날은 엄마의 돈을 받았다. 아마 아빠가 집에 늦게 들어오셨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평소에 아빠가 담아주시던 그대로 과자를 골랐다. 삼백 원짜리 오징어땅콩, 계란 과자와 맛동산은 이백 원, 음료수는 가장 저렴하게 이백 원짜리 과일맛으로 고르고 남은 백 원으로 껌을 샀다. 다음날 소풍 가서는 과자들을 하나도 먹지 않고 집으로 들고 왔다.

어쩐지 나 혼자만 이 비싼 과자들을 다 먹어버리는건 왠지 미안했다. 저녁에 집에서 동생과 아빠 앞에서 과자를 개봉했다. 그 자리에 엄마는 계셨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일찍 일을 나가셔서 아침엔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대신에 저녁에 집에 돌아와, 청소도 안했냐, 설거지도 안했냐 하며 '혼구녕'을 내셨다. 자기는 하루종일 뼈빠지게 나가서 일 하다 오는데, 너희들은 뭐하고 있냐며 소리치는데 서슬이 퍼랬다. 

나는 엄마가 언제 한번 내게 청소하는 법이든 설거지 하는 법이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엄마가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고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알았다. 배우지도 못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혼이 나는 것은 억울했다. 끝자락에 흙먼지가 묻은 갈대 빗자루로 매를 맞은 날부터는 매일 설거지를 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서 초코바 상자를 열었다. 12개입 네 명인 우리 가족에게 세 개씩 나누어 주면 된다.

"또 나오네?"
"먹는 낙 밖에 없다고 하니까."


엄마는 아까 받은 초코파이는 텔레비전 아래 바구니에 담고는 손을 대지 않으셨지만 금방 받은 초코바는 하나를 까서 얼른 입에 넣으신다.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 매를 들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딱 지금 내 나이 정도의 엄마다.

그때의 엄마는 짙은 검은 머리에 기운이 넘쳤고, 늘 화가 나 보이셨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늘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하얗게 머리가 센 엄마가 초코 과자 하나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엄마를 웃게 하는 일이 이렇게도 쉬웠다니. 그랬다니.

태그:#옛날이야기, #엄마, #추억,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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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보통의 일상이 아니라, 매 순간이 그 무언가 섬some띵thing이 되도록 노력하는 인생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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