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서울에서 산다면 이태원에 살고 싶을 것 같아요. 이태원이 가진 '바이브(분위기)'가 좋아요. 거리 다니는 사람들 보면 정말 다채롭잖아요. 남의 눈치 안 보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참사가 일어나기 한참 전, 일상이 그럭저럭 슬프지 않았을 때, 직장 동료와 나눴던 대화다. 그는 이태원을 자유롭고 개성 강한 곳으로 묘사했다. 우리는 복잡한 서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태원만큼은 복잡한 와중에 '느슨한 관용의 문화(loose culture)'를 가진 유일무이한 공간이라 여겼다.

'이태원 핼러윈'은 MZ세대에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기는 곳"
 
 11월 8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 '이태원에서 MZ를 생각하다' 중 생존자 정민경 씨 인터뷰 장면

11월 8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 '이태원에서 MZ를 생각하다' 중 생존자 정민경 씨 인터뷰 장면 ⓒ KBS1

 
강남이나 홍대 등, 젊은 세대가 밀집하는 곳은 서울에 여럿 있다. 그러나 '이태원'이 핼러윈의 상징적인 장소가 된 것은 특유의 다채로움과 관용 덕분이다. 이태원에서는 당신이 어떤 신을 믿건 상관없고, 고유한 나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핼러윈에 이태원으로 모여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자기가 되고 싶은 형상으로 가장(假裝)하여 축제를 즐겨온 것이다.

그래서 이 참사는 더더욱 아프게 남는다. 10대에는 세월호 참사를, 20대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맘 놓고 무엇 하나 즐기기 어려웠던 세대가 축제를 즐기고자 했다는 이유만으로 재난의 희생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코로나19 겪은 '재난 세대'가 또다시 마주한 트라우마

지난 8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창> '이태원에서 MZ를 생각하다' 편에서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태원이 MZ세대들한테는 잠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KBS <시사기획 창> 중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인터뷰

KBS <시사기획 창> 중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인터뷰 ⓒ KBS1

 
'빡빡한 한국', 20대는 숨쉴 수 있는 공간마저 허락받지 못했다

이날 <시사기획 창>은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더불어 '핼러윈 축제'를 즐긴 희생자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분석했다. 희생자들을 헐뜯고, 조롱하고, 참사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댓글을 보면 한국이 너무나 빡빡한 사회였단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의지할 곳도 없고, 책임지는 정부도 없어서 애꿎은 서로만 탓하는 것이다.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와 '느슨한 문화(loose culture)'를 연구한 문화심리학자 미셸 갤팬드 교수 연구팀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를 가졌다.

시민에게 엄격한 사회규범 준수가 요구되고, 다양성에 대한 관용도는 극히 낮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시민들이 법 질서를 잘 지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 보게 하는 사회'이므로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이 억압되고 사람들은 쉽게 피로감과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이태원역 앞에 붙여진 한 추모 메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하는구나."
 
 이태원 역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들

이태원 역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남긴 메시지들 ⓒ 선채경

 
"그러게, 가지 말았어야지." 희생자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것은 간편하다.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러나 모든 게 개인의 탓이라면, 시민의 안전을 관리하는 행정 부처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와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럼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 그런 질문을 거꾸로 하고 싶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주최가 없을수록 행정 당국이나 지자체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KBS1 <시사기획 창>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 인터뷰

KBS1 <시사기획 창>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 인터뷰 ⓒ KBS

 
누구도 죽어 마땅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잠깐 해방의 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수학여행 가는 길, 놀러 나가는 길, 일상적인 행위조차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 일상에 어떤 자유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시민은 국가의 답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기획창 이태원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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