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0 15:39최종 업데이트 22.11.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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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 개막식에서 COP27 의장인 사메 슈크리 이집트 외무장관(왼쪽)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보다 한 발 더 나갈 수 있을까. 지난 6일부터 18일까지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2주간 개최되는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를 바라보는 이들의 질문이다.

1년간 많은 변수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기후 위기 해결 선두에 있던 독일마저 화석 연료로 후퇴했다. 일부 후퇴 속에 독일은 파격적인 공공 교통 요금을 제시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영국, 스페인, 그리스는 횡재세 부과로 화석 연료 산업계의 이익 일부를 사회로 환원했다. 미국은 그린 뉴딜 성격을 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아프리카, 유럽, 미국의 폭염과 최악의 가뭄, 파키스탄의 홍수 등 지난여름의 디스토피아는 경각심을 충분히 일깨웠다.

그럼에도 COP27은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예정보다 늦게 시작했다. 대표단이 공식 안건을 정하는 5일 오후, 최대 난제로 꼽히는 '손실과 피해'를 정식 안건으로 올리는데 이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막일인 6일 아침이 되어서야 채택되었다.

초반의 불안함을 딛고 7~8일에는 각국 정상들의 연설이 있었다. 그 와중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이들의 부재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대표적으로 그의  불참석은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의 결정이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찰스 3세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환경과 기후 변화 문제에 진심을 보인 인물로 COP27만큼은 참석할 자격이 있다.

국제무대로 활동 범위 넓힌 찰스 3세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COP27을 앞두고 영국 런던에서 리셉션을 개최한 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 나무 심기 계획인 '퀸스 그린 캐노피'의 일환으로 버킹엄궁 정원 티하우스 근처에 라임나무를 심고 있다. ⓒ 연합뉴스


환경에 대한 찰스 3세의 관심은 오염으로부터의 보호로 시작했다. 1970년 22살의 그는 웨일스농촌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주최하고 보존과 개발의 문제를 분리된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환경, 동물, 지구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순환 경제와 자연 자본을 익힌 찰스 3세는 직접 유기농 농법 실험에 들어갔다. 1985년 글로스터셔에 있는 자택 근처 1000에이커(405만m²)의 농장을 임대해 유기농 농장으로 서서히 전환시켰다. 유기농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희박했던 때라 영국은 그를 과거 속에 사는 자, 몽상가, 과학 거부론자, 그리고 모자란 사람으로 묘사했다.

1990년에는 자신의 유기농 농장에서 나온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더치 오리지날스'라는 회사를 세우고 백화점 등에 납품했다. 이익의 대부분은 그가 운영하는 자선 재단 기금으로 들어갔고 일부는 유기농 농법을 연구하는 영국 토양협회를 지원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경영난에 빠졌으나 사회적 책무를 중시하는 기업 존 루이스가 거액을 투자해 살려냈다. 현재는 이 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브랜드 '웨이트로즈 더치 오가닉'으로 존재한다.

찰스 3세는 농장 경영에 이어 유기농법과 지속가능한 삶을 실험했다. 문화재적 가치 때문에 어렵게 허가를 받아 자택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고 갈대로 만든 하수구와 퇴비 생산 체계를 만들었다. 난방은 생애너지원인 바이오매스로 이루어진다. 애스턴 마틴의 1960년 모델로 알려진 개인 자동차도 친환경으로 개조했다. 이 차의 연료는 15%만 기름에 의존하고 나머지는 백포도주 남은 것, 치즈 만들고 남은 유청, 그리고 바이오에탄올이다. 

30년 이상 공들인 농장이지만 찰스 3세는 2020년 8월 재계약을 포기했다. 농장 임대는 20년 단위인데 왕위 계승 문제로 더 이상 경영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왕실과 무관한 사람이 농장을 맡았지만 찰스 3세가 했던 유기농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에 대두된 1990년대 찰스 3세는 활동 범위를 국제무대로 넓혔다. 1992년 국제연합(UN)은 지구정상회의라 불리는 유엔환경개발회의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했다. 이 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찰스 3세는 왕실 소유의 로열 브리타니아호를 아마존강 부근 항구로 이동시켜 각계 인사들을 초청하고 '비공식 세미나'를 열었다. 여기서 발전된 것이 지금의 COP27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받고 싶지 않다"
 

2021년 11월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당시 찰스 왕세자가 영연방 지도자 리셉션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찰스 3세는 국제 행사 지원 역할에서 한 발 더 나가 2007년 '열대 우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를 읽고 기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분위기 속에서 보존보다 개발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논의틀을 뒤집기 위해 그는 열대 우림 보존이 더 경제적 가치가 있다며 인식의 전환에 기여했다. 또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비영리 단체를 묶어 접근 50억 달러의 기금도 마련했다.  

열대 우림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어 찰스 3세는 2010년 열대 우림 프로젝트의 확장판인 국제지속가능성기구를 설립했다. 열대 우림뿐 아니라 불법 동물 사냥, 지역 사회 중심의 식량 공급,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까지 다룬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최대로 사용해 주목할만한 효과를 거두었다.

2017년에는 '지속가능한 면직물 성명'을 작성했다. 2025년까지 모든 면제품을 지속가능성 있는 자재로 생산한다는 내용으로 나이키, 리바이스, H&M, IKEA 등 13개의 국제적인 기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같은 해에 '코코아 산림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코코아 회사들이 상호 협력해 산림 파괴를 막는다는 협정이다. 유수의 초콜릿 회사들인 이탈리아의 페레로, 벨기에 고디바, 스위스의 린트와 네슬레, 일본의 메이지, 미국의 허쉬, 독일의 리터스포트, 영국의 막스앤스펜서와 마즈 등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찰스 3세는 이 두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토니 주니퍼와 함께 <조화: 우리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2010년 출간했다. '이것은 혁명에 대한 요구다'라는 문장으로 운을 뗀 찰스 3세는 현시대를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단절의 시대'로 규정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다시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론자'가 된 70대의 찰스 3세는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에서 인류가 '전쟁기와 같은 자세'로 기후 문제에 임해야 하며, 사적 기업 영역을 통제하는데 '광범위한 군대식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를 과격하게 만든 동기는 의외로 소박했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점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손자들에게 비난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반전의 기회는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COP27을 앞두고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찰스 3세 국왕이 리시 수낵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알록 샤르마 COP26 의장. ⓒ 연합뉴스


지난 9월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사망으로 국왕이 된 찰스 3세에게 당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2022년 COP27 불참석을 요청했다. 1980년대 대처식 시장중심주의자이자 성장우선주의자인 총리와 기후론자인 국왕의 충돌이었다. 2018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왕이 되면 지금(왕세자로) 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활동의 제약을 각오하고 있던 찰스 3세는 총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리즈 트러스 총리가 물러나고 리시 수낵이 새 총리가 되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대신 찰스 3세는 기후회의 전 정계, 재계, 문화계 인사들을 초청해 런던 버킹엄궁에서 리셉션을 열었다. 여기에 초대받아 간 미국의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는 이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찰스 3세가 온다면 정말 강력할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기후론자 국왕 대신 기후 회의론자에 가까운 리시 수낵 총리가 COP27에서 연설했다. 아이러니다. 그는 하원 의원 시절 대부분의 기후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재무장관 시절 통과시킨 횡재세는 노동당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경우였다. 총리가 된 후 보수당 내 기후론자이자 지난 COP26 의장이었던 알록 샤르마를 내각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총리 역시 회의 참석 의사가 없었다. '산적한 국내 문제'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노동당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계획을 바꾼 것이었다.  

그런 총리가 과연 기후 변화로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빈곤국의 요구, 다시 말해 서구 선진국이 '손실과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진지할 수 있을까. 기후 변화 회의 첫날의 갈등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반전의 기회는 있다. 신분의 한계로 가지 못한 찰스 3세와 달리 선출직의 한계인 중간 선거에 묶여 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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