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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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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이틀 뒤 작성된 경찰청의 '정책 참고 자료' 문건과 관련해 작성 주체의 위법행위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의 민간 사찰과 국정 개입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경찰의 정보수집 범위를 제한하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2017년 이후 진행된 논의 끝에 경찰개혁 방안의 하나로 마련됐다. 

지난 10월 31일 경찰청 정보분석과에서 작성한 '정책 참고 자료'를 보면, 내용 대부분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갈등을 통제하는 데 있어 정부가 유의해야 할 사항들로 채워졌다.

유족 및 보상금,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 등 '정부 부담 요인'이 분석된 이 문건엔 "통상 대형 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향후 보상 문제가 지속 이슈화될 소지"가 있다거나 "외부인 참여가 늘어날수록 협의가 어려워진다며 초기에 '가족대표를 정해 대화창구 단일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세월호 유족 등 시민사회단체 동향과 이들이 정부에 줄 부담에 대한 분석이 포함돼 민간 사찰 논란도 불렀다. 문건은 민주노총, 전국민중행동, 자유대한호국단 등 일부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단체의 내밀한 동향을 열거하면서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은 정권퇴진운동으로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이슈로 내부 논의 중"이라거나 "'세월호 사고'와의 연계 조짐도 감지, 정부 대응 미비점 집중 부각 전망"이라고 명시했다. 

시민사회 "법 위반 명확한 사찰, 조사해야"
 
10월31일 경찰청 정보분석과에서 작성된 '정책 참고 자료' 중 일부 갈무리
 10월31일 경찰청 정보분석과에서 작성된 '정책 참고 자료' 중 일부 갈무리
ⓒ SBS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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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개혁을 위해 노력해온 시민사회에서는 해당 문건에 포함된 정보들이 경찰 직무집행법 시행령에 규정된 정보 수집 범위를 벗어났다며 '현행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관련 법은 경찰관 직무집행법과 지난해 제정된 '경찰관의 정보수집 및 처리 등에 관한 규정' 시행령이다. 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은 범죄·재난·공공갈등 등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배포"(8조의2)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령 3조는 수집할 수 있는 정보 범위를 9개 항목으로 제한했다. ▲범죄 예방·대응 ▲수형자 등의 재범방지 및 피해자 보호 ▲방첩·대테러 활동 ▲재난·안전사고로부터 국민 안전 확보 ▲집회·시위 등 다중운집에 따른 질서·안전 유지 ▲국민 생명·재산 보호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 예방 및 대응에 관한 정책 ▲도로 교통 소통 ▲공공기관장이 요청한 신원조사 및 사실확인 등이다. 

이창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청 문건에 수집된 정보는 위 9개 항목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정보"라며 "현행법상 위반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시민단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월호 유족들 동향은 어떤지, 대통령이나 행정안전부가 어떻게 브리핑을 해야 하는지, 이태원 참사 유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건 경찰의 업무가 아니다"라며 "문건 내용은 법에 근거하지 않은 정보수집, 즉 사찰인 게 명확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건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조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정보를 담았는데 경찰은 치안·안전 대책 등 경찰 활동과 관련한 정보를 모으는 기관이지 국정운영 지원기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합법적 정보 수집이라고 하지만...  

경찰청은 문건 내용에 대해 현행법 위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정보분석과 관계자는 9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법에 부합하는 정보활동이고 재난·안전사고와 관련해 작성된 정보"라며 "구체적으로는 시행령 3조 5~7호에 다 해당된다"고 밝혔다.

문건 내용은 재난·안전사고로부터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정보(5호), 집회·시위 등 다중운집에 따른 질서·안전 유지에 필요한 정보(6호), 국민 생명·재산 보호와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 예방 및 대응에 관한 정책에 관한 정보(7호)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창민 변호사는 "경찰은 (7호의) '정책 정보'도 시행령에 정보 수집 대상으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나 이것도 명확히 경찰 업무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며 "핼러윈 때 이태원에 항상 인파가 모인다면, 인파가 얼마나 모이고 경찰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기동대를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 이런 게 경찰의 정책정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 내에서도 문제제기가 나온다. 경감 계급의 A 경찰관은 "사실 정보경찰은 법령 자체가 미비한 상태에서 아무거나 다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온 게 있었고 그래서 사찰 문제가 계속 나왔던 것"이라며 "작년에야 처음 경찰이 정보 수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딱 봐도 문건은 시행령 규정에 안 맞는다"라고 밝혔다.

정보과 경험이 있는 B 경찰관도 "해당 문건은 여러 사람이 올려놓은 정보를 한 사람이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내용상 시행령 위반이 맞다"고 말했다.

경찰 개혁 더딘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커지는 정보경찰 위상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윤 경찰청장은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고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이날 윤 경찰청장은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사고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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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청 내부에서도 이번 문건에 담긴 정보 수집 활동의 '준법 여부'를 조사 중이다.  

'정보경찰 활동규칙'에 따르면 경찰청은 자율 통제를 위해 경찰청 공공안녕정보국(옛 정보국) 차원에서 준법지원계를 운용하고 있다. 조사 의뢰를 받은 준법지원 담당관은 법령 위반 여부를 조사해 결과를 해당 경찰기관장에 통보해야 하며, 기관장은 법령을 위반한 정보관에 징계나 수사 의뢰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찰청 정보분석과 관계자는 "(이번 문건과 관련해) 준법감시인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관계자는 문건 작성 취지에 대해 "참사 수준의 사고가 발생하면 여러 정부 기관들이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하고 대응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저희(정보경찰)가 자연스럽게 확인되는 내용들을 파악해서 필요하다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예전부터) 해왔다"고 말했다.

실제 '정책 참고 자료'는 과거 경찰청 정보국이 매일 작성해 대통령실을 비롯한 관계 부처에 보고해 왔다. 경찰청의 '2020년 성과관리 시행계획'에 따르면 2019년 정보경찰은 청와대와 총리실에 1041건의 '대외 전파 정책 참고 자료'를 보고했다. 정보국은 경찰 개혁이 추진됐던 문재인 정부 이전까진 '치안정보'라는 명목으로 노동·학교·종교·문화·경제 등 범죄 수사·예방과 무관한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정보를 수집하면서 대통령의 눈과 귀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현장에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정보경찰 개혁 흐름도 끊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바뀌면서 경찰 내에서 정보 관련 보직을 거친 인사들이 눈에 띄게 요직에 등용됐다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한 예로, 그는 서울경찰청 정보1·2과장과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등 정보 관련 보직을 두루 거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후 공직자 인사검증을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기면서 정보경찰의 위상은 더 커졌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이 폐지된 상황에서 법무부가 경찰의 정보 활동에 더 의존할 여지가 크다.

정보경찰 폐지를 근본 대안으로 주장해 온 참여연대의 최재혁 간사는 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법에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를 수집 가능한 범주로 규정했다고 하나 애매한 표현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고 시행령도 마찬가지"라며 "범죄 수사·예방 등 명확히 경찰 업무와 연관된 정보만 수집하고, 그 외는 폐지하는 게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소위 '정책자료' 생산을 위한 정보 수집 등 위법성이 있는 업무를 중지하는 게 필요하다"라며 "경찰위원회 등을 통한 실질적인 외부 통제가 가능하게끔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태그:#정보경찰, #이태원 참사, #사찰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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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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