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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기자말]
"다음에 그리고 싶은 거 있으신가요?"

바람에 흔들리던 가지들에 마음을 뺏겨 그린 나무 가득한 풍경화를 겨우겨우 끝마치던 날, 미술학원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나는 얼른 휴대폰 앨범을 뒤져 다음에 그리기로 마음 먹고 있었던 사진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손가락으로 긴 머리를 쓸며 머리를 살짝 젖히고 활짝 웃는 친구의 사진이었다.

친구를 주인공으로
 
완성에 근접해가는 그림.
 완성에 근접해가는 그림.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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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모든 시간에 폰을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대는 후배가 아니었더라면 이 귀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까. 소중한 순간은 때로 우연히 찾아와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마음에 짧게 머물다 금세 사라져 버린다.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귀히 여기며 살만큼 지혜로워지려면 얼마나 나이가 먹어야 하는 걸까.

친구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숱하게 많이 보았던 친구의 사진들 속에서 그녀가 그렇게 시원스럽게 웃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친구는 늘 자신보다 타인을 더 웃게 만드는 사람이다.

언제나 누구보다 서둘러 약속 자리에 나타났고 함께 한 모든 이들을 살뜰히 챙겼다. 항상 다른 이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지인들의 경조사에 사려 깊게 기뻐하고 슬퍼했다.

남들에게뿐 아니라 가족에게는 더 헌신적인 엄마이자, 아내였다. 매사 가족과 다른 사람 위주로 의사 결정하는 친구를 난 자주 말리고 싶었다. "그렇게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며 주변 사람들을 위해 친구가 자신을 너무 희생하지 않기를, 친구가 스스로를 좀 더 보살피기를 바랐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는 친구의 모습에 이상하게 마음이 출렁였다. 다른 사람만 챙기던 친구가 비로소 오롯이 자신을 드러낸 것 같았달까. 반백을 목전에 둔 평범한 친구의 모습이 내겐 어느 시대, 어떤 아름다운 명화 속 여인들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겨우 주 1회 취미로 미술을 배우는 미술 초보 주제에 친구를 더 멋지게, 더 드라마틱하게 그림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미술 선생님이 사진 속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친구예요. 친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와! 친구분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미술 선생님은 자신도 주변 지인들을 많이 그려줬었지만 정작 자신을 그려주는 사람은 없었다고 부러워했다.

활짝 웃는 친구의 모습을 살리려면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는 얼굴의 미세한 각도를 살려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내 스케치 실력이 부족하다. 아쉬움이 남지만 친구를 그림으로 남기는 작업은 내내 즐겁다.
 
스케치
 스케치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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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색 먼저 입히기.
 배경색 먼저 입히기.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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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그리다 돌아버릴 뻔
 돌 그리다 돌아버릴 뻔
ⓒ 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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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시작을 열렬히 응원할게

친구 주변에 깔린 수많은 자갈들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연자실 바라보다 선생님께 SOS를 요청했다.

"돌 그리다 돌아버리겠어요. 이 수많은 돌들을 하나하나 다 색칠해야 하는 건가요?"

선생님은 돌을 하나하나 칠하지 않고 두리뭉실 칠한 다음 각각의 돌멩이들 간의 경계를 좀 더 구분 지으라고 하셨다. 하나하나의 돌멩이들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것들을 둘러싼 주변과 경계를 살렸을 때 나타내고자 하는 실체가 더 도드라져 표현되는 마법.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그리니 과연 돌멩이들 각각의 모습이 살아났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자신이 드러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난 사진 속 친구의 모습에서 그 모든 과정을 보았던 게 아닐까 싶다. 친구 삶의 역사를 알기에 한 장의 사진에도 뭉클해졌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강의에서 받은 친필 사인, "알면 사랑한다"는 문장처럼 우린 과정을 아는 대상에게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친구는 내년에 우리나라 셈으로 50이 된다. 경험상, 40대 후반부터 50을 앞두고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혹독하게 앓았으니 친구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살아온 50여 년의 삶을 다 알진 못하지만, 그림 속에서 그녀 생애 가장 멋진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아내, 누구누구 엄마가 아니라 내 친구 이름 세 글자로 당당히 그녀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부족한 실력은 미술 선생님께서 메워 주시니 친구가 멋진 모습으로 완성될 날이 머지 않았다. 

이 그림은 그녀의 50번째 생일날, 그녀가 주인공인 날의 선물이 될 예정이다. 사춘기에 뇌 구조의 격변기를 거쳐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듯, 사십춘기를 거치며 모든 이들을 돌보느라 쏟았던 에너지 흐름을 이제는 자신에게로 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아. 생각했던 것보다는 꽤 괜찮은 오십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끝까지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세상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그렇게 친구의 50세 시작을 열렬히 응원하련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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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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