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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왼쪽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자료사진).
ⓒ 이희훈/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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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 김대중과 박정희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라이벌이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관계는 두 가지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한국 현대사 최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박정희와 김대중은 국가발전에 관한 정치적 비전 제시에 있어 뚜렷하게 대비되는 노선과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두 인물은 산업화와 민주화 등 한국의 근대화를 위한 거시적인 가치실현을 정치적인 목표로 제시했다. 두 인물은 각각 박정희식 근대화노선, 김대중식 근대화노선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독자적인 국가발전 전략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인물의 경쟁은 권력관계 측면을 넘어서 가치 측면에서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두 인물은 모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돼 자신의 비전과 구상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인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패턴을 살펴보면 현실 정치에서 한 명이 승자가 되면 다른 한 명은 패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쟁관계가 치열하면 할수록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더욱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의 냉엄한 현실이다.

그런데 박정희와 김대중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김대중의 인간승리, 기적과도 같은 정치적 도약과 관련돼 있다. 도전자 위치에 있던 김대중은 간난신고(艱難辛苦)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정권교체에 성공해 자신의 구상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인물의 라이벌 관계는 역사 속의 이야기를 넘어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두 인물이 남긴 정치적 유산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 두 인물에 대한 연구는 한국 현대사 연구에 있어 필수적이며 현실 속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 연구, 드디어 이뤄지다

위와 같은 학문적·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두 인물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각도에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두 인물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교연구는 이뤄진 바 없었다. 두 인물에 대한 비교연구는 복합적인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매우 흥미로운 주제며 대중적인 관심에도 부합할 수 있는 좋은 소재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9월 나온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논형)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 책의 저자인 류상영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한 다양한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두 인물의 인간적인 측면에서부터 사상·정책·사건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적 비중을 감안할 때 둘 중 한 명만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인물에 관한 종합적인 비교 연구는 상당히 고난도의 작업이다. 류상영 교수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오랜기간 동안 박정희와 김대중에 관한 사료를 체계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이다.

류상영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관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갖고 있다. 또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장, 김대중 전집 출간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서 김대중도서관의 각종 사료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김대중의 학문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류 교수는 두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비교연구를 진행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책의 표지입니다
▲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표지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화 책의 표지입니다
ⓒ 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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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대화하다

먼저 이 책의 형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은 이미 고인이 된 박정희, 김대중이 만나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구성돼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의 가상 대화록인 셈이다. 물론 생전에 두 사람 사이의 대담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 형식은 저자의 상상이자 창작이다. 그런데 그 대화 속의 내용은 철저히 객관적인 역사적인 자료에 기초한다. 따라서 형식은 허구이나 내용은 사실이다.

이 책이 두 사람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고뇌를 다룬 1부의 구성이 가능했다고 본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각자가 처한 역사적인 배경과 맥락은 다르지만 극단의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치인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적인 감정과 의식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자는 대화 형식을 통해서 두 인물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선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1부에서 저자는 두 인물이 자신들의 인간적인 고뇌를 직접 말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다른 형식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훗날 박정희와 김대중 관련 다른 비교 연구서가 나온다고 해도 이 책만의 강점이자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박정희와 김대중, 다양한 논쟁의 지점들

두 인물이 경쟁했던 시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이며 당시의 시대적 과제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가를 재건하고 근대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산업화·민주화는 그것의 핵심 과제였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근대화라는 거시적인 목표 실현을 위해서 정치·경제·남북관계·외교·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책대안을 갖고 경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쟁점 및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무궁무진하다. 이 책의 2부와 3부는 이것을 다루고 있다.

먼저 이 책의 2부는 '철학적 대화: 사회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경제성장, 민주주의, 외교, 민족주의, 통일 등 주요 국가적인 과제에 대한 두 인물의 입장을 다룬다. 두 인물의 정치철학의 내용과 차이점을 비교해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3부는 '역사적 대화: 박정희와 김대중이 얽혀 살아온 역사 현장들'이라는 제목으로 4.19, 5.16, 한일회담, 월남파병, 경부고속도로, 1971년 대선, 새마을운동, 7.4남북공동성명, 유신, 김대중납치사건, 10.26 등 두 인물이 직접 관계된 정책과 사건을 중심으로 두 인물의 견해와 소회에 대해서 서술한다.

2부와 3부는 지금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다양한 주제·사건 등을 다룬다. 그리고 특히 김대중납치사건과 10.26 등 두 인물이 대화소재로 삼기에 까다로운 주제 역시 주변 인물들의 각종 자료를 최대한 동원해 사실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현실정치적 함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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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은 오늘날의 한국 정치에 현실적인 함의를 준다. 현재 많은 이들이 정치 양극화 현상을 우려한다. 소통과 협치 대신 불통과 대결 위주의 정치가 지배하면서 국민들에게 심한 피로감을 주고 있으며 국내외적인 위기 상황에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탄식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립하는 상대와의 대화다. 민주정치의 목적은 대립하는 상대와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갈등을 해결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질적인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의식이 형성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요즘 정치를 보면 자기에게 우호적이고 친한 그룹과의 대화와 소통은 적극적이면서도 대립하는 상대와는 그렇지 않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대립하는 상대와의 대화와 소통이다. 그렇게 볼 때 저자가 역사적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인물의 대화 형식으로 책을 서술한 것은 의미가 있다. 저자가 가상대화록 형식으로 구성한 것은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의 현실 정치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지향적인 가치 실현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사실 두 인물 관련 실제 역사는 갈등과 대립의 우리 현대 정치의 어두운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책에서 두 인물은 차분하면서도 치열하게 대화를 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 두 인물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생전에 두 인물이 짧게나마 대화한 적은 1968년 새해 청와대 신년인사에서 한 번 뿐이었으며 주제도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두 인물은 정치적 현안과 사건, 정책과 비전 등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주제로 대화한 적이 없다. 만일 그것이 가능했다면 한국 현대사의 발전은 더욱 역동적이었을 것이며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금도 크고 작게 대립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상호간에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현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고인이 됐기 때문에 실제 대화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가들은 그들이 의지와 용기를 갖고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서 대립하는 상대와의 대화와 소통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와 같은 정치문화가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태그:#박정희,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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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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